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보다 완성도"…삼성·LG, AI 로봇 장기전 택했다

2025-09-24     윤서연 기자
▲삼성전자 '볼리', LG전자 'Q9'. ⓒ각 사

AI 홈 로봇, 시장성과 가격·폼팩터 고민…출시 시기 '신중 모드'

[SRT(에스알 타임스) 윤서연 기자] ‘AI 집사 로봇’으로 불리는 삼성전자 ‘볼리’와 LG전자 ‘Q9’를 올해 안에 만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양사는 연내 출시 계획을 내놨지만 올해가 석 달 남은 상황에서 시장에서는 속도보다 완성도를 선택했다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25’에서도 해당 제품들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일정은 사실상 내년으로 연기된 모양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LG는 올해 초부터 AI 집사 로봇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현재까지 일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양사 모두 시장성 검토와 필드 테스트 과정에서 기능 보완과 수정을 반복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이라는 입장이다. 

삼성전자의 볼리는 2020년 CES에서 처음 소개된 뒤 기술 고도화를 이어왔다. 지난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볼리 존’을 따로 마련해 주주들에게 선보인 바 있다. 볼리는 집안을 이동하며 가전을 제어하고 생활 패턴을 학습하는 로봇으로, 삼성의 디스플레이 기술·스마트싱스·AI 기능을 결합한 집약체다. 와이어리스 8K 프로젝터로 벽이나 바닥에 콘텐츠를 투사할 수 있고, 어린이·노인·반려동물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돌봄 기능도 갖췄다.

앞서 지난해 12월 로봇 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투자를 늘려 최대 주주로 올라선 삼성전자는 대표이사 직속으로 '미래로봇추진단'을 신설하는 등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범용 로봇 AI 개발 전문 스타트업 스킬드 AI에도 투자하면서 차세대 로봇 기술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LG전자의 Q9은 ‘이동형 AI홈 허브’로, 음성·영상 인식 기반 스마트홈 연동 기능을 내세운다. 공간을 돌아다니며 사용자와 소통하고 IoT 기기를 제어할 수 있으며, MS의 음성인식·합성 기술이 탑재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올해 초 LG는 MS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식화하며 관련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번 IFA 2025에서 선보인 통합 AI홈 허브 'LG 씽큐 온'의 기능 이상으로 Q9에는 단순 허브가 아닌 가사 노동 절감을 위한 실용적 기능 중심으로 재설계될 전망이다. 아울러 상업용 로봇 기업 베어로보틱스를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가정용 로봇 고도화에도 시너지가 기대된다. 산업·상업·가정용 로봇에 공통적으로 쓰이는 센서·모터·액추에이터 기술을 공유해 가정용 제품을 더 소형화·섬세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사가 기술 개발과 전략 조율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 기업들은 이미 시장 선점에 나섰다. TCL은 AI 집사 로봇 ‘에이미(AiMe)’를 선보였고, 부스터로보틱스와 유니트리는 각각 휴머노이드와 반려견 로봇 'Go2'를 내놓았다. 특히 유니트리의 Go2는 CES 2025에서 이름을 부르면 달려오고 공중제비를 하는 등 화려한 동작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IFA 2025 현장에서 실제 관람객과 능동적으로 소통하는 수준의 로봇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게 실제 관람객들의 후문이다. 단순 시연과 생활 속 실질적 도움은 여전히 간극이 크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상황 속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출시에 신중을 가한 것은 불가피하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단순히 출시를 앞당기는 것보다는,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수준을 따라잡는 제품을 내놔야만 시장에서 의미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용석우 삼성전자 VD사업부장은 이달 초 IFA 기자간담회에서 “(볼리는) 필드 테스트 진행 과정에서 발견된 여러 문제점으로 출시가 늦어지고 있다”며 “빠르게 극복해 출시 시기를 다시 밝히겠다”고 말했다. 류재철 LG전자 생활가전(HS) 사업본부장 또한 “Q9 기획 당시만 해도 로봇 하드웨어 기술이 이렇게 빨리 발전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며 “아직 출시 일정을 잡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로봇 기술은 지금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고 이러한 기술이 실제 고객들에게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며 “현재 트렌드보다 앞선 수준의 제품을 내놔야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고, 그래야 기술 발전 속도가 따라와도 일정 기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삼성과 LG 모두 충분한 시장성 검토와 기술 고도화를 거쳐 완성도 높은 제품을 내놓기 위해 출시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중국을 비롯한 일부 기업들이 프로토타입 제품으로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첫 세대 로봇인 만큼 형태와 가격대가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고, 삼성·LG는 완성도와 생태계를 무기로 표준을 선점하려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