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에스알 타임스) 선호균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온라인 플랫폼 경쟁촉진법(온플법)을 제정하면 한국 스타트업에 더 이상 투자할 수 없다.”
스타트업에 투자해 유니콘 기업으로 만든 벤처투자자들의 말이다.
21일 주요 IT업계에 따르면 공정위원가 플랫폼 기업 독과점을 사전 규제하는 온플법 제정을 추진하고 나서자 한국 온라인 플랫폼 스타트업에 투자해왔던 주요 투자자들이 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 기업을 키웠던 주역들이다.
업계는 공정위가 정하는 규제 커트라인 이상으로 성장을 추진할 수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온플법 통과 땐 혁신 스타트업 한국서 목격 어려울 것"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9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 참석해 플랫폼법 제정안을 마련해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이 구상한 플랫폼법 제정안에는 ▲소수 핵심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포 사업자’로 지정 ▲자사우대·끼워팔기·멀티호밍 등 반칙행위 금지 ▲매출액·이용자수·시장점유율 등 정량요건 등의 내용이 포함되고 시장 내 영향력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그동안 독과점 플랫폼 반칙 사례로 카카오T 택시 배차 알고리즘 조작과 가맹 택시 우대 행위를 지목했다.
플랫폼 업계에서는 국내 대표 IT 기업인 네이버와 카카오 등이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국내 기업용 규제법이 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21일 본인 사회관계망서비스인 페이스북과 링크드인을 통해 “공정위의 온라인 플랫폼 법률안이 통과되면 우리는 더이상 혁신적인 스타트업인 네이버, 배달의 민족, 쿠팡 같은 기업을 한국에서 목격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0년에 한국에 진출한 소프트뱅크벤처스는 당근마켓·하이퍼커넥트·네이버제트 등 한국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투자해 유니콘 신화를 만들어 창업 생태계를 키운 대표적인 벤처캐피탈 투자사다.
이 대표는 이어 “우리 테크 지형에 엄청난 게임 체인저가 될 것 같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현재 추진되는 플랫폼 경쟁 촉진법이 그대로 도입되면 IT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 경쟁력이 전체적으로 위축되고 오히려 외국 플랫폼 기업에게 반사이익을 얻게 해 결국 국가적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이 대표는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고 성장하는 네이버·배민·쿠팡 등 국내 테크 기업만 대상으로 무작정 고민이 덜 된 규제를 하면 누가 큰 그림을 보고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겠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벤처투자정보업체 더브이씨에 따르면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다수 온라인 플랫폼 스타트업 포함 116개사에 5,560억원 이상을 투자한 것으로 집계됐다.
◆IT 유관 단체들도 온플법 제정에 반대
김한준 알토스벤처스 대표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정위가 추진하는 법 관련 논의에 우리(벤처캐피탈 투자자들)도 꼭 논의에 참여해야 하며 왜 필요없는지 적극적으로 알리겠다”고 적었다.
김 대표는 “온플법은 회사들이 어느 정도 커지면 더 제한을 받아야 하며 부담을 안기게 될 것”이라며 “작은 회사들이 새로운 쿠팡·배민·네이버·카카오가 되기 더더욱 힘들고 한국에 투자하는 돈은 정부 돈만 남게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현재 공정위가 법안을 추진하는 모습은 2010년 초기 국내 동영상업체 ‘판도라 TV’가 유튜브에 밀려 몰락한 과거 상황과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2009년 본인확인제와 저작권법 실시로 2010~2011년 판도라TV 같은 국내 동영상 업체만 규제를 받는 반면, 유튜브는 규제 사각지대에 있어 역차별이라는 목소리를 내 당시 논란이 됐었다.
그는 “오래전 동영상 서비스가 생겼을 때 판도라TV 인기가 높아 국내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유튜브가 판도라를 따라잡지 못했다”며 “당시 불법 비디오가 올라오면 무조건 플랫폼 회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의 법이 통과돼 판도라TV를 보던 소비자들이 다 유튜브로 이동하면서 회사가 몰락했다”고 설명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누적 벤처투자액은 7조6,87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감소했다. 투자 건수는 지난해 5,857건에서 5,072건으로 줄었다. 기업당 투자 유치 금액도 32억2,000만원에서 25억9,000만원으로 6억3,000만원 줄었다.
마켓컬리 등 유니콘 인증 기업은 22곳이지만 기업가치는 경기부진과 경쟁심화로 수년 전에 비해 하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온플법안을 조율해 의원 입법으로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IT와 벤처캐피탈업계에서는 대외 환경 악화로 스타트업 투자가 줄어 신생 유니콘 육성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주요 재계와 IT 유관 단체들도 온플법 제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도 최근 “(온플법이) 토종 플랫폼 기업들의 성장을 원천 봉쇄하고 앞으로 기업들의 투자 동력을 상실케 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정보기술(IT) 5개 단체가 모인 디지털경제연합도 “온라인 플랫폼 사전 규제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플랫폼에 사약을 내리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