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아웃으로 그만둔다는 촬영감독과 같이 울며 찍어"
"글로벌 OTT라서 한국적 요소 넣어야겠다고 생각"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김희윈 감독은 오랜 극단 생활을 통해 얻은 생활감 있는 연기력을 바탕으로 2007년 영화 '1번가의 기적'으로 스크린에 데뷔했다. 이후 영화와 드라마, 연극까지 다양한 분야를 오가며 연기력을 인정받아왔다.
'아저씨',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담보'까지 폭넓은 캐릭터를 보여줬다. 2023년에는 강풀 작가 원작 '무빙'에서 고등학교 교사 최일환 역을 맡아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오랜 세월 연출에 뜻을 품고 있던 김희원 감독은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조명가게'로 감독 데뷔의 꿈을 이뤘다. 첫 작품인 '조명가게'를 통해 디테일한 연출과 흡입력 있는 서사를 선보이며 국내외에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김희원 감독을 만나 이번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조명가게'를 마무리한 소감 그리고 시즌2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지
시즌1이 엄청나게 잘 된다면 시즌2가 나올까요? 모르겠습니다. (웃음) 전혀 생각은 안 해봤는데 혹시 모르죠. 자막 작업과 더빙까지 다 해서 디즈니+에 넘긴 다음에 공황 같은 것이 오더군요.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그때 좀 힘들었어요.
Q. 배우와 감독 각각의 시각에서 작품을 대하는 차이점이 있다면
엄청 다르더라고요. 배우는 끝나면 아 시원하다, 이제 끝났어, 내가 할 건 다했어라고 하는데 감독은 작품을 내놓은 다음에도 두근두근하고 걱정이 많아요. 마지막 편을 지난 수요일에 공개했는데 이렇게 인터뷰하고 있는 지금도 제발 좀 잘 봐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죠. 마음이 그냥 왔다 갔다 해요. 안정이 안 돼요.
Q. 이 작품을 연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원래 연출에 관심이 있었나
원래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것도 공포물이었는데 강풀 작가가 '조명가게' 연출을 제안했어요. 그래서 이건 운명인가 하는 생각을 했죠. 연출에는 계속 관심이 있었어요. 근데 그게 쉽지 않잖아요. 누군가 투자를 해주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났죠. 언젠가는 꼭 해야겠다고 생각으로 살았어요.
'무빙'에서 최일환 역을 맡았는데 초능력도 없으면서 초능력자들과 싸워요. 그렇게 목숨 걸고 싸우는 건 학생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잖아요. 그래서 그런 존재감에 관한 신을 넣어달라고 했고 대본이 고쳐졌어요. 강풀 작가가 제안을 준 건 아마도 제가 작품 전체를 보는 것에 대해 인상적으로 느낀 것은 아닐까 추측하고 있어요. 제안을 받고 엄청나게 고민을 많이 했죠.
그래 해보자 하고 결정하고 나서도 그냥 그만둔다고 할까 하고 두 달 정도 더 고민했던 것 같아요. 작품도 어렵고 과연 이걸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작품을 망치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도 컸고요. 그냥 주어진 대로 배우만 하면서 살아도 되는데 하고 인생에 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Q. 롤 모델로 삼는 감독이 있다면
일단 대표적으로 봉준호 감독님입니다. '기생충'을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영화의 디테일을 보면서 천재라고 느꼈어요.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봉준호 감독님이 연출할 때 저 역을 하면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그 외에도 여러 감독님이 계시죠.
Q. 배우별로 연기 지도를 달리 했던 것 같은데 고생한 부분이 있다면
배우마다 기준이 달랐죠. 예를 들면 이정은 배우에게 "전구를 잘 전달해 주세요"라고 얘기하면 필사적으로 연기 디자인을 해 오세요. 주지훈 배우 같은 경우는 옆에서 잔소리하는 걸 싫어하죠. "움직이지 말고 표현해" 정도로만 얘기하면 그 상태에서 자기 편한 대로 해요. 배우별로 그런 식으로 포인트를 갖고 하나씩 이야기했죠.
고생한 부분이라고 하면 계획이지만 우연인 것처럼 상황을 만들고 배우들이 흥이 나서 연기하게 하려고 노력했던 신들이 꽤 많이 있어요. 배우들이 정말 편하게 연기했다고 하면 그게 기뻤어요. 4화 마지막 롱테이크는 세트를 부수면서 카메라가 이동해야 했었거든요. 그래서 동선 시뮬레이션을 며칠 동안 연습했어요. 덕분에 실제 촬영은 2시간밖에 안 했죠. 그때 배우들이 "역시 형은 배우들이 싫어하는 걸 딱 알아"라고 해줬을 때 뿌듯했습니다. (웃음)
Q. 연극 전공자인 배우로서 시리즈 연출 방법에 관해 어떻게 연구했는지 그리고 관련 에피소드가 있다면
연출 공부는 평상시에 많이 했어요. 그래도 카메라 종류나 구도 같은 기술적인 부분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부족했죠. 박성훈 촬영 감독에게 이런 앵글로 찍으면 어떤 뉘앙스에 더 도움이 된다라든지 하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제가 꽤 많이 배웠어요.
근데 그 친구가 어느 날 할 말이 있다고 하더니 막 울더라고요. 번아웃이 와서 못 할 것 같다는 거예요. 울면서 손도 떨고 있었어요. 너무 열심히 한 거죠. 이걸 그만두면 그 친구는 평생 트라우마가 돼서 어떤 일도 못 할 것 같아서 "너 아니면 못 찍는다. 내가 촬영 버튼 누를 테니까 넌 옆에 서 있기만 해. 로저 디킨스가 와도 너보다는 못 찍어"라고 말했죠.
그 친구도 이 작품이 데뷔작이었거든요. 그래서 우리 열심히 해보자 하고 같이 울었어요. 그때 큰 위기가 한 번 있었죠. 조명도 그렇게 디테일한 건지 잘 몰랐거든요. 프리 프로덕션할 때 배우고 익히고 정말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Q. 줌인아웃 촬영이 많은 이유는
컷을 많이 찍지 말자는 게 목표였습니다. 하루에 12시간 동안만 찍어야 하는데 카메라 세트업에 30분 정도 걸려요. 단순하게 계산해서 12시간 동안 24번 세팅하면 끝이죠. 한번 세트업하고 찍다 보면 제가 짠 촬영대본을 다 담아내는 데 문제가 있어요. 시간을 아껴야 퀄리티가 좋아진다고 생각했어요. 되도록 한 번에 많이 찍기 위해 카메라 무빙을 많이 주면서 컷의 뉘앙스를 더 담아내자고 아이디어를 냈죠.

Q. 대본에 대한 의견이나 아이디어는 주로 어떤 부분에서 많이 냈나
촬영하면서 거의 모든 신에 아이디어를 냈어요. 작가와 감독의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작가가 병원으로 다급하게 달려간다고 대본을 썼다면 감독이 이 다급하다는 표현을 어떻게 표현해내는가가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섭다고 쓰여 있으면 뭐가 무서운가에 대해 신마다 해석이 다른 거죠.
Q. '개소리 좀 안 나게 해라' 밈 장면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왔나
작가님의 아이디어죠. 저는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고 그냥 웃겼어요. 대본으로만 본 다음에 아파트가 쩌렁쩌렁 울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아파트에서 소리를 지르는 앵글을 이렇게 잡아서 찍으면 좋겠다고 했었거든요. 나중에 사람들이 그 밈을 참고해 앵글을 잡은 거냐고 해서 그때 찾아보고 알았어요. 찍을 때는 몰랐죠.
Q. 공개 초반에는 배우 캐스팅에 대한 대중의 호불호 의견이 있었다. 배우 캐스팅에 원칙이 있었나
저는 이미지에 맞는 배우들을 캐스팅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캐스팅을 못 한 배우들도 물론 있습니다. 하고 싶지만 다른 일정 때문에 어렵게 거절하시더군요. 사실 저도 몸이 하나라서 거절을 많이 했었죠. 당시에 서운해하시는 감독님들도 많았고요. 저 역시도 살짝 서운했지만, 이해했죠.
Q. 장항준 감독 같은 경우는 배우에게 직접 실연을 보여준다고 한다
전 그게 조심스러웠어요. 제가 연기자라서 출연 배우가 혹시라도 절 따라 하면 망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대충 이렇게 연기해라 정도까지만 지시했어요.
Q. 4화까지 연출 포인트와 클리프 행어를 어떻게 가져가려고 했나
최고의 숙제였어요. 대본에는 4부까지 11시 57분에 버스에서 네 번 내려요. 계속 비가 오는 거고 그 시간 속에 갇혀 있는 거잖아요. 시청자분들이 많이 헷갈릴 것 같아서 일단 시간 표시는 빼자고 했어요. 반복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게 예술영화냐고 하실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심오한 것들은 일단 다 뺐어요.
4부에서 밝혀지는 게 있는 거라서 3부까지는 어떻게 끌고 갈까 고민했어요. 그래서 각화마다 장르를 부여했죠. 1화는 나중에 반전이 되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를 가져가려고 했어요. 2화부터는 호러 장르로 하고 4화는 형사가 나오니까 활극으로 갔죠. 카메라는 1화에서는 정직하게 스탠딩이 많고 2화는 이동이 많아요. 3화는 핸드헬드로 찍었고 4화는 롱테이크로 찍었죠. 그렇게 보는 재미를 주려고 했어요.
이런 작품은 사실 궁금증을 주고 대답하는 과정이 있잖아요. 그 궁금증을 언제까지 주고 어느 시점에 대답하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근데 너무 친절하면 사람들이 뒤를 예상하니까 재미가 없다고 하고 너무 질질 끌면 중간에 지치죠. 그래서 그 시점을 어떻게 정하느냐가 아주 어려웠어요. 그리고 얼마나 임팩트를 주냐는 문제도 있었어요. 처음부터 너무 많은 임팩트를 주면 뒤가 심심해지잖아요. 그런 기준을 정하는 게 제일 힘들었습니다.

Q. 8화 마지막에 쿠키 영상이 있다. '무빙' 시즌2와 연결되는 이야기인가
강풀 작가님의 '어게인', '히든'에도 연결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조명가게'만 연출했고 작가님이 상상하는 부분까지는 모르겠습니다. '무빙' 시즌2는 확정이 됐고 잘 되면 시즌3도 할지 모르겠지만 어떤 계획은 있으신 것 같아요. 작가님이 쿠키 영상 2개의 대본은 촬영 막바지에 주셨어요. 이것도 재밌겠다 싶어서 제 나름대로는 해석해서 찍었는데 그 이상은 모르겠어요.
Q. IMDb에서 마지막 8화는 10점 만점에 9.0점을 기록했다. 해외시장에서도 호평 받는 것에 대한 소감은
그림이 멋있다든지 돈을 많이 들인 것 같다든지 하는 건 그냥 찍는 사람 기분이 좋아지라고 서비스로 말해주는 것 같아요. (웃음) 정작 중요한 건 사람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죠. 무서움과 슬픔의 정서가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오로지 그것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글로벌 OTT이기 때문에 한국적인 요소를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꾸준히 했어요. 음악도 한국 악기를 많이 썼죠. 전통적인 염습 과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찍었어요. 사실 종이로 몸을 싸고 묶고 염하고 수의 입히는 과정을 정말 디테일하게 다 찍었어요. 근데 너무 길다고 공개 분량만큼만 나갔죠. 한국의 전통 장례문화를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국의 병원문화, 한국의 골목길을 외국 사람들이 어떻게 보여줄까 했죠. 제 생각에는 한국에서 아파트는 부자들이 사는 느낌이죠. 하지만, 외국에서는 아파트가 주는 뉘앙스가 다르잖아요. 태명이라는 건 또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런 장르의 한국 문화나 정서를 어떻게 전달하고 알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Q. '조명가게'를 마친 이후 다른 작품을 연출해달라는 제안이 있었나
연출제안은 꽤 왔어요. 근데 일단 제가 다른 대본을 본다거나 추진할 만한 여력이 없어요. 그래서 내년에 얘기하자고 했어요. 10월 12일에 작품을 최종 납품하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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