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가여운 것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름다운 미장센 속에서 스스로 연민할 기회를 얻다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불쾌한 우화적 이야기 '송곳니', 로맨스 블랙코미디 '더 랍스터',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킬링 디어', 권력과 욕망을 다룬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등 자신만의 독창적인 비주얼과 연출력으로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아온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그가 여덟 번째로 내놓은 작품은 알라스데어 그레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가여운 것들‘이다.

▲'가여운 것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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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기 전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것처럼 이 작품 속의 여주인공은 순수한 생명체의 영혼을 품고 있다. 완전히 새롭게 세상을 배워나가는 그녀의 모험은 비네팅, 광각, 보케의 만화경(Kaleidoscope) 안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흥미롭다. 바늘구멍으로, 돋보기로, 망원경으로 이 가여운 것들을 잘 관찰해 보라. 폐소공포증과 모순을 안고 살아가는 진짜 가여운 것들은 과연 누구일까.

우리는 그녀가 겪게 되는 기묘한 여정의 길을 함께 하며 인간의 근본과 본질을 고민하고, 인간과 동물의 간극을 따져보며 스스로 연민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갑옷처럼 아름다운 코발트블루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강바닥을 향해 몸을 던진다. 잃은 것은 모든 것의 기억, 남아있는 것은 심장과 육체였다. 

프랑켄슈타인처럼 조각난 얼굴의 기괴한 천재 외과 의사 갓원(윌렘 대포)은 자신이 되살려낸 피조물 벨라(엠마 스톤)를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벨라에게 갓원은 조물주이자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 

▲'가여운 것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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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갓원의 부탁으로 벨라를 관찰하게 된 성실한 제자 맥스(라미 유세프). 내면은 아기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하지만, 외모는 성숙하고 아름다운 벨라의 매력에 맥스는 점점 빠져든다. 결국, 벨라를 사랑하게 된 맥스는 갓원의 허락하에 그녀와 약혼을 한다. 

한편, 바람둥이 변호사 덩컨(마크 러팔로) 또한 벨라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린다. 욕심이 발동한 덩컨은 호기심 충만한 벨라를 부추겨 세상 밖으로 그녀를 잡아 이끈다. 그렇게 흑백의 집을 벗어나자 드디어 벨라의 눈 앞에는 천연색의 세상이 펼쳐진다. 

▲'가여운 것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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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덩컨은 모자라지만 아름다운 벨라를 이용해 자신의 불순하고 음란한 욕망만을 적당히 채울 심산이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빗나간다. 예측 불가한 벨라의 마성과 매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벨라는 ‘잠‘을 잘 때마다 급격한 정신적 성장을 거듭해 나간다. 특히 염세주의자 헤리(제로드 카마이클)를 만나면서 벨라는 세상의 진실과 마주한다. 그리고 연민이라는 감정에 눈을 뜬다. 그런 벨라 앞에 덩컨은 어느새 무릎을 꿇게 된다. 벨라를 소유하려 했던 나르시시스트 덩컨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에게 정신적으로 종속되다 못해 치졸하고 누추한 머저리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여운 것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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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는 디즈니랜드 인근의 판타지적 공간과는 대비되는 생존만이 우선인 비도덕적인 현실을 어린 아이의 시선을 통해 보여준다. 범죄와 성매매라는 냉혹한 현실에 무방비하게 노출된 순수한 아이라는 점에서 ’가여운 것들‘과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에는 아동보호국이라는 제도권의 안전장치가 있다면 이 작품에서는 벨라의 자유의지만이 이 기묘한 세계의 통제수단이다. 호화 유람선을 타고 리스본, 알렉산드리아, 파리를 거쳐 세상에 던져질 때 오롯이 그녀 자신이 모든 것을 선택하며 주체적으로 성장해나간다. 도덕적으로 더럽고 추한 모든 것이 그녀의 관점에서 합리적이며 건설적인 긍정의 무엇인가로 계속 바뀌고 재조립된다. 

▲'가여운 것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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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 사이언티스트에 의해 멋대로 만들어지고, 흉포한 세상 속에 던져져 착취당하는 가여운 벨라라고 여겼던 시선은 그녀가 꼿꼿한 걸음걸이를 보이는 순간 어느새 노쇠한 이들의 고정관념과 격식처럼 폐기된다. 비참한 경험과 트라우마를 겪었음에도 고결한 인간성을 잃지 않은 로맨티시스트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피조물 앞에 진짜 가여운 것들은 누구인가를 곱씹어보게 한다.

▲'가여운 것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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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탐구해나가는 순수한 백지 같은 벨라의 기묘한 오디세이아는 과격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장센과 함께 한다.

자유의지, 선택, 정신적 성장 그리고 현명한 복수의 길을 거쳐 벨라가 일궈낸 새로운 형태의 뉴노멀 가족은 비둘기들처럼 다정하고 재미있게 살아간다. 이 풍요로운 행복감의 귀결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우리는 벨라와 같이 순수한 어린 아이의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가여운 것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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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의 어느 순간에라도 다정다감한 가족을 꾸렸다면 인간의 삶에서 그것만큼 좋은 게 있을까. 따뜻한 인류애는 얼어붙지 않은 마음에서 시작한다. 만약 마음이 얼어붙어 있는 것 같다면 이 따뜻한 가족 영화로 녹여보는 것도 좋은 선택일 것이다.

이 작품은 오프닝과 엔드 크래딧에도 아름다움과 위트가 넘친다. 맨 마지막에는 ’가여운 것들‘과 함께 하는 심장과 뇌의 수미상관을 찾아볼 수 있다.

P.S. 엠마 스톤에게 부디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가여운 것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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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여운 것들(POOR THINGS)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출연: 엠마 스톤, 마크 러팔로, 윌렘 대포 외

각본: 토니 맥나마라

음악: 저스킨 펜드릭스

촬영 감독: 로비 라이언

프로덕션 디자이너: 제임스 프라이스 & 쇼나 히스

의상 디자인: 홀리 와딩턴

헤어 & 메이크업 디자인: 나디아 스테이시

수입/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개봉: 2024년 3월 6일

스크린 평점: 8.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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