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T(에스알 타임스) 전근홍 기자] 도둑이 따로 없다. 횡령에도 급수가 있다. 이건 도무지 저질이어서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고객이 찾아가지 않는다고, 슬쩍 호주머니에 돈을 훔쳐가는 것을 두고 좋게 포장할 말이 없다. KB손해보험에서 터진 횡령사건을 두고 객관적 시각에서 접근한 촌평이다.
올해로 취임 2년차를 맞이한 구본욱 KB손해보험 사장이 지난 1월 부서장 200명을 모아놓고 벌인 경영전략회의에서 “손해보험의 명작, 손해보험의 스탠다드로 거듭나자”고 한 말이 참 심오하게 다가온다. 손해보험 업계를 대표해서 고객 돈을 서리하자는 말로 들린다. 괜한 시비가 아니다.
KB손해보험은 지난 10일 임직원이 고객의 장기간 미청구한 해지환급금을 임의 송금하는 방식으로 14억205만원을 횡령했다고 공시했다. 보험 조건을 적용받는 피보험자가 사망해 계약이 해지된 건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횡령 기간은 작년 8월 말부터 이달 5일까지인 것으로 드러났다. 횡령사고 이후 KB손해보험은 임직원을 경찰에 고소하고 이러한 환급금 항목 등에 대해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횡령 그리고 경찰 고소, 사후 대책에 대한 지극히 간략한 코멘트다. 고소는 피해 당사자가 하는 것이고 KB손해보험이 제3자에 해당할 수 있어 고발을 하는 것이 맞다. 피해자 코스프레다. 고객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게 사과의 정석은 아닌데도 말이다.
보험은 낙성계약(諾成契約)이다. 이미 만들어진 보험 상품을 두고 보험사 직원의 권유에 의해 고객이 동의 의사를 표시하면, 계약이 체결되는 구조다. 전문적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경우 전적으로 직원의 말 한마디에 피(?)같은 돈을 매월 얼마씩 장기간 맡겨야 한다.
보험사 그리고 그 곳에 소속된 직원들은 참 불친절하다. 아플 때 곁에 있는 소중한 보험이 아니게 된 지 오래다. 가입을 유도할 때는 어려운 보험용어를 늘어놓고 꼭 필요한 것처럼 권유한다. 하지만 보험금을 청구하면, 온갖 증빙서류를 요구한다. 상대적으로 고액을 청구하는 경우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병원 의사에게 재차 진단을 받도록 강제한다. 명분은 그럴싸하다. 선의의 고객이 납입한 보험료의 누수(보험사기)를 막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KB손해보험의 횡령은 죄질이 나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고객이 찾아가지 않은 돈을 이야기도 하지 않은 채 ‘인 마이 포켓(?)’했기 때문이다.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보관중이라고 말할 것으로 기대한 게 멍청했던 것 같다. 눈먼 돈이니 탈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범죄 의도가 곱씹을수록 역겹다.
사과를 먼저 했어야 했다. 구본욱 사장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일개 직원이 고객 돈을 훔친 일이 사장까지 나서야 하는 일이 아니라고 느꼈다면, 최고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해 봐야 한다.
리더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사태수습에 대한 ‘책임의식’을 엿보고자 하는 심리와 맞닿아 있다. 결정권을 지닌 리더의 사과로 원만히 해결될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진정성’ 이다.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했으며,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녹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귀신도 빌면 돌아선다고 했다. 신뢰를 회복하고 싶다면 두 손으로 싹싹, 정성을 다해 비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은 신뢰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횡령 액수가 적어서 안심하고 있다면 오산이다. 국내에 있는 보험사들이 팔고 있는 보험은 거기서 거기다. 그렇다면, 신뢰를 먼저 팔아야 한다. 구본욱 사장의 짧고 간결한 “잘못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롭게 거듭 나겠다”는 말 한마디가 무지하게 듣기 어렵다. 과한 요구가 아닌데도 말이다. 내부통제를 위한 책무구조도를 운영하고 있다느니 하는 뻔한 말은 하지도 마라. 펀(fun)하게 들린다. 그런 말은 가슴 속에 담아 둘 때도 됐다. 손해보험 업계의 스탠다드 타이틀을 따내고 싶다면, 고객들에게 먼저 빌어야 한다. 그게 정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