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대한민국 신문논술대회 수상작

▲ 김재훈 씨
▲ 김재훈 씨

옐리네크가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이 말은 법과 도덕 사이의 관계를 갈음한 것인 동시에 법의 정당한 역할과 한계에 대한 논변이기도 했다. 법은 그 속성상 불가피하게 주권자인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입법의 과정과 절차에 있어 해당 법안의 정당성과 타당성에 대한 고민이 충분한 논의와 연구를 통해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 도덕과 양심을 통해 해결해야 할 인간사의 문제들에 대해 섣불리 법의 강제력을 동원하려 드는 것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헌법 조문에 과잉금지의 원칙을 명시한 것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김영란법의 입안자였던 김영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인터뷰에서 해당 법안의 취지에 대해 “우리 사회에 더치페이 문화를 정착시키자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부정부패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우리사회의 현실을 생각했을 때 그녀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며, 일견 타당한 귀결이다.

그러나 형법제도를 동원해 인간의 부도덕성을 교정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가능하다 한들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의문이다. 오는 28일부터 시행되는 김영란법을 둘러싸고 아직까지도 많은 비판과 우려가 계속되고 있지만 사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과도기적인 진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도덕의 문제를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질문은 지극히 본질적인 것으로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질문과 관련하여 김영란법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그 대안을 고민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다. 김영란법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차가운 진실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부정부패의 문제와 관련해 개인의 도덕성에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사회의 도덕적 무능과 자정불가능성을 공식화한 것이다.

은밀하게 행해지던 부정과 부패의 문제를 법률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은 언뜻 보아 타당하고 정당한 논변인 것 같으나 그 안에 숨겨진 함정은 자못 위험하다. 재독철학자인 한병철이 ‘투명사회’에서 통찰했듯 투명성이 도덕적이고 선한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부도덕하고 부패한 사회일수록 투명성이 더욱 강력하게 요청될 뿐이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내부적 불신과 부패가 김영란법을 소환한 셈이다. 사회상류로 이루어지던 모든 상부상조의 영역까지도 투명하게 드러내고, 세세한 법 조항의 잣대로 통제하겠다는 것은 그 취지가 어떠하든 간에 시민윤리의 종말이요, 도덕성의 포기다. 김영란법이 단기적으로 모종의 성과를 내게 되었다 한들 그것을 진정한 의미의 부패척결 혹은 청렴문화 확산으로 자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김영란법을 두고 그것이 부패척결을 위한 고육지책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겁한 일이다. 김영란법은 부정부패 문제와 관련해 우리사회가 할 수 있는 가장 쉽고 편리한 방식의 해결책이었다. 거친 비유가 될지 모르겠으나, 김영란법은 흡사 반려견을 훈련시키는 채찍처럼 보인다. 법의 처벌을 두려워하며 파블로프의 개처럼 부정부패를 기피하는 사람에게 과연 우리가 내면화된 청렴의 가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 김영란법이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미래비전이 과연 무엇인지, 그것이 선진시민사회의 이상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부패 정도가 OECD 소속 34개국 가운데 27위를 기록할 만큼 심각하다고 한다. 하지만 김영란법을 통해 단기간에 우리나라의 청렴지수가 향상되고, 선진화된 시민사회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한들 나는 그 결과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을 듯 싶다. 진정한 선진화는 부패를 줄이고 청렴지수를 향상시키는 것 그 자체에 있기보다 오랜 시간과 지난한 과정을 감내하고서라도 보다 인문학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생래적 자율성을 독려하며 진정한 의미의 청렴성과 도덕성을 사회 전체에 실현시키는 데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속의 어떤 나라나 민족도 윤리나 도덕을 포기한 채 법의 강제력만으로 오랫동안 번영한 예는 없다. 구태여 거창하게 인류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오늘날 지구촌의 나라들 가운데 법이 도덕의 영역을 잠식해 위세를 떨치는 경우, 그 시민들의 삶이 어떻게 피폐해지는지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김재훈, 경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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