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 SR타임스
▲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 SR타임스

“서울 한강변에 원전을 지으면 안 됩니까? 지진위험이 있는 활성단층도 없고, 송전선로도 짧아서 원전입지로 더 낫지 않습니까?”(김유창 동의대 산업안전공학과 교수)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서울에 지으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이종호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

“그러면 원전 반경 30km 안에 사는 340만 부산시민은 개·돼지입니까. 왜 사회적 합의도 없이 원전건설을 강행합니까.”(방청석)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놓고 최근 벌어진 갑론을박이다. 정부 주최로 지난 11월 24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신고리 5·6호기 건설 시민대토론회’에서다. 근래 들어 한국 원전이 안고 있는 문제를 가장 적나라하게 공론화한 자리가 아닌가 싶다.

 

일본사회, <동경핵발전소> 감독을 ‘왕따’

이보다 더 실감나는 영화 두 편이 생각난다. 2004년 일본에서 선보인 <동경핵발전소>와 최근 국내 개봉한 <판도라>다. 원전이 ‘절대’ 안전하다면 서울에 못 지을 이유가 없다. <동경핵발전소>는 원전옹호론자의 그런 논리를 익살스럽게 격파한다.

도교도 지사로 분한 야쿠쇼 고지는 도쿄의 재정적자 해결을 위한답시고 원전유치를 전격 선언한다. 참모들의 반대에 “원전은 절대 안전하다며?” “도쿄는 전기를 많이 쓰잖아!”라고 반박한다. 문제의 본질을 역설적으로 꼬집으며 전하는 탈핵 메시지는 유쾌하기까지 하다.

원전이 ‘절대’ 안전하지 않다면? <판도라>는 그것이 현실화된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반경 30km 안에 340만 명이 사는 곳에 원전이 있다면 그것은 ‘동경핵발전소’의 현실이다. 후쿠시마사태는 <판도라>에 리얼리티를 부여해주었다. 그런 재난상황에 대비한 계획도 훈련도 없을뿐더러, 그것이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은 비록 <판도라>를 보지 않더라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판도라>는 재난이후를 다루지 않았다. 사실 원전재난은 그것이 더 가공스럽다. 지난 9월 한 민간단체가 고리원전에 중대사고가 나는 상황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주변 80km 이내 조기 사망자 수가 1만1000여 명, 50년간 누적 암 사망자 수가 2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 SR타임스
▲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 ⓒ SR타임스

<판도라> 흥행, 경주지진에 의한 위기의식 덕분?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앞에 소개한 토론회에서 김유창 교수는 “일본 후쿠시마사태와 같은 사고가 고리원전에서 난다면 부산은 400년 동안 사람이 살 수 없는 유령도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행하게도 <동경핵발전소>는 흥행에 실패했다. 반면 개봉 4주차에 접어드는 <판도라>는 4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다. 성공할 것 같았던 <동경핵발전소>가 흥행에 참패한 원인을 일본의 탈 원전단체 대표로부터 들은 적 있다. 이른바 한국의 ‘원전 마피아’ 격인 일본 ‘원자력촌’ 및 그와 밀착한 언론 등의 왕따로 야마가와 겐 감독이 <동경핵발전소>를 만든 뒤 일본사회에서 철저하게 퇴출됐다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판도라>는 시운을 잘 탄 것 같다. 지난 4·13총선을 통해 탈핵분위기가 확산됐고, 9·12 경주지진 이후 원전의 안전문제가 크게 이슈화했다. 게다가 개봉직전 불붙은 ‘촛불’의 덕도 톡톡히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원전업계와 이를 지원하는 세력의 영향력은 위축되고 사회적 분위기가 탈핵 쪽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2016년은 환경 분야에서 굵직한 사건이 많았다. 경주지진, 가습기살균제사태, 미세먼지, 폭염, 전기요금누진제, 파리협정, 조류인플루엔자(AI) 등이 주요 키워드였다. 이 가운데 경주 지진은 환경단체와 환경전문매체 등에서 뽑은 ‘올해 10대 뉴스’의 상위에 자리한다.

 

영화가 원전정책 변화의 동력이 될 수도

경주지진이 환경 분야에서 의미 있는 뉴스가 된 것은 물론 그것이 원전안전문제와 연결되면서다. 경주에 규모 5.8의 지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550여회 여진이 계속되면서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국민이 자각하게 됐다. 더욱이 지진발생 가능성이 높은 영남의 활성단층 위에 원전이 밀집해 있는 현실이 부각되면서 원전안전을 현실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게 됐다.

원전문제는 경주지진이 없었더라도 2016년을 관통한 뜨거운 이슈였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허가는 탈핵운동에 불을 붙였다. 밀양송전탑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던 신고리 원전 3호기가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일 상업운전에 들어갔다. 환경단체와 주민단체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백지화와 월성 1호기 수명연장 취소를 주장하며 소송전과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판도라>의 성공이 이런 활동에 활력을 주고 원전정책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경핵발전소>의 실패 후 일본은 후쿠시마 사태를 맞았다. <판도라>는 ‘절대’ 그런 길을 가서는 안 된다. 한국의 원전안전과 정책변화를 위한 예방주사가 되어야 한다. <논설위원 · 환경재단 그린미디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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