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경제] '모기업 아니라구요'…재벌 사례로 본 지주사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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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비슷하지만 규제 모두 다르다
[SRT(에스알 타임스) 전지선 기자] 지배구조 개편이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연말이 다가오면서 기업 공시 등에서 지주사·홀딩스·지배회사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얼핏 보면 모두 그룹의 중심축을 맡는 회사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법적 지위도 다르고 규제를 적용받는 범위도 전혀 다른데요.
SK·LG처럼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체제를 운영하는 기업도 있는가 하면, 현대차그룹처럼 지주사 전환을 여러 차례 검토만 해온 경우도 있고, 삼성처럼 지주사 전환 없이도 사실상 그룹의 지배회사 역할을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한화그룹과 DB그룹도 지주사 역할을 하는 지배구조 최상단 기업이 있지만 공정거래법상 지주사는 아닙니다.
특히 지주사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자회사 지분 요건과 부채비율 제한 등 까다로운 규제를 받는 법적 개념이지만, 홀딩스라는 이름은 단순한 상호일 뿐 법적 지위가 따로 없습니다. 회계 기준에서 말하는 '지배회사'는 연결재무제표 작성 기준으로 지배력을 가진 회사를 의미할 뿐, 지주회사 요건과도 직접적인 관련이 없죠. 이름은 비슷한데 적용 법도 다르고 의미도 제각각이라 투자자 입장에서는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오늘 생생경제에서는 혼동하기 쉬운 지주사의 개념을 짚어보면서, 실제 기업들은 어떤 구조를 택하고 있고 지주사 전환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 SK, LG로 본 지주사 개념
먼저 지주회사 체제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는 SK와 LG를 꼽을 수 있습니다. 두 기업은 공정거래법상 요건을 충족해 '법적 지주회사'를 공식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계열사 지분 구조도 이를 중심으로 정리돼 있습니다.
SK는 2007년 SK㈜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그룹 지배구조를 단일 축으로 묶었습니다. SK㈜가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의 최상단에 위치하고 있고,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도 공정거래법 기준을 충족하도록 관리되고 있습니다.
SK가 잇따라 신사업을 인수하거나 사내벤처를 분리할 때 의사결정 속도가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바로 이 지주사 체제 덕분인데요. ESG·반도체·에너지처럼 다양한 사업 라인을 조정할 때도 '지주회사 중심 구조'가 큰 장점으로 작용했습니다.
LG 역시 지주사 전환 성공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LG는 2003년 ㈜LG를 순수지주회사로 출범시키면서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법적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당시 복잡했던 LG·GS·LS 등 창업가문 간 지분 구조를 깔끔하게 정리했을 뿐 아니라, 공개매수 방식으로 자회사 지분을 확보해 주주 반발을 최소화한 점도 업계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습니다. LG전자를 비롯해 LG화학, LG생활건강 등 주요 계열사들이 명확한 지배구조 아래 재편되면서 경영 투명성이 크게 개선됐고, 이후 GS그룹과의 자연스러운 계열분리도 가능했습니다.
두 기업의 공통점은 지주사 체제가 가져오는 '구조적 안정성'입니다. 지분구조가 명확하고, 규제 프레임이 분명하다 보니 시장에서도 지배력 유지나 승계 전략을 해석할 때 혼란이 적습니다. 대신 자회사 지분율·부채비율 관리 등 규제 준수 비용이 안정적으로 발생하지만, SK와 LG는 이미 성숙한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어 비교적 큰 무리 없이 운영되고 있는 편입니다.
국내 대기업들이 지주사 체제를 선택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정리하고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동기입니다. 공정거래법이 순환출자를 지속적으로 규제하면서 과거처럼 여러 계열사가 서로 지분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지배력을 유지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지주사를 세우면 최상단 회사가 단일 축이 되어 계열사를 직접 지배하게 되므로, 시장에서도 지배구조가 단순하고 명확해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둘째로, 승계 과정에서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주요 배경입니다. 일부 그룹은 지주사를 통해 오너 일가의 지배력 구조를 법적 요건 안에서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어, 경영권 승계가 필요한 시점에 지주사 전환을 다시 검토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SK나 LG처럼 이미 지주사 체제를 안정적으로 정착한 그룹들은 오너 일가 지분율이 최상단에서 명확하게 정리돼 있어 주주나 시장에서도 구조를 이해하기 쉬운 편입니다.
셋째로, 사업 효율성과 투자 추진 속도 측면에서도 지주사 전환은 장점을 갖습니다. 사업회사(Operating Company)와 지주회사를 분리하면, 지주사는 투자·M&A·신사업 전략 수립에 집중하고, 사업회사는 현장 경영과 실적 개선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SK가 여러 신사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구조적 장점 덕분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다만 지주사 전환은 세 부담, 자회사 지분 확보 비용, 규제 충족 요건 등 현실적 제약도 크기 때문에, 모든 대기업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아니며 각 그룹의 상황에 따라 선택이 갈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롯데그룹도 지주사 전환을 통해 지배구조를 대폭 정비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2015년 '형제의 난'으로 불렸던 경영권 분쟁과 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난 순환출자 구조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자, 롯데는 2017년 호텔·식품·유통 등 핵심 계열사를 재편해 지주회사인 '롯데지주'를 공식 출범시켰습니다.
당시 롯데그룹은 50개가 넘는 순환출자 고리를 단계적으로 해소했고, 계열사 간 얽혀 있던 복잡한 지분 구조를 정리하면서 외부에서도 그룹 지배구조가 한층 투명해졌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후 롯데는 비핵심 사업 매각, 투자 구조 재편 등을 병행하며 지주사 중심의 경영구조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 삼성, 지주사 전환 쉽지 않은 배경은
삼성은 시장에서 가장 자주 지주사 전환 가능성이 거론되는 기업이지만, 실제로는 구조적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기 어려운 제약을 안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공정거래법과 금산분리 규제가 동시에 적용되는 기업이라는 점인데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려면 비금융 지주사가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없기 때문에, 현재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등 금융계열사의 지분 구조를 대폭 정리하거나 지배력을 축소해야 합니다. 사실상 금융회사를 매각하거나 분리해야 한다는 의미여서 현실적인 부담이 큽니다.
특히 최근 논의된 보험업법 개정안도 지배구조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 개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도록 바꾸는 내용이 핵심입니다.
만약 이 규정이 시행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약 8.5%를 시가로 평가해야 하고, 총자산 대비 3% 규정을 맞추기 위해 최소 20조 원대의 지분 매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이런 규제 변화는 삼성의 지주사 전환 논의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자금 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주사 체제를 구축하려면 최상단 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일정 비율 이상 확보해야 하는데,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300조 원이 넘습니다.
삼성은 과거 금융지주사 전환 가능성을 검토한 적도 있습니다. 2016년 삼성생명이 삼성화재 지분 확보 작업을 통해 금융계열 통합을 추진하며 금융지주사 전환을 시도했지만, 관련 규제 변화와 지배구조 부담이 겹치면서 2017년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후 삼성그룹은 공식적으로 지주사 전환 계획을 밝히지 않았고, 최근에도 내부적으로 '지주사 체제 전환은 현실성이 낮다'는 기류가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삼성은 법적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았지만, 연결재무제표 기준에서는 삼성전자가 그룹의 주요 계열사에 지배력을 행사하는 사실상의 '지배회사'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이 서로 핵심 지분을 보유한 구조 속에서 지주사 체제와 유사한 지배구조가 형성돼 있지만, 공정거래법상 지주사가 아니기 때문에 자회사 지분 요건이나 부채비율 규제는 적용받지 않습니다. 규제 부담은 적은 구조지만, 지배구조 투명성 측면에서는 꾸준히 개선 요구가 제기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또한 삼성과 유사하게 ‘지주사 역할’을 하면서도 법적 지주사는 아닌 기업들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한화그룹의 ㈜한화, DB그룹의 DB Inc.가 그러한 사례입니다. 이들 회사는 그룹의 최상단에서 각 계열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지만,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전환 요건(자회사 지분 요건·부채비율·손자회사 규제 등)을 충족하지 않아 공식적인 ‘지주회사’ 지위를 선택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화는 방산·에너지·금융·우주항공 등 다양한 업종의 계열사를 지배하지만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등록을 하지 않았고, DB Inc. 역시 그룹의 사실상 지배회사지만 지주회사 규제 프레임을 적용받지 않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지주사 역할을 하면서도 지주사 등록은 하지 않는' 구조가 일부 대기업에서 나타나고 있으며, 삼성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현대차그룹, 지주사 전환 거론되지만 갈길 멀어
현대차그룹은 과거 여러 차례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이 제기돼 왔으며, 특히 2018년 엘리엇의 요구를 계기로 지주사 전환 논의가 공개적으로 추진된 바 있습니다. 당시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투자·모듈 사업으로 인적분할한 뒤, 투자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해 사실상 지주회사 축을 세우는 방안을 발표했는데요.
하지만 이 계획은 다양한 이해관계와 규제 쟁점이 한꺼번에 얽히며 최종적으로 무산됐습니다. 현대차·기아·모비스·글로비스 사이의 복잡한 지분 구조, 모비스 모듈·AS부품 사업의 가치평가 논란, 해외 의결권 자문사와 연기금의 반대 등이 모두 겹쳤기 때문입니다. 이후에도 지배구조 개편 필요성은 꾸준히 거론됐지만, 현대차그룹은 현재까지 공식적인 지주사 전환 작업을 다시 추진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제조·판매·물류·모빌리티 등 다양한 사업 부문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경우 사업가치 평가 문제나 세 부담, 주주 반발 가능성이 커질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여기에 완성차 기업 특성상 전동화·배터리·자율주행 등 신사업 투자가 지속적으로 필요한 만큼, 지주회사 체제의 투자·규제 한계가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현대차그룹은 지주사 전환 필요성을 '검토'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지만, 실제 전환으로 이어지지 못한 상황입니다.
결국 지주사·홀딩스·지배회사는 이름은 비슷해도 법적 지위와 적용 규제가 서로 다른 만큼,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 이슈를 이해하려면 각 회사가 어떤 구조를 택하고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연말마다 지배구조 개편 논의가 반복되는 만큼, 투자자 입장에서도 공시 속 구조적 변화가 향후 투자·배당·경영 전략에 어떤 영향을 줄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