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 75' ⓒ찬란
▲'플랜 75' ⓒ찬란

초고령화 국가 진입을 앞둔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영화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영화 '플랜 75'는 옴니버스 영화 '10년'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 영화를 장편화한 작품이다. 

다섯 명의 신예 감독이 각자의 시선으로 10년 후 일본의 모습을 조명해 낸 '10년'은 '어느 가족', '괴물'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직접 작품 기획서를 검토하고 신인 감독을 선발하며 제작을 총지휘한 작품이다.

영화는 일본 정부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되자 청년층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75세 이상 국민의 안락사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플랜 75’ 정책을 발표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영아 사망률이 높은 제3세계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풍족한 자원과 의료기술의 혜택으로 평균 기대 수명이 급격히 높아졌다. 반면 출산율은 하락하고 있다. 노동, 산업구조, 연금, 의료, 교육, 재정 등에 문제가 발생하는 초고령화 사회란 65세 이상 국민이 전체 인구의 20% 이상일 때를 뜻한다. 

영화 ‘플랜 75’는 초고령화 국가인 일본이 당면한 문제를 극단적인 형태의 미래 모습으로 보여준다. 그 모습은 SF영화라기보다는 공포영화에 가깝다.

영화 속에서는 75세 이상의 국민이 스스로 자기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정부 주도의 안락사 제도인 ‘플랜 75’가 시행된다. 물론 국민의 동의를 거쳐 민주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제도일 것이다. 즉, 노인들의 죽음을 국민 대다수가 바라게 된 사회다. 

▲'플랜 75' ⓒ찬란
▲'플랜 75' ⓒ찬란

주인공 미치(바이쇼 치에코)는 78세다. 충분히 일할 수 있는 정정한 노인이지만, 퇴직 후 새로운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 함께 어울리던 동연배 친구들도 하나둘 점점 사라져간다. 풍요로운 80년대를 이끌었던 단카이 세대인 그녀에게 남은 것은 고독함 뿐. ‘국가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감 속에서 그녀는 ‘플랜 75’ 신청서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서명한다. 

‘플랜 75’를 담당하는 시청 직원 히무로(아소무라 하야토)는 책임감 있고 예의 바른 청년이다. 마치 보험 상품 세일즈맨처럼 성실하게 정부를 대신해 ‘플랜 75’를 판매한다. 사무적으로 신청자를 모집하던 히무로는 어느 순간 고민에 빠진다. 삼촌이 ‘플랜 75’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플랜 75' ⓒ찬란
▲'플랜 75' ⓒ찬란

‘플랜 75’ 콜센터 직원 요코(카와이 유미)는 상냥한 목소리로 최대한 '플랜 75' 신청자의 변심을 막는 것이 임무다. 신청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자기 일에만 충실했던 요코는 어느 날 미치에게 뜻하지 않은 부탁을 받게 된다.

필리핀 출신 이주 노동자 마리아(스테파니 아리안)는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간병인보다 급여가 높은 ‘플랜 75’ 안락사 시설에서 일하게 된다. 노인들의 유품 정리와 시설에서 행해지는 일로 마음이 편치 않았던 마리아는 뜻밖의 사건을 마주한다.

▲'플랜 75' ⓒ찬란
▲'플랜 75' ⓒ찬란

일본은 80년대부터 노인 문제를 다룬 작품을 제작해왔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나라야마부시코’(1983)에서는 척박한 환경의 산골마을 사람들이 식량이 부족해지는 겨울이 되면 자식이 노년의 부모를 산에 유기하는 게 당연한 룰로 자리 잡은 사회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작품은 공동체 생존 목적이 윤리에 우선할 때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키라’(1988)를 연출한 오토모 카츠히로 감독 원작·각본의 ‘노인Z’(1991)는 초고령화된 국가가 노인 돌봄 문제를 AI 로봇을 개발해 돌파하려는 정부의 모습을 그린다. 공개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블랙코미디 영화지만, AI가 실용화되면서 시대를 앞서간 작품으로 다시 재조명받고 있다.

영화 ‘플랜 75’는 이러한 작품들에서 노인의 사회적 자살(혹은 타살)이 허용된 모습과 초고령사회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정부의 모습이라는 공통의 소재를 다룬다. 차별화된 부분은 노인 안락사 문제에 무감각했던 인물들이 연민을 느껴가는 모습을 조명하는 것에 중점을 둔 점 그리고 ‘플랜 75’를 주도하는 정부 관계자는 일체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사회의 압박과 섬뜩함을 직접 경험하게 되는 평범한 일반 국민의 군상극으로 완성됐다.   

▲'플랜 75' ⓒ찬란
▲'플랜 75' ⓒ찬란

하야카와 치에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보다 경제와 생산성을 우선시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을 담으려 했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노인이 국가 재정을 압박하는 공공의 적 취급을 받으며 제거해야 할 대상이 된다는 공포를 선명하게 전달한다.

영화 ‘플랜 75’는 2016년 발생한 ‘사가미하라 장애인 시설 흉기 난동 사건’을 모티브로 한 노인 혐오 테러범 시퀀스로 시작한다. 테러범은 “일본인은 국가를 위해 죽는 걸 긍지로 여겼으니 자신의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나라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바란다”는 말을 남기고 목숨을 끊는다. 반면, 이 영화의 엔딩은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상징하는 연출로 끝을 맺는다. 삶과 죽음의 수미쌍관으로 이루어진 ‘플랜 75’는 암울한 초고령화 사회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이나 정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플랜 75' ⓒ찬란
▲'플랜 75' ⓒ찬란

지난 2023년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19%다. 올해 말이나 2025년 초에는 우리나라도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2023년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유례없는 초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2050년대에는 0% 이하 성장세를 보일 확률을 68%로 내다봤다.  따라서 ‘플랜 75’는 일본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더 주목받아야 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직접적인 대사보다는 일상을 정성스럽게 묘사한 영상과 여백을 통해 더 많은 것을 전달하려고 노력하는 이 영화는 오는 7일 개봉한다. 

▲'플랜 75' ⓒ찬란
▲'플랜 75' ⓒ찬란

 

제 목: 플랜 75(Plan 75)

연 출: 하야카와 치에

출 연: 바이쇼 치에코, 이소무라 하야토, 카와이 유미, 스테파니 아리안

수입/배급: 찬란

공동제공: 소지섭, 51k

러닝타임: 113분

관람등급: 15세이상관람가

개 봉: 2024년 2월 7일

저작권자 © SR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