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우리들의 교복시절' 진연비 "모순된 인물의 복잡한 내면 연기 고민"

2025-07-12     심우진 기자
▲'우리들의 교복시절' 진연비, 항첩여, 구이태(사진 왼쪽부터).ⓒ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에무필름즈

항첩여 "의장대 퍼포먼스 준비했지만 편집…감독판 버전 기대해"

구이태 "부모님 통해 이해하지 못했던 그 시대 맥락 하나씩 배워"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영화 '우리들의 교복시절'은 학창 시절 모두가 마주하게 되는 우정과 사랑, 갈등과 성장을 섬세하게 포착한 것과 더불어 신선하고 흥미로운 설정과 향수를 자극하는 아날로그 감성 영화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성적도, 가족도, 짝사랑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명문여고 야간반 학생 아이(진연비)가 모든 것이 완벽한 주간반 책상 짝꿍 민(항첩여)과 절친이 되면서 비밀스러운 교복 교환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청춘 성장 로맨스다. 

같은 책상을 공유하며 우정을 쌓은 아이와 민이 또래 남학생 루커(구이태)를 두고 펼치는 삼각관계 설정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SR타임스는 최근 한국을 방문한 진연비, 항첩여, 구이태 배우를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 만나 이번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이번 작품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고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구이태: 시나리오 내용을 보고 정말 감동해서 루커 역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극 중 아이와 엄마의 관계가 평소에 느끼던 가족관계와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 작품을 할 때 신인이었기 때문에 캐스팅 과정에서 감독님과 1대 1로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요. 진연비 배우와 함께 만나 대화하는 자리기 있었어요. 아마도 감독님께서 진연비 배우와 저의 케미를 직접 보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항첩여: 우선 처음 이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내용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어요. 그 이유 중 하나는, 두 여성의 성숙과 성장, 그리고 성장통을 담아낸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제가 연기한 민은 겉보기엔 자신감이 넘쳐 보이지만, 사실 내면으로 보면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존감이 낮은 인물이거든요. 그런 점이 시나리오를 더욱 흥미롭게 느끼게 했고, 캐릭터 자체의 매력도 크게 다가왔습니다. 예전에 감독님과 함께 작업한 적이 있어요. 그때는 이런 성격의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작업하면서 감독님과 소통이 잘 된다고 느꼈죠. 감독님과 스태프분들의 테스트를 통과해 캐스팅된 것 같습니다.

진연비: 처음에는 시나리오 자체만으로도 인상 깊었지만, 완성된 작품을 보면서는 또 다른 감정이 크게 밀려오더라고요. 사실, 이 캐릭터는 굉장히 모순적인 인물이기도 해요. 자기 자신을 편안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감정을 숨기거나 눌러두는 면이 있어서, 그런 복잡한 내면을 어떻게 연기로 표현할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에서 제가 특히 매력을 느꼈던 부분은 사람이 나이와 상관없이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자신을 스스로 힘들게 하는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그런 환경 속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고, 성장해나가는 이야기가 저에게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캐스팅 과정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초기 단계에서 감독님과 제작사, 그리고 저희 매니지먼트 회사 간에 많은 논의가 있었고요. 저는 감독님과 직접 만나 시나리오에 관한 얘기를 나눴고, 캐릭터에 대해서도 깊은 소통을 했습니다. 또 구이태 배우와 함께 시나리오 일부를 연기해보는 시간도 가졌고요. 그런 여러 과정을 통해 감독님과 스태프분들께서 제가 이 역할에 잘 어울린다고 판단해주셨던 것 같아요.

▲'우리들의 교복시절' 진연비.ⓒ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에무필름즈

Q. 살아보지 않았던 1997년 시절을 연기한 소감은 어땠나. 시대상이 이해가 잘 안 됐거나 그 반대인 경우가 있었다면

항첩여: 사실 제가 태어나지 않았던 시대죠. 그런 살아보지 않았던 시대의 영화나 음악을 평소에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번 작품을 하면서도, 그런 시대를 연기할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당시 시대의 특성상 연기 자체가 아주 적극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제한적인 부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런 제한 속에서 오히려 제 내면을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점이 이번 작업에서 가장 즐거웠던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구이태: 저도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본 세대가 아니므로, 이해를 좀 더 잘하기 위해 가족들과 소통을 많이 했어요. 특히 부모님이 그 시절을 실제로 겪으셨기 때문에, 그 당시의 사랑 방식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같은 것들에 대해 많이 여쭤봤던 것 같아요.

요즘처럼 통신이 편리한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예를 들어 여성에게 어떻게 플러팅을 해야 했는지, 연락이 안 될 땐 어떻게 행동했는지 같은 부분들을 부모님께 자세히 들었어요. 이해 안 됐던 것 중의 하나가 이메일 주소 'MS37'이었어요. 저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전혀 몰라서 부모님께 여쭤보니까 그게 당시에 쓰이던 MS 버전 관련 표현이고, 그런 식으로 메일 주소를 만들었다고 설명해 주셨어요. 부모님과 자주 소통하면서,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시대적 맥락이나 표현들을 하나씩 배워나갔고, 그 과정이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저한테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진연비: 우선, 제가 이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어렵지 않았던 점은 평소 제 성격이 그렇게 템포가 빠른 편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물론 요즘은 뭔가를 빨리빨리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지만, 저는 평소에도 뭔가를 열심히 하더라도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오히려 그 시대의 느린 템포가 제 성격과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그 당시에는 통신 수단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아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쉽게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내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도 지금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신중했죠. 그런 표현 방식이 저에게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감독님이나 스태프분들께서도 그 시대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그 당시 유행했던 것들이나 문화들을 알려주셨어요. 예를 들어 모뎀을 통해 컴퓨터를 연결하는 방식 같은 것들이죠. 그런 걸 통해 정말 많이 배웠어요. 

사실 이렇게 제 성향과 템포가 잘 맞는 캐릭터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 기회를 소중하게 생각했고, 언제 또 이런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제 감정을 캐릭터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우리들의 교복시절' 항첩여.ⓒ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에무필름즈

Q. 영화 속에서는 대만 여자고등학교 의장대 공연 연습 모습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대중적이지 않은 문화다. 항첩여 배우는 배역을 위해 악의대 퍼포먼스 연습을 많이 했지만, 편집됐다고 밝혔다. 혹시 나중에 그 장면이 들어간 감독 확장판을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항첩여: 대만에서 여고 의장대는 명문고에서만 운영되는 전통이 있습니다.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고신장과 학업 성적순으로 선발하죠. 연습량이 상당히 많으므로 시간 관리 능력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학업 성적도 유지해야 하므로 그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한 학생이라는 인증처럼 여겨지죠. 

의장대에 들어가더라도 처음 1년은 무대에 서지 않고 계속 연습만 해요. 정식 공연에 설 수 있는 건 1년이 지난 뒤부터죠. 그 1년은 학생들에게 인내심을 기르는 시간이고, 이전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동작들을 반복하고 익히는 과정입니다. 그 시간을 견뎌낸다는 건, 단지 기술을 습득했다는 의미를 넘어서 인내력 있는 사람이라는 상징입니다.

영화에서는 아쉽게도 제가 연습했던 부분이 편집됐어요. 그 장면을 얼마나 열심히 준비한 것이었는지 많은 분이 알아주셨으면 해요. 이런 이야기가 많이 퍼지면, 감독님도 살짝 압박감을 느끼고 그 장면이 포함된 버전을 내지 않으실까 기대해봅니다. (웃음) 그래서 주변 분들께도 많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들의 교복시절' 구이태.ⓒ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에무필름즈

Q. 고등학생들의 우정과 가족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본인들은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하다

항첩여: 저는 16살 때 처음 연기 수업을 받기 시작하면서 오디션도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16살에서 18살 사이에는 배우라는 직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돈도 열심히 모으고, 환경에 적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배우라는 일이 워낙 소득이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고, 좋은 기회를 얻기까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다 보니, 그 시기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준비 기간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르바이트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구이태: 저는 중학교 때 대만의 교육 시스템이 저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집안의 권유로 미국에 가서 고등학교에 다니게 됐어요. 그때는 농구 선수로 활동하던 시절이라, 미국에서도 농구를 하면서 학업을 병행했습니다. 아마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세 사람 중에서는 제가 배우 활동을 가장 늦게 시작한 편일 거예요.

제가 처음 연기를 하게 된 건 고3 여름방학 때였는데, 그때 대만에 잠시 돌아와 농구선수가 주인공인 영화에 출연하게 됐어요. 그 영화가 바로 '샤반창(下半場)', 한국어로는 '후반전'이라는 제목의 작품입니다. 농구라는 익숙한 소재 덕분에 자연스럽게 연기에 도전할 수 있었고, 그 작품을 계기로 배우 활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진연비: 저는 화강예술학교라고 연예인을 많이 배출한 예술 분야에서 유명한 학교에 다녔어요. 학생이 자유롭게 외부 활동을 할 수 없고, 오디션도 반드시 학교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학교죠. 그래서 저는 대학 입시보다는 연예 활동에 더 비중을 두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침묵의 숲'이라는 영화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그 작품에 캐스팅되면서 대학은 약 3개월 정도 다니다가 바로 휴학하게 됐어요. 좋은 기회였지만, 그 직후에 코로나가 터졌고, 그때는 앞으로 내가 배우로 계속 활동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많이 했죠.

▲'우리들의 교복시절' 진연비.ⓒ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에무필름즈

Q. 이 영화는 진연비 배우가 출연했던 '청춘 18X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많다. 대만 국민밴드 오월천(Mayday)의 음악이나 '슬램덩크', '스타워즈'같은 서브컬처가 등장한다

진연비: 영화 '청춘 18×2 너에게로 이어지는 길'은 일본과 대만이 함께 만든 합작영화죠.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 슬램덩크라는 소재가 등장하는 걸 보면서 정말 이보다 더 잘 맞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달까요.

저는 원래 음악도 굉장히 좋아하는데, K-팝이든 J-팝이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 듣는 편이에요. 대만에서는 오월천 밴드가 정말 유행했었고, 그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생각해요. '슬램덩크'도 마찬가지죠. 일본 만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죠. 그래서 제가 이 영화를 찍을 때, '슬램덩크'를 언급하게 되는 그 장면이 굉장히 멋지고, 정말 잘 어울리는 장치라고 느꼈습니다.

구이태: 이번 작품에서 '스타워즈'가 언급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제 기억을 떠올려 보면 스타워즈는 어릴 적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던 영화였어요. 어린 시절엔 아버지랑 같이 영화를 볼 때 제가 뭘 보고 싶다고 선택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잖아요. 그럴 때마다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던 SF 장르 중에서도 늘 '스타워즈'를 골라서 보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실제로 아버지랑 함께 본 기억도 있고요. 공통된 상징이자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항첩여: 전에 베이비 시터로도 일을 했었는데요. 그때 기억을 해보면 부모님들이 대부분 저랑 한 12살 정도 나이가 많고 애들은 저보다 한 12살 정도 어린 경우가 많았어요. 나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공통으로 모두가 알고 있던 게 오월천 밴드와 '스타워즈' 같은 소재들이었습니다. 나이 차이가 워낙 많이 나는데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안에 장치들이 얼마나 대표적인 문화적 상징인지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교복시절' 항첩여. ⓒ스튜디오 산타클로스엔터테인먼트, 에무필름즈

Q. 영화 속  세 사람은 이후 어떤 관계를 이어 나가는 어른이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구이태: 루커는 제 생각에는 계속 아이를 좋아해서 쫓아다녔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이제 원작 시나리오에 있는 그 이후의 관계에 대해서 저희한테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는데 나중에 감독님께서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어요. 

진연비: 제 생각에 아이와 루커의 관계는 자주 만나지는 않더라도 만나면 자연스럽게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친구 사이가 되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는 그 이후로 더 자유롭게 자라면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잘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학교 시절에 배웠던 것들과 삶에서 습득한 경험들을 주변과 자녀에게 따뜻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자유롭고 성숙한 어른이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항첩여: 학창 시절 우정은 정말 귀중한 것 같아요. 사회에 나와서 일을 하다 보면, 그 시절의 순수한 우정은 다시 만나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민이라는 캐릭터도 그런 우정의 가치를 깊이 느끼며 성장했을 거로 생각해요.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정을 통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민은 어른이 되어서도 주변의 편견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이뤄낼 수 있는 사람으로 자랐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