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 파도처럼 일렁이는 무수한 감정의 편린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제75회 칸영화제 감독상에 빛나는 '헤어질 결심'은 말 그대로 마스터피스다.

이 영화는 단 한 순간도 시선을 돌릴 겨를 없는 완벽한 몰입감을 갖추고 있으며, 미려하면서도 익숙한 고전미가 함께 한다. 동시에 복합장르 안에서 색다르고 독창적인 내러티브가 빛난다. 테마파크 타입 영화의 그것과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다른 결, 다른 만듦새다. 박찬욱 감독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정교함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헤어질 결심'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말하는 '영화(Cinema)'의 대표적인 예로 들만한 작품이다. 가장 주목받는 재현 예술인 영화라는 매체의 위대함을 확인할 수 있다. 보는 내내 이 영화가 만들어졌음에, 그리고 영화관에서 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마저 들게 한다. 

이 미스터피스를 보기 위해 인생에서 2시간 18분을 빼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없는 축복이다.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주의: 이 리뷰에는 영화의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16년 8개월간 결혼생활을 해오고 있는 엘리트 형사 '장해준'(박해일). 그는 이과 출신 아내 '안정안'(이정현)에게 주말마다 따뜻한 식사를 손수 만들어 먹이는 다정한 남편이다.

미해결 살인사건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마치 취미처럼 잠복근무를 한다. 어느 날, 해준은 현기증이 날 만큼 높은 산밑에서 발견된 한 남자의 추락사 사건 현장을 찾는다. 그는 아내와의 관계만큼이나 뻑뻑하고 건조해진 눈에 안약을 흘려 넣어가며 사건 현장의 모든 증거를 꼼꼼하게 살핀다.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이 명탐정 같은 형사 해준은 사망자의 젊고 아름다운 중국인 아내 '송서래'(탕웨이)가 참고인으로 나타나자 모든 감각을 그녀에게 집중한다. 죽은 남편을 두고 담담한 태도를 보이는 그녀는 서툰 한국어로 '마침내'라는 단어를 쓰고 배시시 웃는다. 밀실에서 그런 서래를 마주한 해준의 가슴에는 의심과 관심이 강하게 교차하며 감정의 파도가 일렁인다.

그는 '현기증'(1958)의 고소공포증과 '이창'(1954)의 관음 속에서 서래와 밀접해진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동족임을 알아차린다. 해준은 서래를 몰래 훔쳐보며, 그녀의 공간 안으로 침범한다. 시각으로 그녀의 냄새를 맡고 부드럽고 거친 촉감도 느껴본다.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해준과 서래 사이에서는 미완의 번역이 때때로 더 깊은 감정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두 사람은 언어보다 직관적인 신체언어로 완전히 교감한다. 눈동자가 흔들릴 때, 웃을 때, 울 때, 손가락이 겹쳐질 때 더 많은 것을 함께 나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앞에서는 감추고 숨긴다. 그들은 어른들의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준은 아내에게도 주지 않던 초밥을 서래에게 만큼은 내어 준다. 아내에게서 얻을 수 없는 감정을 서래에게서 느끼며 그녀 곁을 서성인다. 그녀의 숨소리를 같은 공간에서 들으며, 그녀가 내뱉는 날숨을 들이킨다. 깊은 잠에 빠지고 부둥켜 끌어안고 또 안으며 행복해한다.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해준은 밉든 곱든 아내와 인형 놀이 같은 부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에 반해 서래는 그에게 애틋한 오피스 와이프이자 사건을 함께 해결하는 수사 파트너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는 말은 해준이 서래에게 진정하고픈 말일 것이다.

해준은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기도 하고 물에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물드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안쪽은 서래의 목소리, 눈빛, 꼿꼿함에 완전히 잠식당한다.

하지만, 마침내 사랑의 끝이 찾아온다. 눈이 멀었던 해준은 어느 순간 배신감에 눈을 뜬다. 자부심에서 나오는 품위를 가진 이 남자는 여자에 미쳐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붕괴한다.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무너져버린 해준은 아내 곁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점점 시들어간다. 살인도 폭력도 없는 도시에서 더는 범인을 쫓아 계단을 뛰어오를 일도, 건물 옥상을 뛰어다닐 일도 없다. 그래서 그는 운동화 대신 딱딱한 구두로 갈아신는다.

그런 그의 앞에 녹색 산인지 파란 바다인지 모를 옷을 입고 402일 만에 나타난 서래. 마음을 파고드는 이 여자와의 재회 속에 마침내 해준은 다시 살아나게 된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 1부는 산에서 시작하고 2부는 바다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공자의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는 극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서래는 1부에서 '오수완'(고경표)에게 참 독한 여자로, 2부에서는 '여연수'(김신영)에게는 참 불쌍한 여자로 불린다. 한 캐릭터에게 각각 상반된 평가가 배치된 것. 절벽 위에서는 행동을 통해 믿음과 의심, 사랑과 증오의 대구를 이룬다.

같지만 다른 모습의 입체적인 캐릭터를 두고 관객은 순간순간마다 확연하게 다른 감정선을 느낀다. 수사, 멜로, 코미디 등 다양한 장르를 녹였음에도 그 어느 지점에서도 분열이 없다. 그래서 놀라운 황금비율의 서스펜스와 스릴 그리고 웃음과 눈물이 함께 한다.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극의 모티브가 된 정훈희의 '안개'가 애절한 분위기를 불어넣고, 불협화음을 지닌 복고풍 수사극 음악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인공지능 음성, 스마트폰, 스마트워치를 통해 현대적 감각과 극의 재미가 추가된다. 관찰자인 관객들은 각 캐릭터의 신체언어를 보고, 음성을 듣고, 생체반응을 확인하며 그들이 품고 감추고 있는 진짜 속마음을 판단한다.

박찬욱 감독 고유의 미장센을 음미하는 것도 즐겁다. 계단과 건물 옥상의 롱테이크 추격신을 비롯해 공간, 시간, 인물 감정이 한 시퀀스 안에 교차편집으로 담겨 꽉 들어찬다. 영화 속에는 단 한 장면도 그냥 흘려버릴 자투리가 없다.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심도 있는 입체적 공간을 구성해 그 구도 안 어디에 배치되는가에 따라 캐릭터의 깊이감도 달라진다. 밀실에서 탁 트인 공간까지 거울과 광각 파노라마 앵글, 카메라 패닝으로 훑어내 공간감을 무한하게 확장한다. 

줌인과 줌아웃 카메라 워크, 플래시백은 몰입감을 극한으로 이끈다. 여기에 의도적인 현란한 편집까지 더해지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든다. 모든 것이 한 앵글 안에서 뒤섞여 추리극 장르의 정수를 제대로 즐기게끔 한다.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헤어질 결심' 스틸. ⓒCJ ENM

결말에 이르러서는 후회, 미안함, 연민, 슬픔 등 수많은 감정의 편린이 격정적으로 다가온다. 

사랑을 중단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사랑이 끝났을 때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한다. 오역은 몰래 감춘 사랑을 표면으로 드러나게 하고, 오해는 증오의 연애감정을, 책임감은 아무도 찾지 못할 깊숙한 곳에 사랑을 숨긴다. 입술처럼 부드러워진 손바닥에 거친 바위 대신 바닷물이 닿을 때 마침내 '헤어질 결심'은 종극을 향한다.

점잖고 깨끗한 마르틴 베크 형사를 닮은 해준이 차라리 눈도 코도 없는 해파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기쁨도 슬픔도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둘은 하나가 될 수 있을 텐데.

'찾아내고 싶다'라는 생각, 숨 막힐 듯 밀려오는 거대한 감정의 파도는 오롯하게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영화를 즐긴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헤어질 결심' 포스터. ⓒCJ ENM
▲'헤어질 결심' 포스터. ⓒCJ ENM

◆ 제목: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 감독: 박찬욱

◆ 각본: 정서경, 박찬욱

◆ 출연: 탕웨이, 박해일

◆ 제작: 모호필름

◆ 제공/배급: CJ ENM

◆ 제작자: 박찬욱

◆ 프로듀서: 고대석

◆ 촬영: 김지용 [C.G.K]

◆ 미술: 류성희

◆ 편집: 김상범

◆ 음악: 조영욱

◆ 의상: 곽정애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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