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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

■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  지음 | 임한순 옮김 | 독일소설  | 지식을만드는지식 펴냄│184쪽│13,000원

 

[SR(에스알)타임스 조인숙 기자] 그림자를 잃고 사회의 시민적 행복에서 단절된 주인공 슐레밀의 이야기. 근본적인 진실을 찾아 비극을 극복하려는 슐레밀의 인생행로를 통해 사적인 이해관계와 물욕에만 의존하는 비인간성을 비판한다.

작가 샤미소에 따르면, 슐레밀(Schlemihl, 또는 Schlemiel)은 히브리 인명으로, ‘신에게 사랑받는 자’라는 뜻인데, 유태인 은어로는 반어적으로 ‘서툴고 재수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슐레밀은 구체적인 잘못이나 죄도 없이 ‘재수 없게’악마의 유혹을 받아 그림자를 잃는다. 그러나 샤미소는 이 작품에서 그림자의 상실 자체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자기기만과 공허한 환상을 보여 주려 한다. 작가는 기적과 환상을 마치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듯이 사실적인 문체로 묘사한다. 

작가는 원래 그의 “기이한 이야기”를 어린이 대상의 단순한 동화로 규정하려 했다. ‘그림자 없는 사람’이라는 착상도 우연한 계기에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었다. 샤미소는 여행하다가 여러 옷가지를 도둑맞은 적이 있는데, 이에 그의 친구 푸케가 혹시 그림자마저 잃지 않았냐고 농담으로 물었고, 이 질문에서 영감을 얻어 슐레밀 이야기가 구상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겉으로 보기에 소박한 발상과 단순한 동화적 구성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작품에는 포괄적이고 철학적인 실존의 문제가 함축되어 있다. 

토마스 만에 따르면, 슐레밀의 그림자는 현실 세계에서의 안정, 시민사회의 ‘미덕’을 표현한다. 이러한 시민 생활의 토대를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슐레밀은 사회 현실에서 소외된 낭만적 예술가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작가 샤미소가 겪은 불안정한 생활의 체험을 비춰 보여 준다.

낭만주의적 고향 상실과 근원적 진실의 추구를 뜻하는 “자신만을 위한”삶을 슐레밀은 생산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 자연 탐구에 전념한다. 그의 이 선택이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영혼을 팔아 그림자를, 그로써 부패한 시민적 행복을 되찾지는 않겠다는 고독한 결의가 의롭고 귀하기 때문이다. 

‘민담 소설’≪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는 1814년 초판의 출간 직후부터 독일 국내외에 널리 알려져 곧 프랑스어, 영어, 이탈리아어 등의 번역이 이어졌고, 20세기까지 애독되며 깊은 관심과 찬사를 받아 왔다. 특히 토마스 만은 이 작품에 대해 민담과 단편소설의 중간 형식인 “환상 단편소설(phantastische Novelle)”이라는 장르 개념을 제시해 작가와 작품 연구의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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