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진의 리뷰] '84제곱미터', 악몽이 된 '내 집 마련의 꿈'
아파트 층간 소음 스릴러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결혼을 앞둔 회사원 우성(강하늘)은 퇴직금, 원룸 보증금, 대출, 심지어 어머니 마늘밭까지 담보로 탈탈 털어 마련한 84㎡ 아파트 한 채에 인생 전부를 올인한다.
그렇게 온몸을 내던져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순간도 잠시, 현실은 차갑게 그를 벼랑 끝으로 밀어낸다. 파혼을 당하면서 치솟는 대출 이자를 전부 떠안은 데다 집값은 하향을 거듭해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향한다. 급여를 상회하는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허리띠를 바싹 졸라매고 회사 탕비실을 털고 배달 아르바이트까지 뛰어본다. 하지만, 코인이 대박 나 퇴사하는 동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우성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설상가상으로 밤마다 엄청난 층간 소음으로 고통에 시달리게 된 우성. 심지어 입주민 모두가 그를 층간 소음 범인으로 몰아가기 시작하자, 억울한 누명을 벗기 위해 진범을 찾아 나선다.
우성은 수상한 아우라를 풍기는 윗집 남자 진호(서현우), 아파트 최고층 펜트하우스에 사는 입주민 대표 은화(염혜란) 등 다양한 군상을 맞닥뜨리면서 욕망이 뒤엉킨 깊고 어두운 미로에 들어선다. 그 순간부터 우성의 일상에는 커다란 균열이 생기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에 휘말려 들기 시작한다.
2023년 넷플릭스 영화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로 데뷔한 김태준 감독의 두 번째 스릴러 '84제곱미터'는 가장 한국적인 공간, 가장 현실적인 소재를 다룬다. 그 안에서 다층적 인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이는 사건과 함께 강렬한 서스펜스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 제목 ‘84제곱미터’는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 크기만을 뜻하지 않는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국민 평형 34평'이라는 단어로 정의된 한국 중산층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빚투한 영끌족 우성에게 이 84㎡의 아파트는 영화 초반까지만 해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모두에게 축복받으며 꿈을 채워나가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패티 김의 '서울의 찬가'가 끝나면서 그 공간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대신 창살 같은 커튼 그림자가 드리워진 감옥으로 변하며 우성의 일상을 철저히 파괴한다.
영화는 인생의 마지막 도박에 뛰어든 젊은 청년 우성을 통해 기형적인 한국식 자산 계급 구조의 풍경을 잔인할 정도로 날카롭게 그려낸다. 특히 정체불명의 층간 소음, 감당할 수 없는 빚, 가해자라는 억울한 누명의 삼중고를 겪는 우성은 한국 20·30세대를 대변한다. 김태준 감독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아파트라는 공간을 사회의 비극과 블랙코미디의 뇌관으로 삼아 우리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인 우성을 전면에 내세워 강렬하고도 독창적인 층간 소음 부동산 스릴러로 완성해냈다.
이리저리 치이면서 소모품으로 전락한 젊은 세대에게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그런 그들에게 인생역전의 한 줄기 빛처럼 다가오는 도박적 투자. 우성의 코인 투자 플롯은 정확히 극 중간 지점에서 미칠듯한 스릴과 극한의 서스펜스를 안겨주면서 첫 번째 클라이맥스를 완성한다. 이처럼 영화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해 몰입감 높은 극적 장치와 반전을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지루할 틈 없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극 중 등장하는 아파트와 주민들은 한국 사회를 그대로 투영한 한국의 축소판이다. 한국 최상위 계층에 대한 풍자를 보여주는 펜트하우스 거주민 은화는 자본력으로 아래층 주민들의 갈등을 찍어누른다. 그녀의 발아래 놓인 서민 우성은 신경쇠약적 히스테리의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로 전락해 철저하게 망가져 간다.
우성의 집이 죄 없는 죄인의 감옥이라면, 은화의 집은 계층 간의 차이를 명확게 드러내는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표현된다. 그 사이에 있는 진호의 집은 어둡고 무거운 공간의 메타포로 아래층의 우성을 압박한다. 불쾌함과 짜증을 유발하는 층간 소음과 뒤섞인 둔탁한 템포의 스코어 또한 극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이 작품에서 우성 역의 강하늘은 처절함과 절박함 속에서 붕괴하는 캐릭터의 광기 어린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자신만의 연기력을 증명해낸다. 김태준 감독의 말처럼 서현우, 염혜란 또한 각자의 역할을 섬뜩하리만치 완벽하게 소화해내는 '연기 흠뻑쇼'로 블랙코미디 스릴러로서의 장르적 재미를 한계치까지 끌어올린다.
이 영화에 있어 단 한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잘 짜인 서스펜스와 스릴 설계를 밀폐된 영화관 공간의 빅스크린에서 체험할 수 없다는 점일 것이다. 또한,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해외에서 얼마나 공감하고 이해해 줄 것인가가 세계적 흥행의 성패 여부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영화 '84제곱미터'는 '기생충' 이후 등장한 또 하나의 웰메이드 계층 갈등 스릴러다. 일상의 불안을 담은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에서 출발한 김태준 감독의 스릴러는 '84제곱미터'에 이르러서는 자본주의 계급 갈등으로 양극화된 한국사회의 가장 아픈 곳을 찌른다. 그의 다음 작품 역시 한층 더 진화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기대하게 한다.
제목: 84제곱미터 (Wall to Wall)
각본/감독: 김태준
출연: 강하늘, 염혜란, 서현우
제작: 영화사 미지
제공: 넷플릭스
공개: 2025년 7월 18일
평점: 8.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