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와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기업들이 미래 성장동력을 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투자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들은 공격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대규모 인수합병(M&A)과 같은 수조원대 '빅딜'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과 강소기업에 대한 지분투자도 확대하고 있다. 이는 사업영역의 확대와 산업의 선두주자로 가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에 SR타임스는 주요 대기업들의 미래 먹거리 사업 확보를 위한 투자 전략을 다각도로 분석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삼성전자

[SRT(에스알 타임스) 유수환 기자] “삼성전자의 M&A는 많은 부분이 진척됐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난 3월 20일 경기 수원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55기 정기주주총회에서 M&A 진행 상황에 대한 주주들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스타트업이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에 꾸준히 지분투자해 왔으나 조(兆) 단위의 빅딜은 2016년 전장·오디오 회사인 하만 인수 이후 자취를 감췄다. 이는 대규모 투자에 대한 리스크 관리 측면이 있겠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오너 경영 체제에 의존한 구조가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최근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일정부분 해소된 만큼 그동안 지체됐던 대규모 M&A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이재용 사법 리스크 이후 빅딜 '제로’…글로벌기업 위상과 다른 행보 

삼성전자는 국내 시가총액 1위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이다. 이같은 위상과 달리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 이후 대규모 M&A에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 SK그룹이 공격적인 투자에 몰두한 것과 대조적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반도체 소부장 기업, 핀테크, 로봇, 헬스케어 등 약 260개의 벤처투자를 진행해왔다. 

소극적 투자 전략은 변화하는 반도체 시장을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실제 지난달 20일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 투자 적기를 놓친 것에 대한 주주들의 원성이 들끓었다. 오히려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선제적으로 HBM 시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면서 시장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삼성전자는 이와 관련 “이재용 회장과 관련된 사법 리스크가 투자에 발목을 잡았다”고 해명해 왔다. 지난 2020년 당시 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옛 CE)부문 대표는 “전문경영인으로는 불확실성 시대 투자가 일어나지 못한다. 이 어려운 시절을 전문경영인이 잘 극복할 수 있을까 걱정 많이 한다. 큰 숲을 보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리더 역할은 이재용 부회장이 한다”며 오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론도 있다. 역설적으로 삼성전자라는 글로벌 기업이 이재용 회장 개인에 의존하는 것은 부실한 거버넌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이재용 개인 1인의 근황 여부에 따라 기업의 전략이 흔들린다면 오히려 거버넌스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수십억의 고액연봉을 받는) 전문경영인들이 스스로 제 몫을 못한다고 고백한 것과 다를바 없다”고 지적했다. 한종희 부회장은 지난해 69억400만원의 보수를 받았다.    

전문경영인 위주로 구성된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M&A에 인색하지 않다. 미국 경제매체 CNBC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미국의 빅테크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의 M&A 건수는 56건, 아마존과 알파벳(구글 모회사)은 각각 29건, 22건에 달한다. 규모도 수십조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M&A 거래 규모는 257억달러(약 34조7,386억원), 알파벳 220억달러(약 29조7,484억원) 수준이다. 아마존의 M&A 거래 규모도 157억 달러(한화 21조2,295억원) 수준이다. 

앞서 언급된 빅테크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는 창업자(혹은 오너일가)가 아닌 주주총회 이사회에서 선임된 CEO다. 시가총액 세계 1위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는 빌게이츠이지만 현재 이 기업의 CEO는 인도 출신의 사티아 나델라다. 아마존의 창업자도 제프 베조스이지만 현재 CEO는 앤디 제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자사는 M&A 보다 자체역량으로 사업을 키워온 것이 크다”며 “타사와 비교할 대상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기업 태생 배경이나 환경 등을 고려한다면 미국의 빅테크와 비교 대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전경. ⓒ 삼성전자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전경. ⓒ 삼성전자

◆'투자 DNA' 살아난 삼성전자…HBM 개발도 '속도'

최근 이재용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일정부분 해소되면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달 5일 경영권 불법승계 등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수년간 지속된 사법 리스크가 일정부분 해소된 것이다. 

한종희 부회장이 지난달 20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M&A 가능성을 거듭 언급한 만큼 앞으로 대규모 투자에 대한 기대감이 나온다. 앞서 삼성전자는 하만 인수를 통해 '쏠쏠한 재미'를 봤다. 하만은 삼성전자에 인수된 후 한동안 실적 부진으로 고전했으나 지난해 영업이익 1조원을 넘는 실적을 내면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전장 강화를 위해 독일 콘티넨털 사업부(ADAS) 인수를 검토 중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만약 삼성이 콘티넨털 ADAS 사업부를 인수한다면 인포테인먼트 중심의 전장 사업이 고성능 컴퓨팅 칩 분야로 확장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4세대 HBM 경쟁에서 SK하이닉스에게 뺏긴 선두자리도 탈환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업계 최초로 개발한 5세대 HBM 최신 제품인 36GB(기가바이트) HBM3E 12단(H)을 공개했다. 이 제품은 이전 세대인 HBM3(4세대) 8단 대비 성능과 용량 모두 50% 이상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부터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신석환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HBM 공급 기대와 인공지능(AI) 수요 확대 기조가 레거시 제품 수요까지 확산될 것"이라며 "2025년에는 메모리 반도체의 구조적인 성장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호재로 삼성전자의 주가는 연일 신고가를 기록하고 있다. 이달 2일 종가기준 삼성전자의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3.66% 오른 8만5,000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2021년 4월 7일(8만5,600원) 이후 약 3년 만에 가장 높다. 

M&A 및 투자 유치를 위한 현금흐름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잉여현금흐름은 마이너스(-) 13조4,739억원이다. 잉여현금흐름은 기업에 현금이 얼마나 순유입되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즉 기업이 사업활동에서 벌어들인 현금에서 각종 비용과 세금 등을 빼고 남은 잔여 현금흐름을 뜻한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영업활동의 현금흐름은 44조1,374억원이다. 다만 설비 투자비용은 53조1,139억원에 달한다. 현금 및 현금성자산도 줄어들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은 91조7,718억원으로 2022년 말 114조7,835억원 대비 23조117억원 감소했다.

오너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도 변수 가운데 하나다. 이재용 회장은 ‘삼성그룹 불법 합병 및 회계 부정’과 관련 1심에서 무죄를 받았지만 2심과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다. 검찰은 삼성 지배권 승계 목적 등에 대해 1심과 견해 차이가 크다며 항소했다. 만약 1심 선고가 뒤집힐 경우 삼성전자의 M&A 전략은 위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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