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레니우스 벤츠 회장 방한 속 삼성·LG 전장 ‘재조명’

2025-11-17     윤서연 기자
▲‘메르세데스-AMG E 53 하이브리드 4MATIC+’. ⓒ벤츠코리아

전기차 둔화·SDV 전환기…파트너십 확대 모색

LG이노텍, 벨류체인 합류…SDI 실적 반등 가능할 듯 

[SRT(에스알 타임스) 윤서연 기자] 전기차 수요 둔화와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전환이라는 산업 지형 변화 속에서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이 한국을 찾으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전장 전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완성차 협력 구조가 재편되는 국면에서 양사의 전장 해법이 이번 일정에서 부각됐기 때문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올라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은 지난주 한국을 방문해 LG와 삼성 경영진을 잇달아 만나 차량용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협력 논의를 진행했다. LG는 주요 전장 계열사를 총동원해 ‘원팀 전략’을 재확인했고, 삼성은 배터리·반도체·인포테인먼트를 중심으로 기술 협력 폭을 넓히며 각자의 강점을 부각했다.

◆ 원팀 LG, 그룹 전장 역량 '총결집'

▲지난 13일 LG와 메르세데스-벤츠 최고 경영진은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만나 LG의 자동차 부품 사업 역량을 결집한 ‘원(One) LG’ 솔루션 협업 확대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LG전자

칼레니우스 회장은 지난주 방한 첫 일정으로 LG트윈타워를 찾았다. 이 자리에는 조주완 LG전자 CEO,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CEO, 정철동 LG디스플레이 CEO, 문혁수 LG이노텍 CEO 등 LG의 전장·배터리·디스플레이·센서 분야 핵심 경영진이 총출동했다. 그룹의 전장 역량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원팀(One LG)’ 행보였다.

LG는 차량용 디스플레이·배터리·카메라 모듈·ADAS 센서 등 그룹 전체 기술력을 결집해 ‘풀스택 전장 패키지’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LG전자는 2023년 전장(VS) 수주잔고 100조원을 돌파한 뒤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매년 10조원 이상을 벌어들이고 있다. 올 3분기에도 VS 사업부의 매출액은 8조3,393억원으로, 연간 10조원 돌파가 전망되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차량용 OLED·LCD 공급 확대를 통해 점유율을 높이고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9월 15조원 규모의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 공급 게약을 체결하는 등 협력을 지속하고 있다.

4개사 중 유일하게 벤츠 생태계에 아직 합류하지 않은 LG이노텍은 카메라 모듈·라이다·레이다 등 자율주행 센서 기술을 기반으로 벤츠와 차량용 솔루션 사업 협력을 검토 중이다. 2030년까지 전장부품 사업을 포함한 미래 육성 사업으로 전체 매출의 25% 이상을 달성하겠다고 밝힌 만큼, 업계에서는 일부 고성능 센서류와 카메라 기술이 향후 벤츠 프로젝트에 적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특히 LG디스플레이가 개발 중인 언더패널카메라(UDC)는 그룹의 전장 기술 결집을 상징한다. LG디스플레이와 LG이노텍이 공동 개발한 해당 기술은 카메라·모듈 홀이 보이지 않는 풀스크린을 구현하면서도 운전자 모니터링 기능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양사는 UDC 알고리즘과 고화질 IR 카메라 최적화를 통해 CES 2026 혁신상을 수상했다. 업계에서는 2027년 양산, 2028년 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적용 가능성이 제기된다.

◆ 'SDI·하만' 앞세운 삼성, 미래차 공조 범위 확대 

ⓒ하만

같은 날 저녁, 칼레니우스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만났다.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열린 만찬 자리에는 최주선 삼성SDI 사장과 크리스천 소봇카 하만 CEO가 동석했다. 삼성은 이번 벤츠 회동에서 배터리·차량용 반도체·OLED 등 ‘핵심 기술 축’을 중심으로 협력 범위를 넓히는 전략을 부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삼성SDI는 현재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전고체 배터리 기술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4분기 8년 만의 분기 적자를 기록한 이후 올해 3분기까지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연간 누적 적자만 1조4,000억원에 달하는데, 전기차 배터리 수요 둔화와 주요 고객사의 발주 감소가 맞물린 결과다.

이 때문에 삼성SDI는 이른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를 기반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서 신규 수주를 확보한다면 실적 반등의 결정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 회동에서도 전고체 배터리 기술 및 공동 실증 전략이 핵심 논의 의제였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실제로 이날 만찬 자리 역시 최주선 삼성SDI 사장이 주도해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SDI는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와 전고체 배터리 개발 속도를 높이며 글로벌 프리미엄 완성차에서 기술력을 주목받고 있다. 삼성SDI는 2023년 업계 최초로 전고체 배터리 파일럿 라인을 가동하고 시제품을 고객사에 공급하며 테스트 중이다.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최근 BMW와 전고체 배터리 실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기술 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에 무음극 구조를 적용해 기존 대비 에너지 밀도를 약 40% 향상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전장 자회사 하만 역시 이번 기회를 발판 삼아 도약 가능성이 점쳐진다. 삼성전자가 2016년 인수한 하만은 벤츠 EQS에 탑재된 MBUX 하이퍼스크린을 공급하며 차량 UX·OS·프리미엄 오디오 분야에서 핵심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완성차의 ‘스마트폰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삼성은 하만을 중심으로 차량용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AI 기반 운전자 모니터링 기능을 포함한 ‘인지 기반 SDV 플랫폼’을 공개하기도 했다.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차량용 OLED에 대한 존재감이 커지면서 삼성디스플레이와의 협력도 주목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차량용 OLED 시장은 2030년 약 6배 이상 성장할 전망이며, 삼성디스플레이는 이미 55%대 점유율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차량용 OLED 브랜드 ‘DRIVE™’를 통해 디자인·안전·화질·확장성을 강화한 만큼 향후 벤츠 등 글로벌 완성차 공급 가능성도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벤츠 회장의 방한 일정을 두고 LG와 삼성의 전장 전략을 모두 확인한 상징적 행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전기차 수요 변동성, SDV 전환 비용 증가 등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도 전장 사업은 완성차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분야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차량 한 대를 만들기 위해 디스플레이·배터리·센싱 등 다양한 구성 요소가 필요하다”며 “각 그룹이 보유한 전장 솔루션을 한 번에 묶어 제시하면 고객사와의 소통이 수월해지고, 제품 간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어 계열사가 함께 움직이는 방식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전장 사업은 디스플레이·소프트웨어·오디오 등 여러 요소가 결합된 구조라 동일 완성차에서도 여러 업체가 함께 공급할 수 있다”며 “결국 각사의 강점을 기반으로 생태계에 진입하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