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해맑게 던지는 촌철살인의 사회풍자극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일본 작가 에모토 마사루는 자신의 저서 ‘물은 답을 알고 있다’를 통해 물은 생명이고 에너지의 전달 매체이며 의식을 갖춘 존재라고 주장한다. 물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 존재이며, 좋은 말을 하면 인체를 구성하고 있는 물도 예쁜 결정체가 되어 몸이 건강해진다는 게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주장하는 바는 너무나 황당무계하지만 좋은 말, 착한 말을 하며 살면 몸에 좋다는 주장이 우리나라 교육계의 입맛에도 잘 맞았는지 학교 권장도서로 지정되기도 했다. 코미디 같은 한국 교육 현실의 예라고 할 수 있다.

김다민 감독의 영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에는 인생의 정답을 알고 있는 ‘술’이 등장한다. 말도 안 되는 설정처럼 느껴지지만,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초등학생의 눈으로 바라보는 대한민국에 관한 가장 가슴 아프고 현실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김동춘(박나은)은 세상이 너무나 궁금했다. 그래서 무심코 아빠 머리를 보고 “대머리가 영어로 뭐예요?”라고 물어봤을 뿐이다. 하지만 동춘이는 곧 깨닫게 된다. 아무리 질문해봤자 어른들은 자신이 원하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을. 

궁금증이 많은 동춘이에게 돌아온 것은 질문에 대한 정답 대신 머리에 스팀이 올라올 일들뿐이었다. 정교한 사교육의 테트리스 속에 갇힌 동춘. 그 안에서 뒷걸음질 치며 기절도 해본다. 순식간에 무대 공포증까지 생겼다. 그런 삶에 익숙해진 김동춘의 인생도 어느새 11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여행 내내 모든 아이들이 그저 조용히 잠들기를 바라는 지도교사와 함께 수학여행을 떠난 동춘이는 우연히 미스터리한 존재 ‘막걸리’를 만난다. 쌀음료와 달리 어른이 됐을 때만 마실 수 있다는 이 금기의 미생물 액체는 동춘에게 한국어도, 영어도, 일본어도, 러시아어도 아닌 알 수 없는 모스 신호로 말을 걸기 시작한다. 어쩌다보니 그 신호가 페르시아어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동춘. 두뇌 풀가능 모드에 들어가 해석을 해본다. 결과는 놀라웠다. 막걸리가 로또 당첨 번호를 불러주고 있었던 것. 도대체 왜?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의미와 정답을 찾고 싶었던 동춘은 신비한 막걸리와 함께 판타스틱한 모험을 시작한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 SF와 블랙코미디를 넘나드는 기발한 상상력과 촌철살인

김다민 감독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키즈 프로그램 오프닝처럼 시작하는 귀엽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SF 영화다. 하지만 그 행간에는 미래에 대한 답을 찾기 힘든 대한민국의 현실을 냉정하게 적어내려가고 있는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르를 정의할 수 없는 다채로운 재미가 가득하다.

주인공인 동춘이는 또래보다 좋게 말하면 어른스럽고 반대로 말하면 애늙은이다. 무심코 보면 문제집 속 상상 친구 ‘털북’&‘숭이’와 함께 상상 속으로 현실 도피를 반복하는 아이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누구보다 침착하고 이성적인 아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다. 특히 면밀한 분석을 통해 막걸리가 페르시아어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천재 소녀다. 이 정도면 노벨상도 노려볼 수 있는 영재 아닐까 싶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하지만 창의과학부터 코딩까지 왜 해야 하는지 모를 공부에 시달리던 동춘은 점점 총기를 잃어간다. 사실 어른들의 사정도 동춘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엄마 혜진(박효주), 아빠 구포(김지훈)도 대한민국 어린이 시절에는 동춘과 똑같은 교육 시스템 안에서 자랐다. 그렇게 어른이 된 혜진은 산후 우울증 극복하고 사교육 정보 수집을, 구포는 매일 야근과 회식을 견디며 외동딸 동춘을 열심히 키우는 중이다. 어른들도 인생의 정답을 모른 채 살고 있으니 질문에 답을 못하는 게 당연했다.

아마 동춘도 어른이 되면 엄마 혹은 아빠처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높은 확률로 자신과 가장 닮은 서울대 출신 자연인 삼촌 영진(김희원)처럼 모든 걸 버리고 광란의 춤사위를 벌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소꿉친구지만 왜 계속 친구로 남아있는지 알 수 없는 엄친딸 나영(한온유)처럼 능수능란하게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선천적 장벽이 너무 높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별로 반갑지 않은 미래로 향하고 있는 동춘이의 인생 안으로 비집고 들어온 막걸리는 한 줄기 희망의 빛이었다. 동춘과 막걸리는 ‘E.T.’(1982)의 이티와 엘리엇처럼 비밀 친구가 되고 ‘미지와의 조우’(1977)에서처럼 페르시아어로 소통의 벽을 깬다. 덕분에 동춘은 이제 뒷걸음질 치지 않는다. 처음으로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한 단계 성장한 동춘. 모두가 놀라는 가운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취감을 느낀다. 기쁜 마음에 엄마 혜진(박효주)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한다. 이제 동춘과 막걸리는 여정의 마지막 단계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곳곳에 숨겨진 메타포가 드러날 때마다 영화를 처음부터 곱씹게 만드는 매력이 충만한 작품이다. 영화를 보는 관객 각자의 시각에 따라 엔딩도 여러 가지 해석으로 나뉠 수 있다. 누군가는 ‘지구를 지켜라!’(2003)를 생각해 낼 수도 있고, 아서 C. 클라크의 소설 ‘유년기의 끝’을 떠올릴 수도 있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이게 다 꿈이면 병원에 가야 한다”는 대사처럼 동춘이가 겪는 모든 것은 진실일 수도 있다. 막걸리가 알려주는 답이 사실이라면 (비록 부모님은 애가 타겠지만) 동춘에게는 행복한 해피엔딩일 수 있다. 혹은 반대로 동춘이가 알코올에 초 민감성 특이체질이라면 예상 밖의 배드 엔딩일 수도 있다. 

"왜 이러고 살고 있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김다민 감독의 영화는 한국 사회가 겪는 출산, 육아, 교육, 고령화, 비교문화 등 피부에 와닿는 문제들을 고스란히 가져와 풍자하며 촌철살인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모든 일에는 일어나는 이유가 있다(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는 교실벽 격언을 좇아 대한민국의 수많은 동춘이들은 지금도 현실과 상상 속을 오가며 인생의 정답을 찾고 있다. 

P.S. 어쩌면 이 영화가 그려내는 현재가 대한민국의 최전성기일지도 모르겠다. 먼 훗날 “이 영화를 봐봐! 옛날에는 수학여행 갈 때 관광버스가 3대나 필요할 정도로 아이들이 많았네?”라고 회상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를 일이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판씨네마

 

제목: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FAQ)

감독·각본: 김다민

출연: 박나은, 박효주, 김희원 외

장르: 성장 드라마, SF, 코미디, 모험극

제작: 안나푸르나필름

제공: 홈초이스

배급: 판씨네마

공동배급: 홈초이스 

러닝 타임: 91분

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24년 2월 28일

스크린 리뷰 평점: 7.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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