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파묘’ 최민식 “얼굴 직접 보고 밥 먹고 차 마시는 멜로 연기 하고 싶어”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쉬리', '명량', '올드보이', '악마를 보았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등 매 작품 다양한 인간군상을 실감 나게 연기하며 에너지와 몰입감을 전해왔던 배우 최민식이 '파묘'에서 땅을 찾는 풍수사 ‘상덕’으로 변신했다. 

그는 ‘파묘’에서 조선 팔도 땅을 찾고 땅을 파는 40년 경력의 풍수사로서 자연과 땅에 대한 철학만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 인물의 서사를 완성했다. 최민식 배우는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진행된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천만 영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영화 ‘파묘’에 관한 이야기와 자신의 연기 철학을 전했다.

Q. 작품에 참여한 계기가 궁금하다.

장재현 감독과 술마시면서 작품 이야기할 때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싶다. 뽑아내고 약 발라주고 싶다는 말을 했어요. 그 정서가 마음에 들었죠. 땅의 트라우마라니 멋있잖아요. 그런 표현은 처음 들어봤죠. 국뽕으로 느껴지지 않더군요.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에서 사실 인간과 종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부분이잖아요. 무신론자들도 나약해질 때 매달리는 건 신이죠. 하지만 편협한 사고에 갇혀버릴 수도 있어요. 종교 밖으로 확장하고 건드린다는 게 위험할 수도 있는데 굉장히 열려 있는 친구예요. 그리고 아주 관념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재미지게 만드냐는 거죠. 그건 실력이거든요. 이거 너무 띄워주나? (웃음) 아무튼 그런게 좋았어요.

그리고 대본을 보고 친근함이 느껴졌죠. 무속, 풍수는 늘상 옆에 있었던 거예요. 제가 10살 때 폐결핵에 걸린 적이 있었어요. 의사도 포기했었고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는데 어머님께서 절에 가셔서 기도를 해주셨죠. 근데 희한하게 나았어요. 어디가서 사주 보면 제가 이 세상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해요. 저는 신에 대한 감사보다는 제 어머님의 정성이라고 느껴요. 어쨌든 살면서 논리적으로나 이성적으로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저에게는 그런 정서가 있는 거죠.

우리가 이사갈 때도 방향을 보잖아요. 풍수 인테리어도 있고요. 예를 들어 문열고 집에 들어갈 때 꽃 그림이 있으면 재수가 들어온다 하죠. 그거 좋다는데 안 할 이유는 없잖아요.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골치아프게 살지말고 받아들이자는 거죠. 그렇다고 거기 너무 얽매여서 전 재산 다 날리고 그러지는 말고요.

외할머니께서 저 군대 갔을 때 매일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으시고 제대하는 날까지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하셨어요. 기도하는 대상이 천지신명이건 뭐건 할머니 마음이 종교인 거죠. 어릴 때부터 그렇게 봐서 그런지 영화 속에서 묘사된 풍수나 굿 같은 게 너무 친근해요. 하나의 공연 같기도 하고요.

Q. 풍수사 캐릭터는 어떻게 구축해 나갔나.

제가 어떻게 몇 달 동안 40년 땅 파먹고 산 세월을 메꾸겠어요. 그래도 제가 표현에 주안점을 둔 부분은 평생 자연을 보고 산 사람이고 길흉화복의 터를 평생 연구한 사람이니까 산에 올라가도 뭔가 깊이 바라보겠구나 했어요. 흙냄새도 맡고 맛도 보고 나무든 풀 한포기든 뭔가 깊게 바라보는 태도가 김상덕이라는 캐릭터의 가장 큰 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거 하나 잡고 갔습니다.

사실 김고은 배우가 다 했어요. 저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었죠. (웃음) 말은 거창하게 하지만 제가 한 건 거의 없어요. 

죽을 둥 말둥 할 때 딸 결혼식 걱정을 하잖아요. 슬픔 속에서도 웃음이 있죠. 그게 인생이고 김상덕이라는 캐릭터인 것 같아요. 그런 대사를 줘서 장 감독에게 고마워요. 그 장면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서 내가 좀 살렸구나 했죠. (웃음)

Q. 한국 장례 문화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사라져 가는 부분도 있다.

유교적 풍습인데 사실 (매장할) 땅이 없죠.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 화장해 모셨어요. 개인적인 사견으로는 어떻게 모시는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좋은 터를 잡으려는 것도 후손이 덕을 보려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참 나쁜놈들이죠. (웃음) 살아계실 때 잘 해드리지 않고 돌아가시고 나니까 좋은 땅 찾는 게 얄밉잖아요. 어쨌든 시대 흐름에 따라 변하는 거죠. 뭐가 좋다 나쁘다보다는 어떤 마음으로 모시는가가 중요해요.

Q.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현실적인 연기를 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영업 비밀입니다. (웃음) 비결은 없어요. 허구의 인간을 현실에 있을 법하게 그리는 게 제 일이죠. 골백번 감독과 이야기를 하고 맨날 데이터를 입력해서 카메라 앞에 서면 그 인물이 되어 있어야 해요. 배우가 가장 외로운 순간이죠. 그 누구도 제 작업에 개입이 안 됩니다. 디렉션을 주더라도 저 혼자 감당해 내야 할 일이죠. 절벽에 떠밀려 서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머릿속으로 상상하죠. 외형적,내면적인 조건 구분해서 말투까지 여러 가지를 생각하죠. 그러면서 제가 만든 무형의 인물에 자꾸 다가가야 하고 어느  도 밀착이 된 상태에서 나가야 합니다. 촬영장에서 얼마나 밀착이 됐냐 안 됐느냐가 제일 중요하죠.

Q. 장재현 감독의 조감독이라 생각하고 작품에 임하셨다고 했는데 계기가 있다면. 

장재현 감독은 배울 점이 많은 친구예요. 세 번째 상업영화잖아요. 정말 카페트 짜는 것처럼 촘촘하고 구멍이 없어요.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취재하고 빌드업 시키는 과정이 여간이 아닙니다. 콩가루 더 넣어라 과자를 많이넣어라 하면서 소품 흙색깔까지 다 체크해요. 

불도 CG가 아니예요. 그래서 “과학기술은 뭐 악세서리냐? 과학기술의 힘을 좀 빌려야지 왜 고생해서 만드냐”고 했었어요. 근데 진짜 만들더군요. 큰 공 모양을 만들고 호스로 연결해서 LPG에 불을 붙여서 크레인으로 집어 올렸어요. 덕분에 아주 따뜻하게 촬영했어요. (웃음)

Q. 우리나라에 있는 풍수사, 무속인, 기독교 장의사, 불교까지 우리나라에 모든 종교와 신앙이 등장하고 있다.

묘벤져스죠. (웃음) 지관하고 장의사하고 오랜 세월 동안 같이 일해서 딱 보면 아는 사이입니다. 화림은 신발 좋은 영험한 무당이고요. 그들이 옛날부터 같이 협업하던 비즈니스 파트너라는 걸 보여줘야하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유해진 배우 경우는 작품에서 많이 봐서 우리가 묘벤져스를 표현하기에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죠. 

Q. 영화 후반부에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끝까지 뛰어든다.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한 부분은 없었나.

상덕은 묫자리 하나 잘 못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근데 화림이 애가 아프다고 말하죠. 근데 그때까지만 해도 화림이 정말 애를 구하려고 한 것일까하는 의문도 갖습니다. 5억원이 걸려있는 일이니까요. 근데 40년 땅 파먹고 살아온 상덕은 땅에 대한 예의가 있는 사람입니다. 대사 중에 내 손주가 밟고 살아갈 땅이라고 하는 게 있죠. 그 말대로 이대로 방치한다는 건 내가 양심상 도저히 못하겠으니 돈이 안 되는 일이지만 한번 뽑아보자고 한 겁니다. 그게 원동력이 된 것이고 이 일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의 양심적 도리인거죠. 

제 연기나 전반적인 모양새가 천편일률적이기를 바라지는 않아요. 그런 건 재미없죠. 다양한 해석이 좋아요. 개인적으로는 손주 때문이라고 해석했어요.

Q. 전에 이 영화에 대해 인간과 자연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표현한 영화라고 하셨었다.

이 영화를 단순히 귀신영화, 공포영화라고 부를 수도 있어요. 근데 저는 이 작품이 그냥 재미있게 만든 것 외에도 땅에 대한 생각, 정령이나 신이 현재 인간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에 대한 고찰을 영화적으로 뽑아낸 거라고 생각합니다. 장재현 감독의 시각과 태도가 너무 좋았죠. 텔레비전에서 머리 풀어헤치고 나오는 영화처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무서움을 주는 자극적인 영화가 아닙니다. 연출가의 따뜻한 시선이 녹아 있는 그런 점들이 좋았습니다.

Q. 초자연적인 존재와 맞붙는 역할이다. 인물에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그 초자연적인 존재가 시각적으로 보이잖아요. 이건 정말 떡하고 나타나요. 근데 이게 장단점은 있어요. 야구로 치면 직구죠. 이 집안의 숨통을 네가 막고 있었구나 이런 생각이 드니까 그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이 좋았습니다.

풍수사도 어떻게 보면 반무당입니다. 영적인 교감에 대해서 표현해보려고 했죠. 그렇다고 김고은처럼 굿을 할 수도 없었잖아요. 그래서 시선으로 집중해 표현하려고 했죠. 

김고은은 파묘의 손흥민이고 메시입니다. 이도현은 김민재고요. (웃음) 저는 벤치에서 물 떠나르고 이온음료 입에 넣어주는 그런 역할이죠. (웃음)

배우가 이미지에 갇히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예쁜데 그런걸 어떻게 해?”, “내가 잘 생겼는데 살인마를 어떻게 해?”하는 아마추어적인 몹쓸 것에 갇혀 있지않고 용감하게 도전한 거예요. 무속인 역할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김고은 배우가) 스스럼없이 자기를 내려놓고 뛰어들어 몰입하는 걸 봤어요. 선배 입장에서는 너무 대견하고 기특하고 정말 칭찬해 주고 싶어요. 이런 친구들과 작업을 하면 굉장히 좋아요. 앞으로 더 기대가 됩니다.

Q. 연기하신지 40년이 넘으셨다. 배우의 삶을 반추해보신다면.

되돌아보고 싶지 않아요. 얼마전 ‘고도를 기다리며’ 보고 왔습니다. 그분들도 지금 하시는데 저야 핏덩이죠. 몇 년이라는 걸 세고 있지 않아요. 제가 그걸 세면 안 됩니다. 뒤를 돌아보는 건 주저앉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나중에 죽기 전에나 뒤돌아봐야죠. 저는 욕심도 많고 하고 싶은 작업도 많아요. 노인네 흉내 내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왕년에 이랬지 하는 건 배우만이 아니라 창작자들도 가져서는 안 될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미술이든 음악이든 연극이든 거장들, 귀감이 되고 존경받는 예술가들은 절대 그런 게 없어요. 몸이 말을 안 들어도 청년이에요. 신구 선생님 보면서 눈물났어요.

내가 만져보지 못한 접해보지 못한 세상이 있어요. 제가 나름 유명한 작품을 했다고 이 세상을 다 알겠습니까? 그건 아니에요. 제가 지금까지 한 건 빙산의 일각도 안 되죠. 그레서 이런 걸 못 해보고 죽는다면 얼마나 아쉽겠어요. 일단 멜로는 못 해봤잖아요. (파이란) 얼굴도 못 봤는데 그게 무슨 멜로겠어요? (웃음) 난 그런 연애 이제 다시는 안 해요. 얼굴보고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래야 멜로죠. (웃음)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죠. 수십만 수백만 갈래의 인간감정을 어떻게 다 표현하겠어요. 사랑이라는 감정도 이게 내가 저 사람에 대한 게 진짜 사랑이냐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많겠어요. 어떻게 보면 사랑의 정의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 보고 싶은 거예요. 꼭 선남선녀의 사랑만 사랑이냐는 거죠. 전 표현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은 거예요.

Q. 앞으로 청년처럼 작품을 하시려면 체력 관리가 중요하실 것 같다. 

체력적으로는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어요. (웃음) 육체적인 건강보다 정신적인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스타일이라...근데 이젠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어요. 만약 지금 ‘올드보이’ 같은 영화를 찍으라고 하면 못 찍어요. 나름대로 작품 활동을 하는데 지장이 되지 않도록 관리는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