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계, 폐지 따른 부작용 충분히 검토 의견…단통법 폐지 목적 재점검 필요 지적도
[SRT(에스알 타임스) 문재호 기자] 탄핵 정국의 혼란으로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에 관한 법률(단통법)' 폐지가 연내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당초 연내 폐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국회 일정이 탄핵 정국의 영향을 받으며 폐지 논의에 차질이 예상된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으며, 전문가들도 단순 폐지보다는 명확한 목적과 체계적인 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단말기 제조사, 구매 장려금 의무 제출 시 기밀 정보 유출 우려
9일 국회 등에 따르면 법제사법위원회에 단통법 폐지안이 상정될 예정이었으나 아직 오르지 못했다.
업계는 단통법 폐지안이 이번 회의를 거쳐 10일 본회의에서 처리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심사 대상에서 제외되며 연내 폐지는 사실상 무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단통법 폐지안은 이동통신 단말기 공시지원금(휴대전화 구입 시 통신사로부터 일정 기간 약정을 통해 할인 받는 금액) 제도와 추가지원금 상한은 없애고 선택약정할인 제도는 전기통신사업법에 이관해 유지하는 내용이다. 단말기 판매 사업자를 비롯해 이동통신사 간 적극적인 지원금 경쟁을 복원해 소비자 후생을 높인다는 게 폐지 취지다.
단통법 폐지 논의가 지연되자 업계는 한숨을 돌리고 있다. 특히, 폐지안이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직후부터 업계에선 “폐지로 인해 더 큰 규제가 생긴다”는 우려가 나왔다.
먼저 개정안에 포함된 이동통신 단말기 제조사들의 '단말 구매 장려금' 의무 제출로 제조사들이 영업 기밀 유출 우려로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아예 없앨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단말기 제조사들은 표면적으로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속으로는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모습인 것으로 전해졌다. 단통법 폐지로 규제가 오히려 강화됐다는 것이 제조사들의 시각이다. 이번 개정안에 제조사에게 장려금 관련 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하는 조항이 새로 포함됐다는 게 그 이유다.
그동안 통신사와 달리 제조사들이 유통채널에 지급하는 장려금의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제조사들은 이러한 정보가 공개될 경우 해외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고수해왔다.
제조사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예컨대 보조금 총액이 50만원인데 이 가운데 10만원이 제조사 부담이라면, 소비자들은 단말기 가격 중 10만원을 불필요한 비용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제조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보조금만큼 제품 출고가를 인하해야 하는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업계 일각에서는 장려금 자료 제출이 의무화될 경우 제조사들이 부담을 줄이기 위해 보조금 지급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황동현 한성대 교수 겸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집행위원장은 "삼성전자가 SK텔레콤·KT·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와 외국 통신사업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될 것이기에 단통법 폐지 후 후속조치를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담긴 '의무보고' 조항을 없애는 것이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일각에서는 단통법 폐지와 폐지 후속조치 개정안이 소비자들의 이동통신 단말기 구매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법안 발의자인 김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제3자에게 제조사의 기밀정보(소비자 이동통신 단말 구매 장려금)를 넘길 리 없다”며 “이동통신 이용자 이익에 충실하다는 취지에서 제조사가 소비자에게 장려금으로 얼마를 썼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경영학부)는 "가계 통신비에서 단말기 가격이 높다는 건 삼성전자도 인정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해당 법에 따라 규제 당국이 (장려금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제조사들이) 적절한 장려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진단했다.
◆단통법 폐지 후 소비자에게 실질적 혜택 제공 미지수
단통법이 폐지되고 후속조치인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고 해도 소비자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자율 규제를 내세웠지만 제조사에 대한 규제는 강화됐고 유통채널에 대한 기존 규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통법 폐지 이후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수차례 토론회가 열렸지만 ▲사업자 간의 공정한 경쟁 활성화 ▲가계통신비의 중요한 요소인 단말기 가격 인하 ▲지원금 차별을 초래했던 불투명한 유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시장 상황을 미리 단정하기는 어렵고 모든 이해관계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다만 단통법 폐지의 명확한 목표가 설정되지 않으면 2014년 10월 단통법 시행 당시 같은 시장 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대선 전후로 이름만 바꾼 또다른 단통법이 등장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학계와 업계 모두 단통법을 성급히 폐지하기보다 충분한 검토와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폐지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이에 따른 부작용을 철저히 분석하며 충분한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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