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타고 가다 차 안 공기가 탁하다고 느낄 때 창문을 여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런데 그게 얼마나 바보스럽고 위험한 짓인지 말해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엄청난 양의 초미세먼지(PM2.5)와 미세먼지(PM10)를 차내로 불러들이는 꼴이 된다니 말이다.

새누리당 권석창 의원이 교통안전공단과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와 공동으로 실시한 ‘자동차 상태 변경에 따른 미세먼지 유입 측정’ 결과는 그동안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상식을 의심케 한다. 환기를 시키면 공기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나빠진다. 구체적으로 초미세먼지는 약 130배, 미세먼지는 약 90배까지 농도가 올라간다.

측정은 지난 6월 23일 오후 2~3시 교통량이 많은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앞에서 이루어졌다. 초미세먼지는 내기순환 상태에서 0.7μg/㎥이던 것이 외기순환 상태에서는 7.4, 창문을 열자 90.4μg/㎥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기준인 연간 평균치(25μg/㎥)의 3배가 넘고, 24시간 평균치(50μg/㎥)의 2배 가까우며, 주의보 발령 기준(90μg/㎥)마저 넘어서는 수준이다. 미세먼지의 경우도 거의 비슷하다. 내기순환 상태에서 1.6μg/㎥이던 것이 외기순환 상태에서 15.3, 창문을 열었을 때 143.0μg/㎥으로 각각 증가했다.

권 의원의 조사대로라면 차량 운전자는 도심을 운행할 때 아예 창문을 꼭꼭 닫는 것이 옳다. 공조장치도 내기순환 모드로 바꿔야 한다. 바깥 공기를 에어필터로 걸러서 유입시키는 외기순환 상태로 운행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 모두 10배가량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딱한 것은 차량 운전자만이 아니다. 운전자는 최악의 경우 차창을 굳게 닫고 내기순환 상태로 바꾸면 그만이다. 문제는 보행자다. 창문 열고 운행하면 차 안 초미세먼지 농도가 130배 상승한다는 것은 거꾸로 보행자가 그런 바깥 환경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최근 정부와 지자체 등이 내놓고 있는 미세먼지 대책 가운데 가장 소홀히 다뤄지고 있는 부분이 바로 도심 보행자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한여름 도심 인도를 걸어본 사람이라면 차량이 내뿜는 열기와 매연에 숨이 턱턱 막히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 불쾌한 기분은 참을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고농도의 미세먼지·초미세먼지를 흡입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 길을 통과하다 보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만약 차도를 따라 관광버스가 줄지어 정차해 있다면 그것은 최악이다. 십중팔구는 공회전을 하고 있고, 대부분 경유차다. 서울시가 공회전 차량에 관한 조례에 따라 단속을 하고 있다지만 규정이 느슨한 데다 단속 인력도 턱없이 부족해 별무효과다.

특히 도심에 자주 눈에 띄는 경찰차는 최악 중에서도 최악이다. 긴급자동차라고 해서 단속 대상도 아니다. 아예 배기구를 연장해 차도 쪽으로 돌려놓은 채 하루 종일 공회전하기 일쑤다.

미세먼지 대책으로 화력발전소와 경유차를 줄여나가는 정책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급한 대책으로 중점을 기울여야 할 게 있다면 바로 보행자 보호라고 생각한다. 지난 1일 정부가 발표한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에서 빠져 있는 이 부분에 추가적인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2년 전 경찰차 공회전 문제를 주제로 칼럼을 쓴 적 있다. 그 당시 경찰은 380V용 외부 배전시설에서 전기를 끌어와 차량 에어컨을 가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했고, 일반 220V용 무시동 에어컨에 대한 기술적 검토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그것이 허사가 된 것일까. 최근 경찰버스 공회전이 서울 도심 미세먼지 유발 원인으로 지목되자 경찰은 시내 30곳에 외부전기시설(분전함)을 설치하기로 한전과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한다. 어찌 된 일일까. 재탕 대책, 뒷걸음질 대책으로 들린다.

정부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미세먼지 문제를 국가의 최우선 해결과제로 설정했다는 게 빈말이 아니라면 ‘차 안보다 130배 초미세먼지’ 환경에 노출된 도심 보행자에 대한 대책부터 세워야 할 것이다. 이는 가장 시급하고 의지만 있다면 당장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경찰차 공회전 대책이 대표적이다. 경찰차 공회전의 최대 피해자는 거기서 항상 대기하는 경찰이기도 할 것이다.

/논설위원ㆍ신동호 환경재단 그린미디어센터장 ·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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