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악마가 이사왔다' 안보현 "국보 아이돌 임윤아, 사람 냄새나는 배우"
"길구는 이상근 감독 인격이 그대로 담긴 인물"
"인형 뽑기 장면은 길구 마음을 표현한 장치"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영화 '베테랑2', '노량: 죽음의 바다',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이태원 클라쓰' 그리고 예능에서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 안보현. 그가 이번에는 '엑시트' 이상근 감독의 신작 '악마가 이사왔다'에서 퇴사 후 무미건조한 일상을 보내던 청년 백수 길구 역을 맡았다. 길구는 아랫집에 이사 온 선지에게 첫눈에 반하게 되지만, 낮과 밤이 다른 선지의 정체에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주변을 맴돈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선지의 보호자 아르바이트를 부탁받고는 인생 최대 위기에 몰란다.
안보현은 앞선 작품들에서 보여준 강렬한 모습과는 정반대의 매력을 가진 백지 같이 순수하고 무해한 청년 길구로 분해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안보현 배우를 만나 영화 '악마가 이사왔다'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첫 주연 영화다. 개봉을 앞둔 소감을 전한다면
찍은 지 2년 정도 된 영화인데 예쁘고 사랑스럽게 담긴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극장에 포스터가 걸린다는 것 자체가 되게 감사하기도 하고요. 언젠가는 나올 영화이기 때문에 딱 알맞은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달콤하고 힐링이 되는 이 따뜻한 영화를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Q. 영화의 어떤 부분이 가장 힐링 포인트라고 생각하나
길구라는 인물은 정말 세상에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상처를 드러내지 않고 살다가, 선지를 만나면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나서죠. 또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나 관계 맺는 과정에서,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드러났던 것 같아요.
잠시 길을 잃었던 길구가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자기 길을 다시 찾아가는 모습이죠. 그런 점에서 보면서 힐링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Q. 기존의 역할과는 다른 매력을 가진 캐릭터다. 대중들이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다른 인물 연기에 부담은 없었나 그리고 길구가 본인과 닮은 점이 있다면
기존에 강인하고 남성미 넘치는 역할을 많이 해왔어요. 그런데 길구 같은 역할을 하면 이질감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은 저 자신에게 도전이었고, 해보고 싶었던 대본이었기 때문이죠. 첫인상 때문에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영화를 보시면 캐릭터와 잘 융화되는 모습을 받아들이실 것으로 믿습니다.
사실 저는 길구에 좀 더 가깝긴 해요. 학창 시절에는 내성적인 모습이 있었는데 연기를 시작하면서 외향적인 성격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을 했어요. 그래도 길구 같은 모습은 아직 남아있어요. 현장에서 임윤아 배우나 감독님, 스태프들에게 너무 길구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저도 챙겨주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주변에서 허당이라는 말을 듣기는 합니다. 저는 뭘 받는 것보다 더 많이 도와주고 베풀려고 해요. 엄청 거창한 건 아니지만, 소소한 부분에서 알게 모르게 많이 베풀고,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그런 부분이 길구와 좀 닮은 것 같아요.
Q. 소녀시대 임윤아 배우와의 연기 호흡을 맞춘 소감은
너무 신기했죠. 지인들이 네가 뭔데 임윤아 배우와 연기하냐는 질타도 받았습니다. (웃음) 촬영 후 오랜만에 다시 만났는데 역시 소녀시대 센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촬영 감독님이 첫 리딩을 하고 나서 둘이 친해졌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사석에서 같이 술도 마시면서 친해졌어요. 저희 세대 때는 소녀시대가 우리나라의 국보 같은 아이돌이었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만나보니까 정말 인간 냄새, 사람 냄새 나는 분이더라고요. 오히려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저보다 훨씬 더 능숙했어요. 그런 점은 많이 배웠고, 어떻게 보면 인생 선배처럼 사회생활을 빨리 시작한 덕에 제가 얻은 것도 많았어요. 게다가 쾌활한 성격 덕분에 현장 분위기도 굉장히 좋았습니다.
Q. 성동일 배우와 함께 연기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저는 일단 성동일 선배님을 믿고 갔습니다. 대본을 처음 봤을 때는 여기가 웃음 포인트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이 있거든요. 근데 그걸 선배님이 현장에서 만들어내신 것 같아요. 감독님도 저도 현장에서 너무 웃었죠.
임윤아 씨도 선배님이랑 촬영하면 너무 웃겨서 계속 NG가 날 정도였어요. 병원 신은 길구라는 사람이 정말 무해한 사람이라는 걸 정확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생판 모르는 사람이 등본을 떼어 달라고 했는데 진짜로 등본을 떼어주잖아요. 그 장면을 통해 길구가 무해한 사람으로 판단하는 부분인데, 선배님이 길구 캐릭터를 정말 잘 살려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Q. 영화 속 장면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저는 맞는 연기가 더 마음이 더 편하거든요. 현장 분위기가 좋아서 주현영 배우에게 꼬집히는 장면처럼 애드리브로 진행된 부분도 있었죠. 성동일 선배님에게 멱살 잡는 장면은 정말 몰입해서 연기해주셔서 집중하기가 좋았습니다.
구마 장면에서는 사실 제가 엄청 울었습니다.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방향과는 다른 눈물이었겠지만 어떤 감정이 올라왔기 때문이죠. 감독님이 당황하실 정도로 펑펑 울어서 첫 테이크는 사용을 못 했어요. 감정을 좀 누르고 다시 촬영했었죠.
Q. 선지는 밤에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한다. 현실이라면 감당하기 쉽지 않다. 실제로 선지 같은 사람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 같은지
사실 악마 선지가 했던 행동들을 보면, 현실에서 성인이 하기는 힘든 행동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 행동들을 하나씩 되짚어보면 다 투정 같은 것들이에요. 예를 들면 먹기 싫다고 던진다거나, 먹지 말라는 걸 굳이 먹는다거나 하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귀엽게 보이는 순간이 많았어요.
길구로서는 무섭다기보다 당황스럽고 황당하다고 느끼는 부분들이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악마 선지를 호되게 혼내기보다는 옆에서 제지하고 말리면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돼요. 그 행동들에 미운 마음이 들기보다는 갈수록 보듬어 주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그래서 현실에서 부탁받거나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사실 크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잠을 못 자는 건 그래도 제가 볼 때는 한 두세 시간 정도는 자지 않을까요? 젊으니까 가능할 것 같습니다. (웃음) 두 인격체가 공존하는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고 한다면 전 재미있을 것 같긴 해요. 낮 선지와 밤 선지 중 선택해야 한다고 했을 때는 밤 선지 쪽입니다.
Q. 길구가 선지를 돕는 방식이 단순히 착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헌신적이다
좀 과하다 싶은 설정일 수도 있는데, 사실 길구는 악마 선지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보냈잖아요. 구원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고 봤어요.
길구라는 인물도 현실에서 조금 소외감을 느끼고 자기만의 세상을 가진 친구잖아요. 그러다 보니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굉장히 컸을 거예요. 그래서 악마 선지가 편안한 생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었던 거죠.
저는 이 캐릭터에 감독님이 투영돼 있기 때문에, 이 설정이 말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길구라는 캐릭터에 대해 말할 때면 이상근 감독의 인격이 거의 그대로 담긴 인물이라고 설명드리고 있어요. 감독님은 정말 무해하고 같이 있으면 실실 웃음이 나오는 그런 분이에요. 그래서 길구가 '엑시트' 용남의 계보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인형 뽑기 장면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어떻게 해석하고 연기했나
인형 뽑기라는 설정이 그냥 재미로 넣은 게 아니더라고요. 영화를 다시 보면서 그걸 확실히 느꼈어요. 사람이 없는 시간에, 혼자 후드까지 푹 눌러쓰고 인형 뽑기 기계를 찾아가서 뭔가를 끄집어내잖아요. 그 모습이 마치 자기 마음을 꺼내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텅 빈 인형 뽑기 기계를 보면서 느끼는 공허함, 집에 뽑아온 인형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그걸 또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모습을 보여주잖아요. 저는 그게 길구의 마음을 표현한 장치라고 느꼈어요.
정작 본인은 쓰지 않잖아요. 그게 길구의 힘듦과 마음속 상태를 은근하게 보여준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장면을 보면서, 촬영할 때와는 또 다른 감정을 느꼈고, 감독님은 진짜 천재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Q. 제작사인 외유내강과는 '베테랑2'와 이 작품을 통해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
사실 '베테랑2'는 '악마가 이사왔다' 다음 촬영이었습니다. 류승완 감독님이 놀러 오듯 현장에 찾아오셨었죠. 이 작품 촬영이 끝날 때쯤 '베테랑2'를 곧 시작하게 될 것 같다고 하시면서 출연 제안을 주셨어요. 대본도 보지 않고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제가 '베테랑'과 외유내강 제작사 팬이라서 제안 주신 게 너무 감사했어요.
근데 '베테랑2' 찍으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특별 출연이 맞나 싶을 정도로 촬영을 많이 했죠. 근데 고생한 만큼 멋지게 장면이 나와서 뿌듯했습니다. 사실 대사 한마디 없는데 굉장히 잘 만들어 주신 것 같아요. 정해인 배우와는 동갑 친구라 서로 의지를 많이 했죠.
Q. 이번 영화를 주로 봐주셨으면 하는 관객층이 있다면
영화가 12세 관람가이기 때문에, 사실 가족분들이 함께 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연인분들이 와서 보셔도 서로의 관계에 대해 한 번 더 느낄 수 있는 마음 편한 영화가 아닐까 싶어요. 혼자 보시기에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다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