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본 보고 학폭·N번방 떠올라…브레인 해킹 능력 있다면 힐링에 쓰고 싶어"
"연기 목표는 잘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사람 느낌 주는 것"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글로벌 배우로서 세계적인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는 배두나가 쿠팡플레이 시리즈 '가족계획'에서 독특한 캐릭터인 영수를 연기한다. 영수는 감정이 결여된 선택적 소시오패스로 어린 시절 특교대에 입소해 브레인 해킹 능력을 훈련받았다. 하지만 16살이 되던 해 갓난아기인 지훈, 지우를 데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철희와 함께 특교대를 탈출한다.
이후 특교대의 감시를 피해 살던 중 극악무도한 범죄에 맞서 악당들을 처단해나간다. 배두나는 이번 작품에서 여태껏 보여준 적 없는 매력의 캐릭터 영수로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다. SR타임스는 오는 27일 마지막 6화 공개를 앞둔 '가족계획'의 배두나를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가족계획'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시나리오를 재밌게 봤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형사가 아닌 캐릭터라 끌렸어요. (웃음) 형사가 아닌 정도가 아니라 잔인한 방법으로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그런 통쾌함이 있는 캐릭터인 것도 좋았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봤어요.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가 좀 재미있었어요. 평상시에도 약간 엉뚱한 코미디 좋아하거든요. 대놓고 웃음을 강요하지 않고 피식 웃어버릴 수 있는 대본에 끌렸어요.
Q. 본인과 너무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맡았다
이런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브로커'와 '다음 소희'가 결정타이긴 했어요. 중간에 '레벨 문'도 했지만, 이 작품은 그 경계선의 어디에도 없는 작품이죠. '린다린다린다'나 사회적 이슈를 발랄하게 풀어나간 '플란다스의 개'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데 이 작품의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읽었죠.
'공기인형'이나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처럼 인간이 아닌 캐릭터 연기도 많이 연습했었는데 겁 없이 부딪쳤던 것 같아요. (영화 '코리아'에서) 왼손 탁구선수 역을 맡았을 때는 연기가 불가능할 것 같았어요. 그래도 '공기인형'도 찍었는데 하면서 촬영했어요. 그게 기준이 되어버렸죠. 그런 후에 1인 다역을 맡았고 스페인어 하는 멕시코 여자도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 게 연기의 맷집이 되어 준 것 같아요.

Q. 이번 작품의 연기에서 의도하는 부분과 힘든 점이 있었다면
작품의 캐릭터 포지션에 충실히 하려고 했죠.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작품 보다 튀지 않는 것이라 그 부분에 최선을 다했어요. 백윤식 선생님도 계시고 굉장히 색깔이 강한 배우들이 붙었잖아요. 저는 지훈과 지우가 더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봤어요. 둘은 영수나 철희가 어릴 때 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상징적인 캐릭터라고 봤고 저는 좀 가만히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야만 하는 캐릭터이기도 했고요.
힘든 부분은 평상시 감정이 100%라면 한 70% 정도를 누르고 30% 삐져나오는 거 정도로 관객에게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제로였어요. 공감 능력도 없고 동정심도 없는 애들이 차출돼서 특교대로 갔고 거기서도 감정을 깎아내리는 훈련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아예 텅 비어있는 모습을 연기해야 했어요. 그게 쉽지 않았죠. 저는 그동안 꽉 채우고 안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삐져나오는 것조차 없어야 해서 어려웠어요.
그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감정이 아예 없으면 안 됐죠. 애들에게 집착도 하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해요. 사랑을 글로 배웠냐고 농담으로 말하잖아요. 근데 그런 스타일의 캐릭터인 거죠. 글로 배운 모성애를 자꾸 연습하는 여자인 거죠. 사실 이 사람이 잘 아는 건 고문하는 것밖에 없거든요.
Q. 유사가족의 이야기인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자주 소재로 사용한다. 고레에다 감독과는 '공기인형', '브로커'를 함께 했었는데 캐릭터 연기 방향에서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가치관이 저에게 깊게 자리 잡은 건 사실일 겁니다. 저는 이 작품을 하기 전부터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가족이 되는 이야기를 감독님 작품들을 통해서 봐왔었고 감동 받았고 그분의 생각을 지지해 왔어요. 그래서 이 작품의 설정도 굉장히 따뜻하게 다가왔어요.
이 작품의 캐릭터들을 응원했죠. 사실 착한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어떻게 보면 인간 병기였으니까 사람도 많이 죽였을 거고요. 그런 사람들이 가족으로 똘똘 뭉쳐서 끝까지 가거든요. 정말 끝까지 가요. 그게 히어로가 세계를 구하는 얘기보다 더 와닿더군요.
Q. 영수는 안티 히어로인가
맞아요. 영수가 응징하려는 이들은 나쁜 놈들이죠. 근데 그들이 단지 나쁘다는 이유보다는 아이들을 해칠까 봐 엄마가 해결해줄게 하는 거죠. 히어로 같지 않은 히어로가 맞아요.

Q. 류승범 배우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호흡이 너무 잘 맞았어요. 사실 류승범 배우가 없었다면 멘탈붕괴가 왔을 수도 있어요.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쉬웠던 작품이 아니었어요. 작품이 재미있어서 선택했는데 피 나오는 장면이 자주 나와서 힘들더군요. '지금부터 주목'하고 브레인 해킹이 시작되면 일단 상대방 인물들이 속옷 차림이고 묶여 있어요. 모멸감이 느껴지잖아요. 영수라는 캐릭터는 아무렇지 않지만, 배우 배두나는 그게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류승범 배우가 좋은 에너지를 많이 주셨죠. 배우 경력이 25년쯤 되면 타성에 젖을 수도 있는데 류승범 배우는 진짜 맑은 영혼이에요. 현장에 류승범 배우가 있고 그가 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의지가 됐죠. 최고였어요. 우리가 최근까지도 '무빙'을 봤기 때문에 액션 배우로만 각인 돼 있지만, 이 작품의 5~6화쯤에서는 제가 눈물이 날 정도의 연기를 하세요. 너무 훌륭한 분이시고 정신적으로든 연기적으로든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Q. 실제로 브레인 해킹을 할 수 있다면
저는 좀 긍정적인 방향으로 좋은 기억을 심어주고 싶어요. (웃음) 제가 뉴스를 보면서 분노도 잘하고 몰입도 잘해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죠. 남 일이지만 그만큼 화가 날 때가 있어요. 큰 재난 같은 건 머리에서 오랫동안 잊히지 않아요. 예를 들면 운전할 때 한강 다리 같은 곳을 되게 빨리 건너가려고 해요.
이 작품을 선택하고 대본을 읽을 때는 뉴스에서 봤던 학폭이나 N번방 범인처럼 머리에 떠오르는 나쁜 놈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을 똑같이 느끼게 해주는 설정이 통쾌하겠다 싶었거든요. 근데 막상 연기 해보니까 쉽지 않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제가 그런 능력이 있으면 좋은 기억을 심어주고 힐링하는 데 쓰고 싶어요.
Q. 배우끼리 주고받는 핑퐁 연기가 재미있다. 합을 맞추는 작업이 중요했을 것 같다
류승범 배우와 얘기했던 게 영수와 철희의 관계죠. 스포일러라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6화에서 둘의 관계가 설명되는 부분이 있어요. 거기까지 가기 위한 빌드업에 관한 감정도 이야기 나눴거든요. 근데 오히려 그런 핑퐁은 현장에서 날 것으로 나올 때가 있어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딱 포착이 되면 재미있죠. 근데 그런 리듬감은 몇 번 하다 보면 식상해지죠. 그래서 차라리 감정선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Q.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 역할이 어렵지는 않았나
약간 어설픈 엄마 설정이라 다행이었어요. (웃음) 사실 장성한 아들과 딸이 있는 엄마는 처음 해봐서 당황했죠. 영수와 철희가 15~16살 때 특교대에서 갓난아기들을 훔쳐서 도망 나왔잖아요. 그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됐지만 부모인 영수와 철희는 30대인 거예요. 엄마로서 약간 어설퍼도 되는 나이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영수는 어차피 공감 능력이 별로 없는 선천적인 특성이 있죠. 뭘 해도 어설프니까 엄마 역할에 대해 약간은 부담감이 적었어요.

Q. 공감 능력이 높을 것 같다. 메소드 연기를 지향하는 편인가
저는 메소드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배우 배두나'라는 책이 있어요. 백은하 소장님이 배우들이 공감 능력이 뛰어난가를 실험해봤거든요. 뇌인지과학자인 정재승 교수님 연구소에 가서 검사했거든요.
결과적으로 공감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지는 않다고 해요. 대신 남들보다 활발한 게 전두엽이래요. 영상보다 활자를 볼 때 더 빠르게 몰입하고 확신을 갖는다고 결과가 나왔어요. 그 확신을 감정을 만드는 측두엽에 빠르게 넘긴다고 해요. 활자를 보고 감정 연기 훈련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발달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물론 공감 능력이 좋은 연기자분들도 계시겠죠. 아무튼, 저 같은 경우는 상상하고 확신을 빨리 내리기 때문에 형사를 하면 안 된다고 하네요.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한번 생각하면 아닌데도 계속 맞다고 하는 거죠. (웃음)
Q. 추구하는 연기가 있다면
제가 추구하는 연기는 항상 어떤 역할을 하든 진짜 저 사람이 현실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전 연기를 잘한다는 게 뭔지 몰라요. 연기는 항상 다들 취향별로 좋아하는 연기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내가 하는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막 그렇잖아요.
저는 연기를 잘하는 게 목표가 아니에요. 중요한 건 진짜 그 사람이 실제로 있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그렇게 하면 제 일을 다 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제 연기가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냐가 중요해요. 인형을 연기하든 클론을 연기하든 똑같아요. 진짜로 저런 인형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연기를 하려고 해요.
그리고 저는 캐릭터의 전사에 대해서 거의 소설 한 편을 씁니다. (웃음) 감정이 폭발하려면 쌓아 올려둔 에피소드가 필요하니까 그런 것들을 계속 상상해놔요. 그래서 진짜 감정이 나오도록 해요. 이렇게 말하니까 너무 닭살이 돋네요. (웃음) 그 캐릭터의 진짜 감정이 나와야 그 사람이 실제로 있는 사람처럼 보일 테니까요. 그런 기억을 쌓아놓고 촬영할 때 꺼내서 쓰는 거죠. 영업비밀인데 말해버렸네요. (웃음) 다들 그렇게 하고 있겠죠.
Q. 김정민 크리에이터와 함께 작업했을 때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작품을 보면 아시겠지만, 상상력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거침이 없으세요. 말이 안 되는 것도 그냥 거침없이 밀고 나다가 보니 결국 말이 되는 거죠. 범죄자 에피소드나 소재를 쓰는 것에 있어서도 거침이 없어요. 그게 좋았죠. 제가 얘는 옛날에 어떤 애였어요? 어디 살았어요? 하고 물어보면 거침없이 막 나와요. 그래서 연기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죠.
가령 브레인 해킹 신에서 눈물이 나와야 하는데 감정이 슬픈 게 아니라 상대의 고통을 느껴서잖아요. 하지만 어딘가 모를 저 아래에 있는 무언가가 그냥 발현되는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 제게 그 감정이 올라올 것 같은 키워드를 딱 하나 던져주세요. 진짜 천재적이에요. 장은숙의 '춤을 추어요' 노래가 나오는 이유도 풀어내 주시는데 그런 작업이 재미있죠. 또 김선, 김곡 감독님은 호러적인 부분에 특화되어있는 분들인데 그분들과의 코미디나 감정선의 조합이 정말 좋았어요.
Q. 코미디 연기를 하고 싶다는 바람과 달리 최근에는 진지한 작품을 주로 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약간 유쾌 발랄한 '린다린다린다'같은 작품을 했다면 이제 제 연기의 세대가 지났나 봐요. 근데 무겁고 진지하고 슬픈 작품을 하면 저도 같이 지치게 되더군요. 코미디 작품은 계속해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