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 1인 가구 ‘홀로족’ 현실, 세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문제작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유엔인구기금(UNFPA)이 올해 발표한 세계인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 198개 조사대상국 중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출산율 최하위를 기록했다. 보고서 기준으로 한국 평균 출산율은 1.1명으로 세계 평균인 2.4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비혼·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인구감소세로 돌아섰으며 반대로 ‘1인 가구’는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인다. 1인 가구란 여러 명이 함께 거주하는 일반 가구와 달리 혼자 독립적으로 취사, 취침 등의 생계를 유지하는 가구를 말한다.

지난해 12월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15년 27.2%(1만9,111가구)였던 1인 가구 비중은 계속 증가해 2019년에는 30.2%(2만343가구)를 기록했다. 대한민국은 현재 10가구 중 3가구꼴로 1인 가구인 셈이다.

1인 가구 증가로 홀로 방치된 죽음인 ‘고독사’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는 한국 총인구감소 못지않게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가장 커다란 사회문제 중 하나가 됐다.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영제: Aloners, 제작/제공/배급: 한국영화아카데미/영화진흥위원회/더쿱)은 1인 가구 ‘홀로족’ 현실을 세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문제작이다.

(이 리뷰는 영화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진아(공승연)는 20대 후반에 접어든 신용카드 콜센터 상담원이다. 가장 대표적인 감정노동 직군에서 일하고 있지만, 악성 고객의 욕설, 협박, 모욕 등 언어폭력과 어떠한 강성 민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타고난 것인지 아니면 훈련을 통해 얻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객에게 무감정 대응할 수 있는 재능 덕분에 그녀는 직장 내에서 가장 유능한 상담직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진아는 직장 밖에서는 대인 관계를 차단한 채 살아간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고 휴대폰에서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걷는다. 그녀는 남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지내는지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친구도 연인도 곁에 두지 않는 그녀는 퇴근해 집에 오면 텅 빈 적막함을 대신할 TV 화면이 항상 켜져 있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TV를 켜놓고 잠을 청했다가 아침을 맞이하는 게 일상인 그녀는 전형적인 1인 가구 홀로족이다. 그녀는 직장에서도 혼자 먹는 점심밥에 익숙해져있다.

진아에게는 타인과의 아무런 연결점이 없는 이 무미건조한 혼자만의 삶이 더없이 편하다. 행복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불행하지도 않기에 버틸 만 하다.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 일상을 파고드는 타인에게 느끼는 불편함

진아는 아무 문제 없이 1인분의 세계를 잘 살아가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일상에 타인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그녀의 삶에 간섭하는 이는 아빠(박정학)다. 진아에게 아빠라는 존재는 가슴 속에 17년간 큰 공백과 상처를 남긴 타인이다. 뒤늦게 돌아온 아빠는 엄마의 임종을 지켜주긴 했지만, 진아는 그의 곁에 나란히 앉는 것조차 서먹하다. 엄마의 전화번호로 걸려오는 아빠의 목소리는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불편하다.

진아는 실없이 말 걸어오는 옆집 남자에게도 같은 불편함을 느낀다. 매일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타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로 상대하고 있지만, 현실 속 옆집 남자와 마주칠 때는 항상 껄끄럽다. 

특히 회사 파티션 1인분 공간 안에 불쑥 침입한 신입사원 수진(정다은)은 진아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인물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그러함에도 견고하게 '혼자만의 세계'라는 안정적인 틀을 유지하고 있던 진아. 하지만 그녀의 균형잡힌 일상은 포르노 잡지에 깔려 죽은 옆집 남자의 고독사 사건을 기점으로 조금씩 기우뚱거리기 시작한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어쩔 수 없이 1인 가구 삶을 사는 사회초년생 수진은 사수인 진아와 친해지기 위해 목 보호 스프레이를 건네고 날마다 커피를 사고 점심 식사도 함께하려 한다. 하지만 진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수진과 냉랭하게 거리를 유지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수진은 진아와 달리 악성 고객에게 사과할 수 없다며 버티기도 하고 정신이상자의 전화에는 함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자며 응대가 아닌 소통을 시도하려 한다. 진아는 그런 수진을 지켜보며 자신이 오래전 잃어버렸던 감정이 스멀스멀 되살아남을 느낀다.

수진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출근하지 않게 되자 진아는 드디어 혼자만의 영역을 오롯하게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전과 달리 홀가분하지 않음을 느낀다. 익숙하게 혼자 먹어왔던 쌀국수가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게 대하던 악성 고객이 사람으로 느껴지면서 환청이 뒤섞인다. 진아의 냉정함은 견고했던 감정의 벽에 생긴 균열을 따라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살가웠던 수진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기 시작한 진아는 비로소 자신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척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오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혼자인 게 편한 것이 아니라 실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외로움을 참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진아가 거부해왔던 모든 이들은 자신과 똑같이 1인 가구의 삶을 살고있는 사람들이다. 그들 모두는 홀로 지내는 것을 견디지 못해 진아에게 말을 걸어오고 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하는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진아는 이제 새로운 이웃 성훈(서현우)을 비롯한 모두에게 메마른 감정으로 쌓았던 단절의 벽을 허물고 문 두드림에 응답할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별인사를 배워가는 성장영화

1인 가구라는 한국사회의 단면을 극으로 재구성해 내밀한 시선으로 바라본 ‘혼자 사는 사람들’은 홍성은 감독의 각본과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경쟁부문 2관왕을 거머쥔 홍성은 감독은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작별인사’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주인공 진아는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해 애착관계를 형성한 누군가가 자기 곁을 떠나는 것을 몹시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더구나 엄마를 잃고 난 후 아픔은 더 커져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사적인 인간관계를 만들려 하지 않는다. 작별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진아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작별인사를 배워가는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혼자 사는 사람들' 기자간담회. ⓒ더쿱
▲'혼자 사는 사람들' 기자간담회. ⓒ더쿱

지난 11일 열린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홍성은 감독은 작품 구상 계기에 대해 “혼자 사는 사람이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얼마나 불완전하고 쉽게 무너질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완벽해지고 싶지만 누구보다 불안한 존재들에 대해 그린 작품으로 이별에 있어서, 제대로 된 성의 있는 작별인사를 하는 과정을 배워나가는 영화다. 작별인사를 함으로써 아예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느꼈으면 좋겠다“고 작품 연출의도를 밝혔다.

진아 역의 공승연은 캐릭터 연기에 대한 어려움에 대한 질문에 “콜센터 상담원 진아를 연기하면서 하이톤을 쓰기 위해 살짝 웃어야 하는데 그 표정을 빼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공승연은 이 영화를 통해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았다.

▲홍성은 감독, 공승연, 정다은, 서현우(사진 왼쪽부터). ⓒ더쿱
▲홍성은 감독, 공승연, 정다은, 서현우(사진 왼쪽부터). ⓒ더쿱

이 영화에서 수진 역으로 첫 성인 연기에 도전한 정다은은 “등장인물 중 가장 밝고 감정에 솔직한 친구여서 사회초년생에 걸맞게 덜렁대고 부족한 모습들이 스무 살 수진과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소개했다.

진아의 새로운 이웃 성훈 역의 서현우는 “성훈이 짧은 분량이지만 진아에게 어떤 영향을 정확하게 주는 인물이었음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촬영 당시 다른 작품을 하면서 다리를 다친 상태였는데 감독님과 의논 끝에 목발을 짚는 설정을 입혀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며 캐릭터 설정 비하인드를 밝히기도 했다.

2030 세대 홀로족들의 현실을 담은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오는 19일 개봉 예정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혼자 사는 사람들. ⓒ더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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