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이노베이트, 김경엽 체제 1년...성과 본궤도 언제

2025-11-24     윤서연 기자
▲18일 김경엽 롯데이노베이트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윤서연 기자

신사업 확장 불구 성장 모멘텀 ‘제자리’

[SRT(에스알 타임스) 윤서연 기자] 롯데그룹의 디지털·IT 전략 컨트롤타워인 롯데이노베이트가 김경엽 대표 체제 1년을 맞았지만, 실적과 신사업 성과 측면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룹 내 IT서비스와 인공지능(AI)·데이터·전기차(EV) 충전 사업을 이끄는 핵심 계열사로 주목받고 있음에도 매출 성장과 수익성 측면에서 뚜렷한 전환점을 만들지 못하는 모습이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지난해 9월 고두영 전 대표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약 두 달간 경영 공백을 겪었다. 당시 전무였던 김경엽 대표가 직무대행을 맡아 회사를 이끌었고, 이후 정식 대표이사에 올랐다. 그룹 차원에서 디지털 전환과 신사업을 총괄하는 만큼 김 대표 체제 출범 당시 신사업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에 관심이 모였지만,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수치로 확인되는 성과는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금감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롯데이노베이트의 올 3분기 연결 기준 매출액은 2,775억원, 영업이익은 66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6% 줄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0.5% 감소했다. 직전 분기와 비교해도 매출은 1.2%, 영업이익은 17.5% 감소하며 역성장 흐름을 보이는 모습이다.

주가도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김경엽 대표 취임 당시 주가는 2만450원이었지만 현재도 1만9,000원대에 머물러 있다. 그룹의 IT 인프라와 시스템통합(SI) 사업을 책임지는 계열사라는 위상에 비하면 주가·실적 측면에서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실적 부진의 직격탄은 주력 사업인 SI 부문 때문이다. SI 사업의 영업이익이 사실상 반토막 나며 성장세가 꺾였고, 해당 부문의 영업이익률도 0%대로 떨어졌다. 수주·프로젝트 진행 속도가 느려지고, 그룹 내외 IT 투자 기조가 보수적으로 바뀐 영향이 겹친 것으로 풀이된다. 안정적인 캐시카우 역할을 해오던 시스템 운영·유지보수(SM) 사업은 전년 대비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지만 성장 동력 역할을 하기에는 힘이 부치는 모습이다.

AI와 데이터 사업은 그룹 차원의 기대가 가장 큰 영역이다. 롯데이노베이트는 2023년 10월 자체 생성형 AI 서비스 ‘아이멤버(iMember)’를 선보였다. 이듬해 1월에는 아이멤버를 롯데그룹 전 계열사에 도입하며 ‘그룹 표준 AI 업무 도구’로 포지셔닝했다. 회사에 따르면 도입 이후 아이멤버의 월간 사용자는 매월 20%씩 증가했고, 올 6월 기준 누적 사용자 수는 약 2만2,000명을 기록했다. 그룹 내 다양한 계열사의 실무에 맞춘 메뉴와 기능을 고도화해 활용성을 높였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올 7월에는 맞춤형 챗봇, 보고서 자동 작성, 회의 내용 요약 등 6종의 신규 기능을 더한 ‘아이멤버 3.0’을 공개했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연말까지 그룹 안팎의 고객사 300여곳에 아이멤버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룹 내부에서 검증한 AI 업무 도구를 외부 B2B 시장으로 확대해 새로운 수익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현재까지는 사용자 수, 도입 계열사 확대 등 ‘지표 성장’에 비해 매출·이익 기여도는 크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투자가 장기 레이스인 만큼 가시적인 실적 반영에는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새 성장축으로 내세운 전기차 충전 사업도 속도 조절 기류가 읽힌다. 전기차 충전기 사업은 자회사 이브이시스(EVSIS)가 맡고 있다. 이브이시스는 지난해 4월 북미법인을 세운 이후 2년 연속 국내 전기차 충전 사업자 매출 1위를 기록 중이다. 

문제는 생산 능력(캐파)을 늘렸음에도 실제 가동률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EVSIS의 생산 능력은 2023년 연 1만대 수준에서 올해 3분기 기준 1만5,000대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실제 생산 실적을 보면 온도차가 뚜렷하다. EVSIS의 전기차 충전기 생산량은 2023년 8,226대에서 지난해 7,169대로 줄었다. 올 3분기 누적 생산 실적도 5,836대 수준에 머물러, 늘어난 설비에 비해 생산이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다. 회사가 밝힌 올해 기준 가동률은 약 39% 수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로도 3%포인트 가량 낮아졌다. 생산능력은 단계적으로 키워놨지만 실제 발주·설치·운영으로 이어지는 수요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데이터 사업 역시 구체적인 실적이나 사례가 부재해 보인다. 해당 사업은 롯데그룹의 데이터센터(서울·대전·용인)를 기반으로 한 인프라 운영 역량을 앞세워 글로벌 고객사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유통·화학·제조·물류 등 그룹 전반에서 쌓인 데이터를 분석·활용해 외부 고객까지 확장하는 ‘데이터 비즈니스 플랫폼’ 모델로 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메타버스와 로보틱스·자율주행 등 이른바 ‘미래 먹거리’ 사업에서도 과제가 쌓여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은 롯데이노베이트의 메타버스 사업에 각별한 공을 들여왔다. 롯데이노베이트는 메타버스 자회사 ‘칼리버스’를 앞세워 그룹 유통·엔터테인먼트 자산을 가상공간과 접목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지난해 8월 론칭 이후 적자 흐름이 이어지고 있어, 단기간 내 사업 구조 전환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룹 차원의 브랜드 마케팅 플랫폼으로서의 상징성은 분명하지만, 현 시점에서 실적 기여를 논하기에는 이른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부문에서는 아직 ‘레퍼런스 쌓기’ 단계가 이어지고 있다. 롯데이노베이트는 자율주행 실증 사업을 진행해 온 데 이어 최근 제주도와 강원도 강릉시 등에서 자율주행 셔틀을 운행하며 운영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로봇 배송·서빙, 물류 자동화, 스마트시티 등 잠재 수요처는 다양하지만, 사업화 속도와 수익 모델 고도화 측면에서는 여전히 과도기 국면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김경엽 대표의 1년은 ‘신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힌 해’였지만, 그만큼 이제는 숫자로 증명해야 할 시점이라는 과제를 떠안게 됐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룹 계열사를 대상으로 한 내부거래 비중이 여전히 높고, AI·데이터·EV 충전·메타버스·로보틱스 등으로 확장한 신사업이 아직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지 못한 점은 2년차 경영의 숙제로 꼽힌다.

롯데이노베이트 관계자는 “자율주행과 보안 로봇, ‘아이멤버’ 3.0 등 신사업은 아직 실증과 레퍼런스 축적 단계로, 단기 실적보다는 기술 선도와 사업 기반 다각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라며 “자사는 기존 SI·SM뿐 아니라 그룹사 신사업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만큼, 본원적 경쟁력을 고도화해 중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