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스틸. ⓒNEW
▲'괴물' 스틸. ⓒNEW

126분 동안 정밀하게 작동하는 감정의 태엽장치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참, 내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그건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中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호수의 마을에는 분노의 색처럼 불타는 건물이 있다. 휘슬 장난감 소리가 외롭게 허공을 가른다.

등교하는 아들 미나토(쿠로카와 소야)에게 사오리(안도 사쿠라)는 물병을 챙겨준다. 남편과 사별한 그녀에게 미나토는 세상 전부다.

그런 그녀가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교사 호리(나가야마 에이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듣는다. 호리가 아들에게 말했다는 ‘돼지 뇌를 가진 인간’이라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계속 신경쓰인다.

▲'괴물' 스틸.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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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미나토가 갑자기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신발을 잃어버린 채 돌아오기도 했다. 물병 안에는 흙탕물이 들어있고 몸에는 확실하게 상처가 나 있었다. 심지어 자신은 괴물이라며 소리지르고 울며 도망치기까지 한다. 그녀는 생각했다. 내 아들이 분명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오직 자식에게 헌신해온 모성의 직감에서 발화한 분노의 화살은 호리에게 날아간다. 사오리를 마주한 호리는 일관된 불손한 태도로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한다. 후시미 교장(다나카 유코)의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한 영혼 없는 말투는 역겨울 정도다.

▲'괴물' 스틸.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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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이들 사이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는 명백해 보인다. 이 정도라면 교사 수난 시대니 뭐니 해봤자 이 학교 교사 전원이 공범이며 호리는 교사 실격 아니, 인간 실격이다.

다시 제대로 사과 받기 위해 만난 호리의 이죽거리는 태도는 이번에도 변함이 없다. 심지어 그는 미나토가 같은 반 학생인 요리(히이라기 히나타)를 괴롭혀왔다는 주장까지 펼치는데...

▲'괴물' 스틸. ⓒNEW
▲'괴물' 스틸. ⓒNEW

영화 ‘괴물’은 ‘마더’, ‘그래도, 살아간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등 화제의 작품들을 집필해온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 공동 작업을 진행해,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의 영예를 안은 작품이다.

사카모토 유지 각본가는 20대 시절인 1990년대에 ‘도쿄 러브스토리’로 대표되는 트렌디 드라마 장르를 개척해 그 시절 한국 방송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괴물' 스틸.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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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번 영화를 위해 써내려간 이야기는 단순히 흥미롭고 재미있다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평범함의 절대가치 강요를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등장인물에 다층적으로 투사했으며, 이와 맞물려 정밀하게 설계된 감정의 태엽장치는 126분 동안 완벽하게 작동한다.

 ‘괴물’은 1장 어머니 사오리의 시점, 2장 교사 호리의 시점, 3장 미나토와 요리의 시점 등 총 3장으로 서사가 구성된다. 

▲'괴물' 스틸. ⓒNEW
▲'괴물' 스틸. ⓒNEW

1장에서는 아들을 지키려는 싱글맘 사오리 역을 맡은 안도 사쿠라 배우의 압도적인 연기력이 휘몰아친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혼란 속에서 자식을 지키겠다는 한 지점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다 미스터리에 가까운 소통 불가의 벽에 직면한다. 이 외로운 싸움은 초반 서사의 감정적 도화선이 되면서 관객과의 감정 공명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 캐릭터를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은 2장에서 달라진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에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니체의 말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괴물' 스틸. ⓒNEW
▲'괴물' 스틸. ⓒNEW

2장에서는 이야기의 퍼즐을 호리 역의 나가야마 에이타 배우가 이어받는다.

애인 히로나(타카하타 미츠키)와의 소박한 미래를 꿈꾸는 그의 모습은 1장에서 품었던 의심과 가설을 사실상 완전히 뒤집어놓는다.

도대체 1장에서 왜 호리를 의심했던 것일까하는 반성의 마음이 밀려오려는 순간, 그 역시 사오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음이 드러난다. 이 부분에서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내재한 의심과 단절의 관계망이 지극히 평범한 형태로 뿌리내려 작동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괴물' 스틸. ⓒNEW
▲'괴물' 스틸. ⓒNEW

3장은 진실의 시간이며, 우리를 미안함과 부끄러움의 터널 속으로 안내한다. 터널 안을 지나 미나토와 요리의 비밀기지에 다다랐을 때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우리의 벌거벗은 내면을 목도한다. 

1장과 2장에 흩어져 있던 파편들이 한곳에 모여 제 모습을 갖추고 진실이 드러날 때 우리는 각본가의 못된 함정에 빠졌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리고 공동체 안에서 평범함이라는 정의로 정제해 만든 억압과 공포의 낙인으로 꾸며진 심연의 괴물을 우리 스스로 마음속에 키워오고 있었음을 깨닫게 만드는 극의 구조에 놀라게 된다. 

▲'괴물' 스틸. ⓒNEW
▲'괴물' 스틸. ⓒNEW

미나토 역의 쿠로카와 소야, 요리 역의 히이라기 히나타 두 아역 배우가 보여주는 아이들의 세계는 행복해야 한다. 후시미 교장 역을 맡은 명배우 타나카 유코의 대사를 빌려 말해지듯 이 아이들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행복을 누려야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한 아름다운 엔딩 시퀀스는 고(故)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과 함께 눈부시게 빛나며 관객의 마음을 헤집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흙을 덮어 새로 태어나게 할 필요는 처음부터 없었다. 가장 중요한 진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괴물' 포스터. ⓒNEW
▲'괴물' 포스터. ⓒNEW

 

제목: 괴물(怪物)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각본: 사카모토 유지

음악: 사카모토 류이치

출연: 안도 사쿠라, 나가야마 에이타, 쿠로카와 소야, 히이라기 히나타, 타카하타 미츠키, 카쿠타 아키히로, 나카무라 시도, 타나카 유코 외

수입: 미디어캐슬

배급: NEW

러닝타임: 126분

심의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일본 개봉일: 2023년 6월 2일(금)

국내 개봉일: 2023년 11월 29일(수)

스크린 리뷰 평점: 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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