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좋아하는 남성성에 대해 생각하고 만든 작품"

“첫 데뷔작에 편집권한 준 스튜디오 A24에 감사”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이고 개방적인 영화 만들어”

“오스카 후보에 올라 신나...1년간 영화인으로서 많은 것 배워”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CJ ENM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CJ ENM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은 ‘넘버3’ 송능한 감독의 딸로 뉴욕에서 극작가로 활동해왔으며, 한국 만재도에 살고 있는 해녀들의 이야기와 이민 1.5세대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엮어낸 연극 ‘엔들링스’를 선보이며 극찬을 얻었다.

아마존 프라임 시리즈 ‘시간의 수레바퀴’ 각본에도 참여한 바 있는 셀린 송 감독은  2024년 첫 연출작 '패스트 라이브즈'로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전 세계 영화계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그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작품으로 아시아계 여성 감독이 데뷔작으로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른 건 아카데미 96년 역사상 처음이다. 

셀린 송 감독은 ‘패스트 라이브즈'에 대해 “데이트 영화가 아닙니다. 깊이 있는 사랑을 다루는 영화죠. 당신의 삶에 이미 들어온 사람, 지금 혹은 과거 또는 미래에 들어올 사람이든 상관없어요. '패스트 라이브즈'를 보고 나면 모든 관계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게 될 겁니다”라고 소개한다. SR타임스는 최근 내한했던 셀린 송 감독과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번 작품과 그녀의 연출 철학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영상미와 음악이 아름다운 영화다. 이런 부분을 통해 관객에게 영화가 가진 감정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35mm 필름 카메라로 찍었어요. 굉장히 노스텔지어가 많은 프로세스죠. 한국에서는 더 이상 필름으로 찍지 않기 때문에 매일 밤 필름 박스를 뉴욕으로 보내야 했어요. 근데 공항에서 엑스레이 잘 못 지나가면 다 날아가기 때문에 매일 밤 두근두근거렸죠. (웃음)

음악은 시간과 시대와는 관계없는 음악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 영화는 사실 우리 보통 삶에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순간에 대한 것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 있지만 깊게 생각하면 그 자체의 의미가 깊어지는 거죠. 그래서 촬영 감독이 필름으로 찍는 게 어떻겠냐고 하셨는데 전 이게 첫 영화라고 그게 어떤 일이고 얼마나 비싼지 또 복잡한지 몰랐어요. 그냥 왠지 이 영화와 필름이 맞는 것 같아서 그 감정만 가지고 하자고 했었죠.

필름이 돌아갈 때 돈이 흐르는 소리가 나요. (웃음) 문승아, 임승민 같은 아역 배우들은 필름 카메라를 처음 접하다보니 마치 공룡 같다고 이야기하더군요.

Q. 제목을 ’패스트 라이브스‘로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판타지의 주인공도 아니고 다중 우주나 평행 우주를 넘나드는 것도 아니죠. 그래도 많은 시간과 공간을 지나고 나이를 먹어요. 그리고 이사도 다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뒤에 남겨두고 가는 삶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변호사였던 사람이 요리사가 되면 옛날 변호사 시절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부산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가면 부산에서 두고 온 삶이 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포용할 수 있는 게 많은 ’전생‘이라는 제목을 쓰고 싶었어요.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CJ ENM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CJ ENM

Q. 나영·노라 역에 그레타 리, 해성 역에 유태오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오디션에 응해주신 분들 중에서 캐스팅한 겁니다. 오디션 테이프를 보낸 300명 중 30명을 2차 오디션을 했고 그중에 유태오 배우를 뽑았습니다. 아이덴티티도 물론 중요하지만 해성이라는 캐릭터는 얼굴에 어른과 아이가 공존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순인데 우리는 12살 모습이 없지만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또 12살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 시절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그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과 만나면 다시 12살의 자신이 살아납니다. 그래서 아이와 어른이 공존하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레타 리, 유태오 두 배우를 캐스팅했습니다.

Q. 대본 상에서 선택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부분이 있다면.

아서와 노라가 침대에 누워서 얘기하는 신을 마지막에 썼습니다. 왜 그랬냐면 관객들이 아서의 등장에 대해 환영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죠. 앞에 이미 해성과 노라과의 관계가 어린 시절부터 깊이 들어가 있는 상태이니까요. 관객은 오프닝 신에서 아서가 등장했고 이 인물이 어떤 의미인지 대충 알아요. 근데 막상 아서가 나타나면 ’아...저리가‘라는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웃음) 아서를 연기한 존 마가로 배우와도 이 이야기를 했죠. 저는 아서를 밀어주기로 했어요. 왜냐하면 전 아서가 술집에서 한 행동만으로도 이 캐릭터를 사랑해요. 그리고 침대 신이 있어야 관객들이 그를 이해하고 받아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아서가 해성과 헤어져 돌아온 노라를 품어준다.

세 명 모두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라는 12살 자기 자신과 이별에 대해 별 관심 없이 살다가 해성이가 등장하면서 선물처럼 그 기회를 얻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해성이가 야 하고 부를 때 둘은 어린 시절 골목으로 돌아갑니다. 근데 어두운 밤인건 24년 동안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안녕이라고 할 수 있어서 노라는 12살짜리 울보인 나영 그리고 해성과 이별하고 울면서 집으로 돌아온 거죠.

해성은 비행기를 타고 와서 노라를 만나야 할 정도로 이별이 필요했던 사람입니다. 마지막에는 노라와 제대로 이별을 할 수 있었죠.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신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했을 때 후련하고 편안하게 하고 얻고 싶은 것을 얻고 가는 것으로 표현해달라고 했어요. 

아서는 아내를 깊이 이해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서에게도 해피엔딩이죠. 왜냐면 자기가 모르고 있었던 12살 울보였던 아내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영화가 삼각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로를 삼각관계로 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영화를 만들 때 남성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만들었습니다. 제가 원하고 추구하고 사랑하는 남성성이 있습니다. 보통 남성성을 ’내 여자 건들지마‘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마초라 하죠. 제가 생각하는 남성성은 소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서 내 감정이나 질투같은 모든 것을 잠시만이라도, 하룻밤이라도 옆에 두고 보류하고 그 사람을 우선 생각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희생하는 것에 감동을 느낍니다. 아서와 해성은 서로 모르는 노라와 나영에 대한 열쇠를 가지고 있어요. 둘이 공존해야 노라와 나영의 전체가 열리고 완성될 수 있어요. 서로 자리를 내어줌으로써 더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이것을 삼각관계로 취급하지 않기로 제가 마음 먹으면서 셋의 해피엔딩으로 갈 수 있었던 겁니다.

Q. 노라와 해성이 헤어지는 장면의 연출 포인트가 있다면.

45m 트랙을 깔았어요. 여기서 어느 방향으로 갈거냐고 했을 때 그게 이 작품 전체 비주얼 언어의 메인이 됐죠. 가로선이 타임라인이라 당연히 현실에서 과거로 가야한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갑니다. 그리고 과거 어떤 지점에서 2분 동안 기다리죠. 그리고 우버가 와서 해성을 과거인 왼쪽으로 데려가요. 

근데 제가 똑똑해서 일부러 제가 했다면 좋겠지만 마침 뉴욕의 바람이 저희를 도와줬어요. 바람이 노라의 치마를 과거쪽으로 날리게 하죠. 가끔 촬영장에서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일이에요. 완벽하죠. 바람은 해성이가 떠나간 과거쪽으로 불고 바람을 거슬러서 현재쪽으로 걸어가는데 그 끝에는 집과 아서가 있는 거죠. 마지막 신에서 해성의 차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냐 했을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기로 했죠. 해성이도 앞으로 가야하니까요. 

Q. 해성과 노라는 이후에 다시 만나게 되는가.

크레딧 후에 노래가 나옵니다. 마지막에 잠깐 노래가 나오는데 그게 두 사람이 스카이프하며 재회하는 신에 나오는 거예요. 제 생각에는 다음 생에서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만난다고 생각합니다.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CJ ENM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CJ ENM

Q.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극 중 어린 노라에게 왜 이민을 가냐고 물어보니까 노벨상 때문이라고 한다. 어른이 된 노라가 한국말로 잠꼬대를 한다는 부분도 있다. 모두 감독님의 실제 에피소드인지 궁금하다.

아, 제 인생이 그렇게 인터레스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웃음) 둘 다 아닙니다. 노벨상 같은 경우는 진짜 욕심이 많은 캐릭터를 한마디로 표현하기 위해 넣었어요. 노라가 나이를 먹으면서 노벨상에서 퓰리처상으로 꿈이 어른스러워지죠. 근데 재회한 해성이 나영이 시절 노라의 꿈을 자꾸 이야기하죠. 잘 보시면 노라가 그걸 불편해 합니다. 결국 해성은 노라를 이해 못하고 있는거죠.

아서가 침대에서 노라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관계가 깊고 오래될수록 어떤 부분에서는 끝까지 이해할 수 없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서가 알고 싶어서 한국말을 배우려고 한다는 그 부분이 중요했습니다.

Q. A24와의 작업은 어떤 경험이었나.

데뷔 감독이나 데뷔작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스튜디오입니다. 그런 스튜디오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 위험을 많이 감수하는 곳입니다. 제가 들고 간 시나리오만으로 이 영화를 만들자고 했고 그걸 지금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게 제 첫 영화인데 이 영화가 감독판입니다. 편집 권한을 줬어요. 미국의 많은 스튜디오에서는 감독이 그걸 얻기까지는 치열하게 영화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근데 A24는 제 첫 영화에서 그걸 가능하도록 해줬습니다. 

Q. 이 작품이 북미와 캐나다에서 사랑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문화적 배경이 다른 한국 관객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은지.

한국관객 반응은 정말 예상을 못하겠어요. 저는 북미에서 공부하기도 해서 이 이야기는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죠. 이민자의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사도 다니고 나이도 먹고 이런저런 언어도 배우잖아요. 그래서 이민자의 이야기는 더 이상 이민자만의 이야기는 아니죠. 아일랜드에서 이 영화를 보신 어떤 분이 자신은 글라스코에 살고 있는데 더블린에 두고 온 여자친구가 생각났다면서 우시더군요. 이 이야기는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또 내 인생이 어디에 있고 어떤 나이인지 어떤 사랑을 했는지 등 자기 상황에 따라 이 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를 수 밖에 없어요. 이 영화 자체는 어떤 시각에도 개방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는 이 영화를 보여드리고 전 세계의 첫 사랑 이야기를 다 들었습니다. (웃음) 어떤 분들은 이 영화를 보고 내 연인이나 남편 혹은 아내에게 너무 고맙고 함께 해줘서 행복하고 같이 늙어가는 것도 기대된다며 자신들의 관계를 더 깊게 해줬다고 하시네요. 반면 이 영화를 보고 당장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분도 계십니다. (웃음)

어떤 분은 멀리 살아서 연결이 안 됐던 사람을 일주일 정도 보기 위해 비행기표를 샀다는 분도 있어요. 또 어떤 분은 이 영화를 보고 전 남친 여친, 전 남편 아내를 더 이상 생각 안하게 됐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웃음) 

이 영화를 나중에 아이를 낳고 10년 후에 다시 본다면 그때의 감정도 굉장히 다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영화라서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Q. 오스카 작품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기대감이 높으실 것 같다.

데뷔작으로 오스카 후보에 올랐는데 너무 좋고 신납니다. 너무 영광이고요. 지난해 선댄스부터 지금까지 영화인의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것을 1년 동안 다 겪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게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배운 게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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