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지적 독자 시점' 안효섭 "한 여름 롤러코스터 타는 듯한 경험 선사"

2025-07-23     심우진 기자
▲안효섭. ⓒ더프레젠트컴퍼니

"'케이팝 데몬 헌터스' 흥행 예측 못해…그저 감사할 따름"

"할리우드 영화 제의 있다면 선택할 것"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에서 청량한 이미지로 얼굴을 알린 배우 안효섭은 '낭만닥터 김사부 2, 3', '사내맞선'까지 의학 드라마와 감성 로맨스에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홍천기'에서는 판타지 사극 장르까지 섭렵하며 한층 더 성숙한 배우로 도약했다. 

넷플릭스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는 목소리 연기로 글로벌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배우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안효섭은 영화 '전지적 독자 시점'에서 현실이 되어버린 소설 속 세계에서 스스로를 증명해 가는 김독자의 깊은 눈빛과 밀도 있는 감정 연기를 선보인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안효섭 배우를 만나 '전지적 독자 시점'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전지적 독자 시점'을 기대하는 관객들이 많다. 부담감이 크지 않았는지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부담감을 느낀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보니 최선을 다해 김독자 캐릭터를 만들어내려고 했습니다.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최대한 잘 표현해내자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원작 팬덤이 큰 작품인데 대본을 토대로 생각했습니다. 

이 작품의 대본을 받아본지 2년 반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어려울 수 있는 영화 시장에서 이런 큰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크게 감사하고 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개봉을 기다렸는데 많은 분들께서 즐겁게 관람해 주셨으면 합니다.

Q.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김병우 감독과 논의한 부분이 있다면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제작사 사무실에서 거의 매일 감독님과 대화를 나눴어요. 제일 어려웠던 것은 도대체 김독자의 평범함과 보편성이라는 게 무엇인가라는 점이었어요. 이 세상에는 키가 크거나 얼굴이 뚜렷한 사람이 존재하는데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선입견일 수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배체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최대한 김독자의 과거를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성장해왔고 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가방을 앞으로 메는 것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제가 감독님께 왜 절 캐스팅하셨는지 여쭤봤더니 평범해서라고 답하시더군요. 제가 데뷔 10년차이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을 해왔잖아요. 그런데 평범하다고 하셔서 관점의 차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제가 생각하는 저와 감독님께서 생각하는 전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스치면서 그때부터 진짜 저의 김독자 캐릭터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던 것 같습니다.

▲안효섭. ⓒ더프레젠트컴퍼니

Q. '전지적 독자 시점' 영화 뿐만 아니라 세계적 인기를 얻고 있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 주역을 맡아 주목 받고 있는 소감은

저도 시기가 겹친 게 좀 신기합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이렇게까지 인기를 얻을지는 전혀 몰랐어요. 감독님이 두 분이셨는데 제 고유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주시고 부족한 부분은 따로 디렉션을 주시면서 디테일하게 맞춰 나갔던 작업이었습니다. 감독님이 '사내맞선'을 좋아하시고 제가 영어도 할 수 있어서 캐스팅하신 것 같아요. 저는 그저 진우 캐릭터가 멋있고 대본이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한 프로젝트라서 참여한 것뿐이었는데 너무 큰 사랑을 받아서 얼떨떨했습니다. '전지적 독자 시점'도 그렇고 작품이 흥미롭고 심장이 끓어서 참여한 것뿐입니다.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Q. 김독자는 소설 세계관을 알면서 미션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다층적 레이어가 필요한 캐릭터다

제가 제일 고민하던 지점이었습니다. 김독자의 시점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서 관객분들도 똑같이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글로 읽을 때는 부조리한 상황에서 영웅적으로 나서는 것을 상상하지만, 실제 상황이면 정말 그럴 수 있을까 고민하겠죠.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부분입니다. 제가 김독자처럼 나서야 할 때 목소리와 눈빛은 어떻게 해야할까? 자신감을 얻었을 때 너무 거만해진 것은 아닐까? 같은 고민 같은 변화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습니다.

Q. 원작에서는 허세도 있는 인물인데 영화에서는 너무 착하게 나오는 게 아닌가 싶은데

저도 원작을 보면서 김독자는 영악하기도 하고 때로는 기회주의자이기도 하면서 통쾌한 면도 있다고 봤어요. 저의 캐릭터 목표는 '우리 모두가 김독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즉, 모두가 공감할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었죠. 촬영 중에 감독님께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 제가 너무 주인공 같지는 않았나 혹은 영웅 같지 않았냐는 것이었어요. 특히 초반에 김독자는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Q. 이번에 그린 스크린 연기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초반에는 좀 웃겼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반성하면서 연기하게 됐어요. 관객을 설득시켜야 할 제가 현타가 오는 게 맞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그 순간부터 쭉 몰입해서 연기했습니다. 현장에서 비형 도깨비 목소리를 계속 내주신 분이 계셨는데 덕분에 몰입도가 좋았어요. 근데 그분 목소리에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더빙된 목소리가 어색하게 들리더군요. 그리고 감독님과 이 괴수는 껍질이 딱딱하다든지 물렁하다든지 세세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촬영했습니다.

▲안효섭. ⓒ더프레젠트컴퍼니

Q. 원작에서 유중혁은 김독자와 애증 관계에 있다. 영화에서는 두 인물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했나

사실 유중혁은 김독자에게 우상이고 영웅이었죠. 재밌는 점은 이민호 선배님이 유중혁 역할을 맡았잖아요. 제가 학생 때 이민호 선배님의 작품을 보면서 자랐어요. 저한테는 진짜 연예인이죠. 김독자도 유중혁을 그렇게 바라보잖아요. 그런 지점에서는 편하게 몰입할 수 있었어요.

김독자는 처음엔 유중혁을 우상처럼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너무 냉소적이고 상상했던 인물이 아니었죠. 모두를 위해 힘을 빌려주는 그런 인물이 아니라, 혼자만 독식하면서 살아남으려는 모습에 실망합니다. 그런데 또 유중혁이 하는 말이 꼭 잘못된 것만은 아니에요. 

수많은 퀘스트를 깨다 보니, 현실적으로 인간성에 대해서도 점점 깨닫게 되면서 유중혁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 오죠. 계속해서 독자한테는 혼란을 주고, 시험하는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Q. 김독자와 본인의 닮은 점이 있다면

사실 김독자를 보면서, 저랑 비슷한 부분이 굉장히 많다고 느꼈어요. 저도 학생 때, 그러니까 캐나다에 있었을 때죠. 그때 친구가 많진 않았거든요. 왕따를 당한 건 아니지만, 학교 갔다가 도서관 들렀다가 집에 와서 유튜브 보면서 제가 좋아하는 과자 먹는 게 제 인생의 낙이었어요. 그게 제 원동력이었고요. 

매일 시험 공부하고 학교 다니고, 저는 딴짓을 잘 안 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게 김독자한테는 ‘멸살법’ 같은 소설이었던 거고,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힘이었던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 김독자와 저의 공통점을 조금씩 찾아가면서, 그걸 최대한 확장시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은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을 갖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대중 앞에 나서는 걸 굉장히 어려워하고 있어요. 이런 제 성격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Q. 이 작품은 '오징어 게임'과 유사한 서바이벌 게임 요소가 있다. 차별점이 있다면

'오징어 게임'은 시즌1까지만 봐서 정확하게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비슷한 요소들이 부분부분 있다고 느껴졌어요. 차이점은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오징어 게임'은 조심스럽게 제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사회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현실을 드러내고, 그걸 표면 위로 끌어올린, 하나의 현상을 보여주는 시리즈 같았어요. 

반면, 이 영화는 그런 요소들을 통해서 결국 '인간은 과연 구원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 혹은 '같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외형적으로 비슷해 보일 수는 있어도, 이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효섭. ⓒ더프레젠트컴퍼니

Q. 스크린 데뷔작으로 이번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영화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실사화가 어떻게 될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김독자라는 캐릭터에게 너무 끌렸죠. 당시에는 드라마 촬영을 열심히 해나가면서도 제 개인적인 삶이 없을 정도로 너무 바쁘다 보니 회의감 같은 게 들던 시기였어요. 그때 김독자 캐릭터가 저와 비슷하게 느껴졌죠. 세상에 끌려다니며 아무것도 못 하는 인물이 딱해 보여서 마음이 갔어요. 제가 연기한 캐릭터는 잘나든 못나든 특색이 있었는데 김독자는 그런 게 없었어요. 아무 맛도 안 나는 김독자를 내가 어떻게 연기할 수 있을까 하는 도전 정신도 있었습니다.

Q. 스크린 데뷔가 늦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일단 신인 시절에는 오디션도 보면서 저를 먼저 알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배우로서 저라는 사람의 나무에 물을 주는 기간을 가졌던 거죠. 그러다가 아주 운 좋게 이번 작품을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건축학 개론' 조정석 선배님의 납뜩이 같은 연기를 하고 싶어도 아직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코미디 연기를 언젠가는 하고 싶어요. (웃음)

Q. 원작 팬들이 만족할 부분과 원작을 모르는 관객들이 좋아할 이 작품의 장점은

일단, 원작 팬분들도 그렇고 소중하게 여기시는 점들이 각각 다르실 것 같아요. 현재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확장하는 시기잖아요. 이런 작품을 만드는 도전 자체에도 큰 의의가 있다고 봐요. 거대한 IP 작품에 도전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주시면서 너그럽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Q. 영어 연기에 도전할 계획이 있는지

전 한국 콘텐츠를 알리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 배우 인생에서 영어 연기가 주목적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항상 작품을 선택해 왔던 기준을 계속 지켜나가려고 합니다. 어떤 결과물만 바라면서 작품을 선택할 것 같지는 않아요. 만약 제가 하고 싶은 할리우드 작품의 제의가 있다면 선택하겠습니다.

Q. 끝으로 작품을 보실 관객분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면

배우로서 10년이라는 시간에 어떻게 흘렀는지 체감이 잘 되고 있지는 않지만, 스스로에게 묵묵히 잘 걸어왔다고 토닥이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라는 나무의 기반을 잘 다져왔고 이제는 물을 뿌리고 자랄 시기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런 저의 행보를 지켜봐주세요. 실망 드리지 않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무더운 한여름에 시원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영화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극장에 오셔서 잠깐이지만, 이 세상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끼셨으면 좋겠고 스트레스를 풀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