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후회할 극강 블록버스터 해전 영화
- 작렬하는 ‘전쟁 액션’, 용호상박 ‘인물 열전’...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신기원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1591년 3월, 왜는 조선에 ‘가도입명(假道入明: 명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이라는 황당한 요구를 해온다. 그리고 1년 뒤인 1592년 4월 13일, 700여 척의 배를 타고 왜군은 조선 땅으로 쳐들어온다. 침략전쟁을 일으킨 왜적이 파죽지세로 북상해오자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평양으로, 그리고 다시 의주로 도망친다.
왕이 버리고 떠난 한양을 순식간에 점령해버린 왜군은 무자비하게 조선 팔도의 죄 없는 백성들을 도륙한다. 아울러 대규모 병력을 부산포에 집결시켜 명을 치기 위한 출병 준비를 서두른다. 왜군의 준동을 누르지 못하고 수세에 처한 조선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이게 되고 이대로 국운이 다하는 듯했다.
그때 경상도 당항포에서 왜선 20척을 격파한 장수가 홀연히 나타난다. 임진왜란이라는 기나긴 7년간의 아비규환 속에서 나라를 구한 성웅 ‘이순신’(박해일)의 등장이었다.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3부작 프로젝트 중 ‘명량’(2014)에 이어 두 번째로 영화화된 ‘한산: 용의 출현’에 소포모어 징크스(전작에 미치지 못하는 완성도의 후속작)는 없었다. 오히려 완성도가 더 높아졌다.
1,761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한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전작 ‘명량’에서 단점으로 지적된 부분들도 보강되면서 뛰어난 몰입감과 영화적 재미를 안겨준다.
◆ 작렬하는 ‘전쟁 액션’, 스펙터클한 ‘학익진’ 해상 전투 신
‘한산: 용의 출현’은 한마디로 말해 ‘스펙터클’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러닝타임 129분 중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한산 해전에 할당했다. 액션은 분명 기대할 만하다.
이 한산 해전 시퀀스는 견내량에 밀집한 왜군과 조선 수군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을 시작으로, 허를 찌르는 매복과 역습, 돌파·회피·항전의 치열한 포연탄우(砲煙彈雨) 장면 속에서 숨 쉴 틈 없는 액션이 이어진다.
짜릿한 스릴감에서 괴멸의 쾌감까지 이어지는 학익진 대 어린진의 최종결전 장면에는 클레이모어 같은 현대전 병기 아이디어까지 녹아 들어있다. 이 영화적 상상력이 총동원된 클라이맥스 전투 신에서는 스크린을 뚫고 나올 듯이 작렬하는 포화 묘사가 압권이다.
이 액션의 중심에는 영화 속 또 하나의 주인공인 거북선이 자리한다. 적의 한복판에서 마치 엔진이라도 달린 듯 쾌속 항진하며 왜선을 격파한다. 복카이센(해저 괴물)이라 불리며 왜적들을 공포에 몰아넣는 비대칭전력 병기 거북선의 위용과 활약 모습은 이 작품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 중 하나.
한편, 전작과 달리 물 위에서 촬영하지 않는 이 해전 장면 구현에서는 완성도 높은 세트 촬영과 고품질 CG의 기술적 성취가 돋보인다. 이를 통해 16세기에 벌어진 해전을 그대로 재현한 듯한 사실감을 부여해 더욱 만족스러운 영화적 경험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여기에 더해 무게감 있는 진한 색감과 질감의 촬영, 공들인 의상·세트는 시각적 즐거움을 한층 높여주며, 전투 장면에서는 한국어 대사에도 자막을 입혀 관객을 배려한다.
◆ 용호상박 ‘인물 열전’, 이순신 vs. 와키자카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드라마의 재미를 높이는 인물 간 갈등과 라이벌 서사의 깊이가 전작 보다 강화됐다.
이 작품에서 박해일은 절제된 최소량의 대사와 함께 진중하고 깊이 있는 내면 연기로 이순신이라는 역사적 영웅 캐릭터를 완성한다. 특히 수성하지 않고도 수성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전략 전술에 능한 지장(智將)의 모습을 밀도 있는 연기력으로 소화해낸다.
이순신의 대척점에 있는 안타고니스트 ‘와키자카’(변요한)는 그림자 속에서 얼굴을 드러내는 잔혹하고 냉철한 지장이다. 스타워즈 캐릭터로 본다면 다스베이더 위치에 놓인 빌런이며, 1차원적인 악인이기보다는 이순신에 대적할만한 배짱과 지략이 있는 장수로 묘사된다.
풍부한 실전경험을 토대로 냉정을 잃지 않고, 대담한 전술을 구사하는 와키자카는 강하다. 빌런이 강할수록 영웅의 승리는 더욱 빛나는 법. 이 불꽃 튀기는 대결에서의 승리는 이순신을 더욱 위대한 지장의 위치에 올려놓는다. ‘명량’에서 와키자카가 이순신을 두려워하는 이유에 대해 프리퀄에 해당하는 이 작품에서 밝혀지는 부분도 관전 포인트.
극 중에는 임진왜란을 ‘의와 불의의 싸움’이라고 정의하는 이순신에게 감복하여 조선에 투항해 맹렬히 싸우는 항왜군사 ‘준사’(김성규)를 비롯해 물밑 첩보전을 벌이는 ‘임준영’(옥택연)과 ‘보름’(김향기), 거북선 설계자 ‘나대용’(박지환), ‘어영담’(안성기), ‘원균’(손현주), ‘이억기’(공명) 등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다만 이들에게는 깊이 있는 서사가 부여되지는 않는다.
이 부분이 시각에 따라서는 단점으로 지적될 수도 있으나, 덕분에 인물 서사를 이순신과 와키자카 양강구도에만 집중하게 해 극의 몰입감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이들이 차곡차곡 쌓아 올려준 플롯 발판 덕분에 용호상박의 인물 열전은 가슴이 웅장해지는 카타르시스로 승화한다.
왜군 진영에서 와키자카와 ‘가토’(김성균)가 대립한다면 조선 수군에서는 수륙병진 하는 왜군에 대해 공성과 수성으로 내부 의견이 엇갈린다. 이순신에게 번번이 어깃장을 놓는 원균 때문이다. 와키자카보다 더 밉상인 내부의 적이자 서브 빌런인 원균은 해전의 기본도 모르는 졸장으로 활약하며, 이순신의 위용이 더욱 드높여주는 캐릭터 역할을 맡는다.
흥미진진한 라이벌 전 구도 속에서 성웅 이순신에 대한 헌정을 담은 이 작품은 벅차오르는 뜨거운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블록버스터 전쟁 영화다. 그런 면에서 국뽕 영화 클리셰가 가득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최종결전 단계에서 터지는 마지막 한 방의 쾌감을 국뽕이라 칭한다면 말이다. 그 국뽕을 이어받아 언젠가는 IMAX 카메라로 촬영한 한국 블록버스터가 나오길 기원해본다.
IMAX, 4DX, 스크린X, 돌비시네마, 수퍼플렉스G 등 특수관에서의 관람이 추천되는 이 작품은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후회할만한 스펙터클 전쟁 영화다.
순제작비 315억원, 손익분기점 600만명인 ‘한산: 용의 출현’은 천만 영화인 전작 ‘명량’을 모든 면에서 확실하게 뛰어넘는 재미를 갖추고 있다. 이제는 극장가를 한산도 앞바다처럼 완벽하게 장악할 압도적인 결과만을 남겨두고 있을 뿐이다.
◆ 제목: '한산: 용의 출현'(HANSAN: RISING DRAGON)
◆ 감독: 김한민
◆ 출연: 박해일, 변요한, 안성기, 손현주, 김성규, 김성균, 김향기, 옥택연, 공명, 박지환, 조재윤 외
◆ 제공/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 제작: 빅스톤픽쳐스
◆ 개봉예정: 2022년 7월 27일
◆ 러닝타임: 129분
◆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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