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의 미래사업 구상 부메랑…석화사업 실적 부진 늪

2025-08-21     전지선 기자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해외 합작 프로젝트도 지연
[SRT(에스알 타임스) 전지선 기자]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으로 미래를 준비했던 신동빈 회장의 구상이 예상치 못한 역풍에 직면했다. 롯데케미칼은 글로벌 경기 둔화와 석유화학 시황 악화로 또다시 적자를 냈고,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았던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마저 부진을 면치 못했다.

신 회장이 2023년 2조7,000억원을 들여 일진머티리얼즈(현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인수하며 '배터리 소재로 그룹의 미래를 열겠다'던 약속은 아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투자 부담과 적자가 겹치며 재무 건전성 우려가 커지고, 시장에서는 '몸집만 불린 채 수익성은 뒷걸음질 쳤다는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 롯데케미칼, 7분기 연속 적자…유동성 부담 여전
21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올해 2분기 연결기준 매출 4조1,971억원, 영업손실 2,449억원을 기록하며 7분기 연속 적자에 빠졌다. 기초화학 부문의 부진이 지속된 가운데 첨단소재 부문이 흑자를 냈지만 전체 실적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신용평가도 롯데케미칼의 재무 구조 악화를 경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규모 설비 투자와 일진머티리얼즈 인수(2조7,000억원), 인도네시아 NCC 건설(LINE 프로젝트, 총 투자규모 약 5조원) 등이 맞물리며 2022년 이후 차입 부담이 급격히 불어났다. 

실제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2021년 말 3,000억원 수준에서 올해 3월 말 6조6,000억원으로 불어났고, 순차입금/EBITDA 배율도 같은 기간 0.1배에서 8.9배로 치솟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순차입금 비율이 20%대를 넘어선 것은 시장에서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 신호"라며 "인수 효과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차입 부담이 그룹 전체 신뢰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신 회장이 공격적인 인수로 몸집을 불렸지만,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한 채 재무 부담만 키운 셈"이라고 말했다.

적자가 지속되면서 유동성 부담은 여전하다. 롯데케미칼의 유동비율은 2020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다. 올해 2분기 기준 롯데케미칼의 유동비율은 109.1로 2021년 말(206.0) 대비 큰 폭으로 떨어졌다. 유동비율이란 기업의 단기채무지급능력 지표다. 만약 유동비율이 100이하면 위기 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실적 부진과 대규모 투자로 재무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 롯데는 '체질 개선'과 '신사업 고도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계획을 유지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하반기부터 수소 출하센터의 상업 가동을 본격화하고, 고기능성 컴파운드와 친환경 소재 공급을 확대해 수익 기반을 다질 예정이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위해 범용 석유화학 사업 재편과 비핵심 자산 효율화를 통한 비즈니스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의 3분기 영업손실이 약 1,151억원 수준으로 2분기보다는 개선될 전망"이라며 "기초화학 부문 손실 축소와 일부 관세 불확실성 해소, 납사 재고 영향 제거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관세 변수는 여전히 일부 남아 있고, 하계 비수기 영향으로 펀더멘털 개선 폭이 크지 않아 시장의 기대감을 크게 높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실적 부진에 주가 반토막
신동빈 회장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인수한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역시 올해 2분기 매출 2,049억원, 영업손실 311억원을 내며 적자 행진을 이어갔다. 전분기보다 손실 폭은 줄었지만, 전기차 소재 수요 둔화와 투자 부담이 겹치며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히 인수 효과에 대한 기대와 달리 주가 흐름은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 인수 전인 2021년 11월 주가는 13만7,000원 수준이었지만, 이후 실적 부진과 재무 부담 우려가 이어지며 이날 장마감 기준 주가는 2만5,400원이다.

권준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동박 시장 내 경쟁 심화로 가공비(T값)가 전분기 대비 약 4% 하락했으나, 주요 고객사의 선제적 재고 조정이 일단락되면서 판매 회복세가 나타났다"며 "가동률이 1분기 44%에서 2분기 52%로 개선되며 적자가 지속됐음에도 불구하고 손실 폭은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반기에도 전방 고객사의 재고 조정 영향이 남아 있어 올해 안에는 분기 흑자 전환이 쉽지 않다"고 전망하면서도 "경쟁사의 동박 사업 매각으로 반사 수혜가 기대되고, 고객사인 삼성SDI의 미국 ESS 라인 가동과 국내 중앙계약시장 낙찰에 따른 ESS 비중 확대가 하반기 실적을 일부 개선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전망했다.

이준석 한양증권 연구원은 "올 상반기 기준 ESS용 동박 비중이 약 15%로 향후 수요 확대에 따른 성장이 기대된다"면서 "또 초극박 동박과 하이브리드 동박을 비롯한 차별적 기술 역량을 확보해 AI(인공지능) 가속기와 차세대 배터리 산업 수요에 대응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미국 공장 설립을 통한 전략적 우위, 글로벌 고객사 다변화로 중장기 성장 기반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미국 공장은 관세 회피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보조금 수혜, 글로벌 고객사의 강력한 수요에 대응할 수 있어 여전히 핵심 과제로 평가된다"고 했다.

◆ 석유화학 합작법인도 ‘애물단지’ 신세
롯데케미칼이 공들여온 해외 석유화학 합작법인들이 그룹 재무 부담의 한 축으로 전락하고 있다. 

말레이시아 자회사인 롯데케미칼 타이탄은 올해 2분기 약 4,140억원의 매출을 올렸지만, 500억원 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기조를 이어갔다. 전년 동기 대비 적자 폭은 줄었으나, 상반기 누적 기준으로도 약 950억 원의 세전 손실을 냈고,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 역시 270억원에 그치며 수익성 회복에는 한계가 드러났다.

또한, 인도네시아 찔레곤 지역에서 진행 중인 초대형 납사 크래커(NCC) 프로젝트 ‘LINE’은 총 투자액이 39억 8,000만 달러(약 5조 6,400억원)에 달하는데, 리스크는 커지고 실제 성과는 부족한 상황이다. LINE은 롯데케미칼의 지분이 49%로 지분 기반으로 환산하면 약 2조 7,600억원에 해당하는 중대한 투자다.

앞서 2022년 신동빈 회장은 기공식에 직접 참석해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인도네시아와 함께 성장하겠다”며 인도네시아 경제에 대한 ‘상호 전략적 가치’를 강조했었다. 그러나 이후 건설 지연, 글로벌 수요 부진, 재무 부담 가중 등으로 실질적인 수익 창출은 미미한 상태다.

실제로 LINE 프로젝트는 5조 원이 넘는 초대형 투자가 소요되는 만큼 단기 수익성 확보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글로벌 석유화학 시황이 침체 국면에 있고, 건설 지연에 따른 비용 부담까지 겹치면서 당장의 실적 기여는 제한적이다.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은 합작사 HD현대케미칼을 통해 충남 대산공장에서 납사 분해와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해왔다. 그러나 글로벌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으로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합작사의 실적도 부진을 면치 못했다. 실제로 기업데이터 연구소 CEO스코어에 따르면 HD현대케미칼은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 규모가 약 2,886억 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양사는 사업 구조 개편과 효율화를 추진 중이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HD현대오일뱅크와 대산 공장 통합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Asset Light' 전략을 구체화했다. 이 전략은 대규모 설비를 직접 보유하기보다는 합작이나 협력을 통해 자산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불황기에 리스크를 줄이는 대안으로 꼽힌다.

이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은) 중국 및 한국 정부 차원의 공급 개혁과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지만, 중국발 과잉공급과 높은 수출 의존도로 인해 단기간 내 상황이 호전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라면서도 "시간이 더 소요되더라도 방향성 자체는 적절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롯데케미칼은 HD현대오일뱅크와 대산 공장 통합을 위한 MOU를 체결하는 등 자율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이어가고 있으며, 정부 지원이 더해질 경우 ‘Asset Light’ 전략이 본격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