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제가 없던 치매 시장에 ‘레켐비’와 ‘키순라’가 등장해 치료가 간절했던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다만 해당 치료제들도 이미 손상된 인지기능의 회복은 불가한 데다 적용 대상이 알츠하이머병 환자 또는 초기 치매 단계 환자로 한정적이다. 연간 3,500만원 내외의 높은 약가, 아밀로이드 관련 영상 이상(ARIA) 등 여전히 과제가 많은 치매 치료제의 개발 역사와 허들 등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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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T(에스알 타임스) 방석현 기자] 대표적인 언멧니즈(미충족 수요) 영역이었던 치매 분야에 근본 치료제가 등장해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치매는 신경퇴행성 질환으로 인한 인지 기능 저하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증후군을 포괄하는 개념이며 알츠하이머, 파킨슨 등이 가장 흔한 유형이다. 

치매는 오랜 기간 ‘난공불락’의 영역이었다. 1993년 최초 치매치료제 ‘타크린’은 알츠하이머 병증이 학계에 보고된 지 87년이 지나서야 등장했으나 부작용으로 얼마 되지 않아 퇴출됐다. 이후 도네페질(1996년), 바스티그민(1997년), 갈란타민(2000년), 메만틴(2003년) 등이 개발 돼 현재까지 사용 중이나 이들은 주로 증상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근본적인 질병 진행을 막지 못한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치매 원인 물질인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생성 억제 및 제거를 위한 치료제 개발이 본격 진행되었으나 낮은 유효성과 부작용으로 실패를 거듭했다.

한국은 고령화 가속화로 노년층 인구 자체가 증가하고 있는 데다 의료기술 발전으로 평균 수명이 늘어나게 되면서 치매 환자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65세 이상 인구 중 약 10%가 치매를 앓고 있으며, 전체 환자 수는 91만명에 달한다. 대부분이 알츠하이머 환자로, 연간 관리비용만 18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글로벌 제약사, 레켐비·키순라 등 출시…근본 치료는 '논란'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켐비(왼쪽)와 키순라. ⓒ에자이, 일라이 릴리
▲알츠하이머 치료제 레켐비(왼쪽)와 키순라. ⓒ에자이, 일라이릴리

레켐비(레카네맙)는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최초의 아밀로이드 단백질 표적 근본 치료제로 꼽힌다. 2023년 7월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 2024년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국내에선 서울아산병원, 분당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등에서 처방 중이며 유통은 한국에자이에서 하고 있다. 레켐비는 알츠하이머의 주요 원인인 아밀로이드 베타(Aβ) 단백질의 응집을 억제해 병의 진행과 인지 기능 저하를 늦춘다. 임상3상 결과, 1년 6개월 투약 후 위약군 대비 병의 진행을 약 27%, 평균 5개월가량 지연시키는 효과가 확인됐다. 다만 최근 영국정부 산하 국립우수건강관리원(NICE)은 레켐비의 급여 적용을 거부했다. NICE는 레켐비의 가격 대비 치료의 유익성이 크지 않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미국 기준 레켐비의 연간 약가는 2만~2만5,000파운드(약 3,700만~4,600만원)로 전해진다. 반면 레켐비 임상시험 결과에 따르면, 레켐비는 임상 18개월차에 위약군 대비 치매의 단계를 평가하는 'CDR-SB(임상 치매 척도)'를 0.45점 개선했다. NICE는 이를 비용 대비 미미한 치료 효과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 에자이 관계자는 “레켐비의 보험급여 적용을 추진 중인 상황”이라며 “레켐비는 증상 완화에 불과한 기존 치료제와 달리 근본 치료제로 허가를 받았지만 개인에 따라 효과에 편차는 있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영국제약사 일라이릴리가 개발한 키순라(도나네맙)는 체내에 과도하게 축적된 아밀로이드 플라크(판)의 제거를 도와 초기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인지 저하 속도를 지연시키는 신약으로, FDA와 일본 후생노동성의 허가를 받은 상태다.   

기술수출 등 치료제 개발 성큼…동국생명과학·부광약품·에이비엘바이오 주목

치매는 환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과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이어지게 되므로 효과적인 치료와 함께 예방과 조기 진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국내 제약사들은 예방과 조기 진단 등 폭넓은 영역에서 개발에 나선 상태다.

동국제약의 자회사 동국생명과학은 올해말까지 알츠하이머 진단 자기공명영상(MRI) 조영제 개발 연구를 완료할 예정이다. 보건복지부 국책과제로 진행되고 있는 이 연구는 2021년부터 4년여간 진행해 온 만큼 연구에 성공할 경우 실적 증대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서울 동작구 부광약품 사옥. ⓒ부광약품
▲서울 동작구 부광약품 사옥. ⓒ부광약품

국내 제약사 중에선 중추신경계(CNS) 부문의 강자 부광약품이 치료제 개발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부광약품은 지난해 조현병 치료제 라투다를 출시해 시장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라투다는 조현병 및 양극성 장애 우울 증상을 빠르고 지속적으로 개선시키며, 이상반응(체중증가)도 줄여준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파킨슨병 환자의 합병증인 운동장애, 아침무동증 치료제 JM-010(임상2상 종료), CP-012(임상1b상)를 개발하고 있다. 개발 초기 단계의 파킨슨병 치료제 후보물질도 연구 중이다. 해당 치료제는 증상완화가 아닌 근본 치료제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부광약품 관계자는 “알츠하이머, 파킨슨 모두 현재까지 뇌에 있는 원인 단백질에 독성이 쌓여 발병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건강한 사람은 단백질에 쌓인 독성을 자체적으로 제거하는 능력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겐 약물을 통해 독성을 제거하는 기전이 현재까지의 최신 지견인 만큼 사람에 따라 치료 효과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오텍의 기술수출도 근본 치료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 4월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과 4조원에 달하는 '그랩바디B' 플랫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그랩바디B는 새로운 방식으로 약물을 뇌에 전달하는 기술이다. 기존의 치매치료제 실패 원인이 유효물질이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던 만큼 그랩바디B는 이의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랩바디B는 치료 후보물질에 한정돼 있던 기존과는 달리 플랫폼 기술의 첫 수출 사례라는 점과 동시에 국내 제약바이오 역사상 두 번째로 큰 규모란 점에서 업계에 긍정적인 신호를 주고 있다.

낮은 환자 접근성 ‘숙제’…보험 적용·인식개선 등 필요

글로벌 고령화로 인한 치매 인구 증가와 최근 치매 치료제 개발 속도 등을 감안 시 글로벌 치매치료제 및 관련 진단 시장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일본은 레켐비 승인과 동시에 보험 급여 적용을 통해 약가 부담을 낮추면서 처방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면서 현재 누적 처방 건수가 한국의 10배 이상인 8,000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치매는 조기 발견 시 질환의 발병을 늦추는 등의 높은 선택지를 통해 환자를 관리할 수 있는 만큼 치매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임을 자각하고 관련 진단과 진찰에 적극적으로 임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한 인식 개선 등의 사회적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혜연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치매치료제의 약가가 높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안 될 경우 환자의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급여 등재를 위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며 “민간보험 영역에서도 향후 고령인구 증가로 치매치료제 보험에 대한 수요 확대가 예상되는 만큼 적극적인 상품 개발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정신질환 진료 시스템은 편견이 줄어들며 수요가 급증하고 있지만, 중증정신질환 환자는 스스로 질환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체계적인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며 "응급과 급성기 치료가 중요하지만, 현실은 관련 병상이 축소되고 만성 적자가 이어지고 있으며, 사례관리와 같은 지속적인 서비스는 여전히 시범사업 수준에 머물러 있어 치료 공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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