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에서 산업 트렌드 변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기업들의 투자 방향도 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몇해 전까지 기업의 미래성장동력으로 불리던 바이오, 배터리 분야 투자가 상대적으로 침체에 접어든 반면 AI(인공지능), 반도체, 로봇 분야가 각광받고 있다. 

 

이른바 VC(벤처캐피탈) 분야 뿐만 아니라 국내 굴지의 대기업도 이러한 투자 경향성을 따라가고 있다. 재계는 뒤처지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만큼 관련 업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다만 대기업이라도 사업 다각화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선택과 집중을 통해 ‘옥석가리기’가 절실하다. 

 

▲ 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형 셀투팩 이미지 ⓒ LG에너지솔루션
▲ LG에너지솔루션 파우치형 셀투팩 이미지 ⓒ LG에너지솔루션

바이오업종, 신뢰 흔들리며 투자 침체

배터리, 유망하지만 자금 부담 커

[SRT(에스알 타임스) 유수환 기자] 미래 성장을 주도할 4대 산업(BBIG)으로 분류됐던 배터리와 바이오 업종이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현상과 투자 위축으로 고전하고 있다. 두 산업은 성장 가능성이 높지만 투자 결실을 내기엔 장기간의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배터리 업종은 향후 반도체 패권을 위협할 만큼 유망산업이라고 불리지만 아직 기술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고, 바이오는 투자 대비 결과물에 대한 리스크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도 바이오, 배터리 업종의 성장성은 인정하면서도 투자에 대해서는 속도조절을 하고 있다. 

◆ 유망업종이지만 리스크 커…배터리·바이오 투자 위축 

최근 몇 년간 국내 바이오 업계에 대한 투자가 크게 위축되면서 투자 규모가 1조원 이하를 기록했다. 이는 2018년 이후 5년만이다. 

지난해 바이오·의료 업종에 신규 투자된 금액은 8,844억원으로 2022년 1조1,058억원 대비 20% 줄어들었다. 

신규 투자는 물론 기존 투자의 만기 연장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바이오벤처들의 자금난은 예상보다 심각하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현재 VC(벤처투자)나 IPO 전 분야에서 제약바이오 투자를 위한 투자금이 말라버린 상태”라며 “일부 대기업들이 대규모 바이오 투자 유치를 한다고 해서 현재 관련 업종은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과거 제약바이오 업종에 대한 VC 투자가 활성화 됐던 시기에 일부 바이오 기업들이 투자금을 연구개발 보다는 대주주의 사적 이익에 사용되면서 신뢰를 상실했다”고 말했다. 

바이오 투자가 위축된 배경은 역설적으로 코로나19 여파가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전세계적 유행)으로 번지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대대적인 백신·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하지만 셀트리온과 SK바이오사이언스를 제외하고 효과적인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는데 실패했다. 셀트리온의 코로나19 치료제 역시 시장에서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이후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까지 겹치면서 바이오 투자에 대한 시장 열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지난해 기업공개(IPO)에 성공한 바이오·제약·헬스케어 기업 수는 12개로, 2020년(27개)의 절반도 못미쳤다. 지난해 IPO를 자진 철회한 제약바이오 기업은 ▲글라세움 ▲뉴온 ▲레보메드 ▲메디컬아이피 ▲시선바이오머티리얼스 ▲쓰리디메디비젼 ▲엔솔바이오사이언스 ▲한국의약연구소 등의 기업이 지난해 IPO를 자진 철회했다.

전기차 수요 부진으로 인해 배터리 업종도 혹한기를 맞고 있다. 현재 글로벌 전기차 기업 테슬라 뿐만 아니라 미국 주요 완성차 제조사들도 전기차로의 전환 계획이 연기되는 분위기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수요가 예상보다 부진해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GM은 올해 1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다양한 전기차 출시 계획과 생산량 계획(20만~30만대) 수준을 유지했으나 올해 1분기 판매량은 목표치에 한참 못미친 1만8,000대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국내 2차전지 업종의 실적도 부진하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8일 공시를 통해 올해 2분기 매출 6조1,619억원, 영업이익 1,953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9.8%, 영업이익은 57.6% 각각 줄어든 수치다. 

아직 잠정 발표가 나지 않은 타 기업의 실적도 낙관적이지 않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SDI 2분기 실적 전망치는 매출 5조3,728억원, 영업이익 3,805억원으로 전년 동기(매출 5조8,406억원·영업이익 4,502억원) 대비 각각 8%, 16% 감소가 예상된다. 10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SK온은 2분기에도 수천억원대 영업손실을 낼 전망이다. SK온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10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간 SK온은 2분기에도 3,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전망이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3일 오전 11시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바이오 캠퍼스 1공장 건립을 위한 착공식을 개최했다. ⓒ 롯데바이오로직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3일 오전 11시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바이오 캠퍼스 1공장 건립을 위한 착공식을 개최했다. ⓒ 롯데바이오로직스

◆ 재계 바이오·배터리 투자 신중모드로 전환 

최근 재계는 바이오, 배터리 업종 투자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종은 국내 대기업에게는 새로운 수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성장산업이다. 다만 투자 기조는 기업마다 엇갈리고 있다. 오히려 신약개발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기보단 인수합병(M&A)을 통해 제약사를 편입시키거나 당장 수익을 내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LG화학은 지난 2023년 미국 바이오기업 아베오 파마슈티컬스(아베오)를 약 8,000억원에 인수했다. 이는 제약사 M&A 가운데 역사상 3번째 큰 규모다. LG화학 관계자는 “제약바이오 사업을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확대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특히 항암 분야는 글로벌 시장 가운데 미국이 가장 비중이 큰 만큼 해외 시장을 넓히기 위해 인수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은 2021년 7월 CJ바이오사이언스(당시 천랩)를 인수했다. CJ바이오사이언스는 마이크로바이옴에 특화된 경쟁력을 발휘한다. 마이크로바이옴은 사람의 몸속에 존재하는 수십조개의 미생물과 그 유전자다. 마이크로바이옴 의약품은 우리 몸속 미생물 생태계를 활용해 병을 치료하는 것으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를 생물의약품에 추가했다.

롯데그룹은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달 3일 송도 1공장 착공식에 참여해 “송도에서 시작되는 롯데바이오로직스의 여정은 롯데그룹의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대기업이라도 바이오 투자는 부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규모 연구개발(R&D)이 필요한 바이오 사업 특성상 흑자 전환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CJ바이오사이언스는 CJ제일제당으로부터 인수된 이후에도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CJ바이오사이언스의 영업손실은 지난 2021년 101억원, 2022년 332억원, 지난해는 331억 원을 기록했다. LG화학이 인수한 아베오는 지난해 180억7,1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나 경쟁사(삼성바이오로직스)의 성장세를 넘기에는 차별점이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바이오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부문에서 후발업체이고, 글로벌 시장에서 주도권은 여전히 삼성바이오의 위상이 높다”며 “CDMO사업은 반도체공정처럼 복잡하고 정교하다. 그런 측면에서 삼성은 이러한 사업을 오랫동안 해 왔으나 롯데그룹은 식음료와 유통을 베이스로 한 기업이라는 측면에서 노하우가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배터리 사업 투자에 대해서도 신중한 입장이다. SK그룹은 배터리 사업 후발주자로 진출했기에 경쟁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와 격차를 줄이기 위해 조 단위가 넘는 투자를 진행해왔다. 하지만 SK그룹의 배터리 핵심 계열사인 SK온의 재무부담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SK온의 연결기준 순차입금은 물적분할로 설립된 2021년 말 2조9,046억원에서 지난해 말 12조9,511억원까지 늘어났다. 영업적자도 여전하다. SK온 연간 영업손실 금액은 ▲2021년 3,102억원 ▲2022년 1조727억원 ▲2023년 5,818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SK그룹 사업재편의 핵심인 SK온이 이달 1일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C레벨(분야별 최고 경영자)’ 전원의 거취를 이사회에 위임했다. 또 올해 ‘분기 흑자전환’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모든 임원의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 그룹의 신규 투자가 인공지능(AI)·반도체에 집중되면서 SK온은 신규 공장 증설도 속도조절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LG에너지솔루션도 최근 전기차 캐즘로 인해 미국 내 짓고 있는 배터리 3공장 건설을 일시 중단했다. 다만 공장 증설이 전면 중단은 아니며 업황 변화에 따라 재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차전지 업종이 속도조절에 나선 것은 전기차 시장 수요 둔화가 영향을 미쳤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는 올해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률을 지난해(33.5%)의 절반 이하인 16.6%로 전망한 바 있다.

김현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2차전지 산업 가치평가(Valuation)의 기준점은 미국 전기차 시장의 가파른 성장 지속 및 각국 전기차 지원 정책 강화 여부에 있다”면서 “개별기업들의 현재 시총은 바닥 수준 근접해가고 있으나,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 값을 도출하는 가정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미래성장성이 높은 업종인 만큼 투자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배터리 산업이 궤도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래가치가 높기에 투자는 여전히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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