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회 대한민국 신문논술대회 대학 일반부

▲ 문상혁 씨.
▲ 문상혁 씨.

‘대처 세대’ 1970년대 영국에서 유행한 말이다. 이 세대는 저임금, 고실업, 저복지로 상징된다. 대처는 민영화, 규제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정책으로 ‘영국병’을 치료했으나 영국 사회에 깊은 내상을 남겼다.

당시 영국의 상황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유사하다. 통계청 기준 청년실업률 11.2%.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의 60%, OECD 복지지출 평균의 절반. 정부는 고용절벽을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로 극복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영국이 대처 세대를 넘은 방법과 다르다. 대처 이후 총리가 된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는 ‘정부와 민간의 협업’을 일자리 창출의 핵심으로 설정했다. 그는 ‘일, 일, 일’ 정책으로 실업률을 3% 이상 낮추고, 재임 기간 영국 총리 중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정책의 핵심의 핵심은 조화다. 정부는 취업프로그램을 청년에게 제공하고, 기업은 이곳에서 교육훈련에 참여하고 청년을 직접 채용한다. 청년들은 반(半)의무로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정부가 정책에 참여하지 않는 청년들에게 구직수당, 실업급여를 주지 않았기 떄문이다. 우리나라도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취업 성공 패키지(취성패)가 대표적이다. 필자도 취성패에 참여하고 있으나 제도 설계의 부실함을 체감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와 민간의 엇박자다. 취성패에서 제공하는 교육 훈련에 민간이 참여하지 않다 보니 기업이 원하는 직무와 연계된 구직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민간과 협력해 효율적인 민간 일자리 창출 노력을 다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새 정부의 주장처럼 지난 9년간의 민간 일자리 창출 시도는 실패했다. 정부가 기업과 노조를 설득하는 어려운 길 대신 ‘규제 완화’라는 쉬운 수단을 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도 정부가 당장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이다. 동시에 가장 위험하다. 공무원 일자리는 ‘소모적’ 일자리이기 때문이다. 세금으로 만들고, 세금으로 관리해야 한다. 우리나라 국가부채 중 공무원·군인연금이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상황을 간과해선 안 된다. 늘어가는 국가 부채에 저출산 고령화도 부담이다. 지금 추세라면 노인 인구 2명을 청년 1명이 부양해야 한다. 공공부문 일자리 빚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공공부문 일자리로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자리를 가졌다고 해서 반드시 소비를 한다는 연구는 어디에도 없다. 확실한 재정 부담을 미루고 불확실한 소비 진작에 기대는 정책은 비합리적이다.

고용절벽을 넘어 새로운 미래로 가려면 과감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블레어는 노동당 내에서 ‘바지 입은 대처’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묵묵히 ‘제3의길’을 걸어갔다. 큰(大)정부는 몸집이 비대한 정부가 아니다. 기업과 노동자를 포용하고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정부가 큰(大)정부다. 큰(大)정부의 예는 영국뿐만 아니다. 독일도 그랬다. 독일은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등을 포함한 ‘하르츠 개혁’을 통해 고용절벽을 극복했다. 개혁 추진 과정에서 노·사·정 협의체를 구성하고 끊임없이 대화했다. 개혁을 이끈 하르츠 총리는 물러났으나,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짧게 일하면서 세계 경제를 이끌고 있다. 실업률도 낮다. 반면, 프랑스는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렸다. 이 나라의 청년 실업률은 현재 25%. 공공일자리의 고용경직성 탓에 청년들의 시장 진출이 늦어지고 있다. 두 나라의 과거가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이란 쉬운 길을 선택하기 보단 정부가 큰(大)리더가 되어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고용절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N포 세대’ 2017년 현재. 청년들은 취업 이외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다. 당장의 일자리가 급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공동체가 당면한 재정절벽·저출산·고령화라는 현실을 외면한 채 공공부문 일자리 제안을 덥석 승낙해선 안 된다. 미래 세대의 부담은 곧 현 세대에게 빚이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느리고, 어려울 수도 있지만 노·사·정 대타협을 기초로 정부가 끌어주고 민간이 밀어주는 일자리 정책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문상혁. 동국대학교 경찰사법대학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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