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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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발표…노사 공동 위험성평가 강화
- 노동계 “기업 규제 완화”…경영계 “처벌·제재 강화 우려”

[SRT(에스알 타임스) 이승열 기자] 정부가 규제와 처벌보다는 ‘자기규율’을 중심으로 중대재해를 줄여나가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핵심은 노사가 함께 실시하는 ‘위험성평가’다.

정부는 이와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지난달 30일 발표했다. 

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 행복한 대한민국’을 목표로 하는 이번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후, 선진국 정책 사례, 현장 안전보건관계자, 전문가, 노사 의견 등을 청취‧수렴해 마련됐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후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마련을 국정과제로 선정한 바 있다.

이번 로드맵은 ▲사전예방에 초점을 맞춰 기업 스스로 위험요인을 발굴‧개선하는 ‘위험성평가’를 중심으로 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 구축 ▲중대재해 발생 시 엄중한 결과책임 부과 ▲중대재해가 다발하는 중소기업, 건설‧제조업, 추락‧끼임‧부딪힘 사고에 대한 집중 지원 및 특별 관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를 통해 2021년 현재 0.43‱(퍼밀리아드) 수준인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만명당 산재 사고사망자 수)을 2026년까지 OECD 평균 수준(0.29‱)으로 감축하는 것이 목표다. 2021년 한국의 사고사망만인율은 OECD 38개국 중 34위에 불과하다. 매년 사망자 숫자는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지만 여전히 매년 800명 이상이 일터에서 사고로 사망하고 있고, 지난해에만 828명이 사망했다. 정부는 2020년 1월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에 이어 올해 1월 중대재해처벌법을 시행해 처벌을 강화했지만, 사고는 줄지 않고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 처벌을 강화했어도 사고사망만인율은 8년째 정체돼 있다”며 “이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규제와 처벌보다는 스스로 규율하는 예방체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먼저 정부는 위험성평가를 중심으로 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구축해 나간다. 

위험성평가는 노사가 함께 사업장 내 유해·위험 요인을 스스로 파악해 개선대책을 수립‧이행하는 제도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3년 산업안전보건법에 위험성평가를 도입·시행했지만 아직 현장에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위험성평가 활성화를 위한 제반 법·제도 정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대다수 사업장에서 위험성평가를 추가적인 규제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으로 고용노동부는 분석했다. 이에 정부는 위험성평가 제도를 ‘핵심 위험요인의 발굴‧개선’과 ‘재발 방지’ 중심으로 운영해 제도의 현장 안착에 주력하고, 2025년까지 제도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할 방침이다. 

현재의 정기 산업안전감독은 ‘위험성평가 점검’으로 전환한다. 위험성평가 적정 실시여부, 위험성평가 결과의 노동자 공유 여부, 재발방지대책 수립·시행 여부 등을 노동자 인터뷰 등으로 확인하고, 컨설팅, 재정지원 사업과 연계한다.

중대재해 발생 시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Golden Rule) 위반과 위험성평가 적정 실시 여부 등을 중점 수사해 엄중하게 처벌‧제재한다는 방침이다. 단, 위험성평가를 충실히 수행한 기업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자체 노력 사항을 수사자료에 적시해 검찰·법원의 구형‧양형 판단 시 고려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이 같은 방안을 통해 위험성평가 제도를 산업현장에 안착시켜 ▲노사가 함께 사업장 특성에 맞는 자체 규범을 마련하고 ▲평상시에는 위험성평가를 통해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스스로 발굴·제거하고 ▲사고 발생 시에는 예방노력의 적정성을 엄정히 따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부여하는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확립한다는 목표다. 

처벌요건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도 손본다. 위험성평가와 재발방지대책 수립‧시행 위반 등을 중심으로 처벌요건을 명확화하고,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 등에 대해서는 형사처벌도 하도록 한다. 정부는 내년 상반기에 노‧사‧정이 추천한 전문가들로 ‘산업안전보건 법령 개선 TF’를 운영해 이 법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50인 미만 소규모 기업, 건설업·제조업, 추락‧끼임‧부딪힘 사고 등 중대재해 취약분야를 집중 지원·관리할 계획이다. 소규모 제조업(50인 미만)의 노후‧위험 공정 개선 비용을 지원하는 안전 리모델링 사업을 펼치고, 건설업‧제조업에는 AI 카메라, 건설장비 접근 경보 시스템, 추락보호복 등 스마트 장비‧시설을 집중 지원하며, 노동자 안전확보를 위한 CCTV 설치도 제도화한다. 추락·끼임·부딪힘 등 3대 사고유형에 대해서는 8대 요인(비계, 지붕, 사다리, 고소작업대, 방호장치, 기계 정비 시 잠금 및 표지 부착, 혼재작업, 충돌방지장치)을 관리하기 위한 스마트 안전시설·장비를 우선적으로 보급한다. 

이 밖에도 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 참여의 중심 기구인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대상을 100인 이상에서 3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해 노동자의 안전보건 참여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대해 노동계는 ‘기업 규제 완화’라면서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노총은 성명서에서 “위험성평가 등이 일부 강화됐으나 작업중지 완화와 노동자 처벌 등 경영계가 지속해서 요구한 안전보건규제 완화 내용이 곳곳에 박혀 있다”며 비판했다. 또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노력을 수사자료에 적시해 검찰·법원에서 구형·양형 시 고려한다고 하는데, 솜방망이 처벌을 지향하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민주노총은 이번 로드맵이 “노동자 참여 없는 사상누각의 자율안전”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형식적 진행이 횡행한 위험성평가를 중대재해 발생 기업의 처벌 감경과 연계하는 것은 중대재해처벌법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고용노동부가 법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또 사망사고 발생 시 전면 작업중지가 수용되지 않은 점에 대해 비판하고, 위험성평가의 핵심 주체가 관리감독자가 아닌 노동조합과 작업공정 노동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제계는 이번 로드맵에 사망사고 발생 시 처벌·감독 등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성명서에서 “정부안은 자기규율 예방체계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고 하면서도 대표적 타율적 규제이며 과도한 처벌수준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구체적 개선 대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면서 “오히려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 등에 대한 형사처벌 확행’, ‘핵심 안전수칙 위반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한 엄정 조치’ 등 사업주 처벌과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그간 경제계가 호소해 온 중대재해처벌법의 불확실성과 과잉처벌 문제에 대한 개선방향이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고 오히려 경제적 제재까지 검토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그간 지속돼 온 처벌 중심의 감독이 이어질까 우려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현행 법체계에 대한 합리적인 개선 없이 위험성평가 의무화 등이 도입될 경우 기업에 대한 옥상옥 규제 강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언급했다.

중소기업중앙회도 “강한 처벌규정을 그대로 둔 채 위험성평가의 의무화를 통한 처벌 규정을 마련하는 것은 오히려 노동규제를 강화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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