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여기저기에서 불우이웃 돕기 성금이 쏟아진다. 1년에 한 번이라도 추울 겨울 가난하고 아픈 이웃들을 생각하고 나눔을 실천하려는 마음에서다. 성탄절 분위기도 한몫을 한다.

그러나 올 겨울은 그 도움의 손길이 유난히 뜸하고, 썰렁하다. 가장 큰 손인 기업들의 연말 성금부터 선뜻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30억 원 이상 기부한 13개 기업 중 지금까지 겨우 절반만 성금을 냈다. 구세군 자선냄비를 찾는 시민들의 발길도 예전만 못하다. 다음 달까지 모금목표액을 1%씩 달성할 때마다 1도씩 올라가는 ‘사랑의 온도탑’도 겨우 전국 평균 20도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도나 낮다. 지금가지의 모금액도 지난해의 절반 수준이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의 어지러운 정국 탓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가져온 혼란과 충격으로 국민들이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를 잃어버렸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 기부와 관련 기업 총수들이 검찰과 국회에 불려나가고, 국민들로부터 정경유착의 의혹을 사고 있어 기부에까지 잔뜩 몸을 사리고 있다.

여기에 청탁금지법이 막연하게나마 사회 전반의 기부심리를 위축시켰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이유는 장기불황에 따른 위기의식으로 국민들이 지갑을 꼭 닫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5.8로 외환위기 직후인 2009년 4월 이후 최저수준이다. 성금을 낼 마음을 쉽게 먹을 수가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원금이 끊겨 이미 급식을 줄이거나 중단한 자선단체들도 한 둘이 아니다. 소위 ‘달동네’ 독거노인과 조손가정을 위한 연탄과 쌀 기부도 지난해에 보다 30%나 줄어 힘겨운 겨울나기를 하고 있다. “IMF 때보다 요즘이 더 힘든 것 같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물론 정기적인 기부가 가장 좋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이 10%도 안 된다. 그러니 비록 일회성이지만 전체 기부금의 70%를 차지하는 연말연시의 기부금이라도 많아야 한다. 이런 때일수록 대기업들이 나서야 한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핑계를 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진짜 사회적 책임과 공헌을 다한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에 앞장서야 한다.

다행히 지난 19일 LG그룹이 120억원의 성금을 쾌척한데 이어 20일에는 삼성그룹이 최순실 사태 이후 “외부의 기부요청에 투명하게 집행하되 사회공헌 액수를 줄이지는 않는다”는 원칙 아래 이웃사랑 성금으로 500억원을 내놓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그룹과 SK그룹도 조만간 지난해와 같은 수준인 250억 원과 120억 원의 성금을 각각 내놓을 계획이다. 모두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출연금보다는 많다는 것도 눈길을 끈다. 이들의 뒤를 이어 다른 기업들도 연말성금에 동참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어려울 때 더욱 이웃들을 생각하고, 온정을 나누어왔다. 조선업계 구조조정으로 어느 때보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많고, 여전히 청년실업과 노인빈곤으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은 이때, 국민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의 따뜻함과 힘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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