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진의 리뷰] '슈퍼맨', 가장 인간적인 슈퍼히어로의 자기 정체성 찾기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슈퍼맨'은 DC 코믹스를 대표하는 최초의 슈퍼히어로 캐릭터로 8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피터 사프란과 함께 DC 스튜디오의 새로운 수장에 오른 제임스 건 감독은 DC 유니버스 리부트의 신호탄인 이번 '슈퍼맨'에서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달라진 톤의 슈퍼맨을 그려낸다.
영화는 메타 휴먼 최강자이자 절대 무적인 슈퍼맨의 신화를 무너뜨리면서 시작한다. 북극 얼음 바닥에 처박혀 신음하는 패배자 슈퍼맨(데이비드 코런스웻)의 모습은 가련하다. 심한 상처를 입은 그는 슈퍼독 크립토의 도움으로 '고독의 요새'에 돌아가 위기를 넘기고 '보라비아의 해머'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빌런과의 싸움을 위해 다시 날아오른다.
슈퍼맨은 친부모의 뜻에 따라 인류의 수호자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무고한 생명의 희생을 막기 위해 독재국가 보라비아가 약소국 자한푸르를 침공하는 국제분쟁에 끼어들면서 큰 문제에 봉착한다. 슈퍼맨은 자신만의 신념에 따라 선의의 행동을 하지만, 대중들은 극과 극의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소셜미디어에서는 슈퍼맨을 향한 격한 비난이 쏟아진다. 정부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선 슈퍼맨과의 거리 두기에 들어간다.
복잡한 상황에 놓인 슈퍼맨은 데일리 플래닛 동료 기자이자 애인인 로이스 레인(레이첼 브로스나한)이 제안한 단독 인터뷰를 수락한다. 하지만, 인간 클락 켄트와 슈퍼맨 칼 엘 사이를 오가는 인터뷰에서 연인 로이스조차 자신의 신념에 대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격한 반응을 보인다.
한편, 메트로폴리스 최대 기업인 루터코프 소유주 렉스 루터(니콜라스 홀트)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슈퍼맨을 궁지에 몰아넣으면서 전 세계를 큰 위험에 빠뜨린다.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맨'은 단순히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가 아닌, 고뇌와 괴로움을 겪는 가장 인간적인 슈퍼맨의 모습을 다루면서, 지구인과 외계인 사이 경계선에 있었던 그의 정체성을 완성해 나가는 영화다.
영원한 아치 에너미 렉스 루터의 시기와 질투에서 비롯된 놀라운 습격은 슈퍼맨에게 치명타를 안기며 큰 성공을 거둔다. 그가 먼 옛날 지구로 보내진 진짜 의도가 밝혀지는 순간, 인류의 수호자로서 슈퍼맨이 행해온 선의와 정의 그리고 희생은 모두 왜곡되고 파괴된다.
그 결과, 슈퍼맨은 벗어날 수 없는 절망의 나락에 빠진다. 그가 입은 가장 깊고 쓰라린 상처는 육체적 고통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온몸으로 지켜왔던 인류가 그를 외면하는 순간에서 비롯된다.
슈퍼맨은 구세주에서 최악의 악당으로 전복되고, 그의 모든 것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로이스의 변함없는 사랑,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를 믿어주는 인류였다. 슈퍼맨이 지구의 시골 마을 스몰빌에서 자란 조나단 켄트·마사 켄트 부부의 아들인 지구인 클라크 켄트로 살 것인가, 아니면 크립톤 행성에서 온 외계인 칼엘로 남을 것인가가 이번 리부트 작품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이번 작품에서는 역대 '슈퍼맨' 시리즈와 비교해 가장 능동적인 활약을 선보이는 로이스 캐릭터가 돋보인다. 렉스 루터라는 비뚤어진 마음을 가진 적과 고독한 싸움을 벌이는 슈퍼맨을 위해 진실과 정의를 밝혀나가는 그녀의 여정과 슈퍼맨 성장 이야기 간의 케미스트리는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흥미로운 지점은 또 있다. '슈퍼맨' 시리즈를 오마주했던 '드래곤볼'이 리부트된 새로운 '슈퍼맨' 이야기에 역으로 영향을 준 느낌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한편, 이번 작품은 데이비드 코런스웻이 새롭게 선보이는 슈퍼맨과 니콜라스 홀트가 연기한 렉스 루터의 빌런 설정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지가 흥행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데이비드 코런스웻은 헨리 카빌과 크리스토퍼 리브가 구축해온 슈퍼맨 이미지를 뛰어넘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관객들을 만난다.
극 중 렉스 루터는 슈퍼맨이 인류에게 진정 필요한 존재인 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대중의 눈에 슈퍼맨은 정의로운 영웅이지만, 렉스 루터의 관점에서는 언제든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살아 있는 핵폭탄이다. 니콜라스 홀트는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슈퍼맨에 대한 동경, 질투와 분노의 표출 그리고 비열한 권모술수를 그만의 톤으로 그려나간다. 다만, DC 유니버스에서 가장 사랑받는 악당 조커와 같은 강렬한 카리스마를 기대하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 있다.
제임스 건의 '슈퍼맨'은 또한 역대 최고의 슈퍼맨으로 평가받는 리처드 도너 감독의 1978년 '슈퍼맨'과의 비교를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존 윌리엄스의 스코어, 인간과 초인의 로맨스 그리고 신화적 영웅의 성장과 고뇌를 담은 품격있는 서사로 현재까지 우리가 사랑하는 슈퍼맨의 모습을 완성해낸 반세기 전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에는 '저스티스 갱' 팀인 가이 가드너(나단 필리온), 미스터 테리픽(에디 가테지), 호크걸(이사벨라 메르세드)를 비롯해 빌런 엔지니어(마리아 가브리엘라 데 파리아), 렉스 루터의 부담스러운 비서 이브 테스마커(사라 삼파이우), 양날의 검 같은 존재 메타몰포(앤서니 캐리건), 슈퍼맨 로봇 포 그리고 카메오 출연 캐릭터 등 다채로운 신규 캐릭터가 등장한다.
하지만 약한 영웅 슈퍼맨 이야기에 새롭게 참여하는 이 캐릭터들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만큼의 개성 있고, 코믹한 순간들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나마 미스터 테리픽이 개그 캐릭터로 나선다. 가장 시선을 잡아끄는 것은 슈퍼독 크립토 정도다.
제임스 건 감독은 신에 가까운 우월한 존재인 슈퍼맨이 왜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종을 위해 자신을 낮추고 살아가는지에 대해 탐구해 나간다. 그는 슈퍼맨의 내면에 자리한 깊은 인류애의 근원을 좇으며, 이 캐릭터를 단순히 슈퍼히어로보다는 강건한 도덕적 주체로 그려낸다.
영화 속 인간 사회는 렉스 루터가 벌이는 왜곡과 조작의 정치 레토릭에 휘둘리고, 그루밍 당하며 큰 혼란에 빠진다. 하지만, 슈퍼맨은 붕괴하는 현실 속에서 마지막까지 인간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신의 권능을 지닌 지배자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들과 함께 살아가는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다.
다만, 이러한 메시지는 때때로 과도하게 직설적인 연출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함에도 인간의 길을 선택한 슈퍼맨을 단순한 물리적 구원자 위치에 놓기보다는, 인간 존엄의 수호자로서 그려내는 제임스 건 감독의 유려한 서사 연출방식은 높이 평가할 부분이다.
제목: 슈퍼맨(Superman)
감독/각본: 제임스 건
출연: 데이비드 코런스웻, 레이첼 브로스나한, 니콜라스 홀트 외
수입/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러닝타임: 129분
관람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5년 7월 9일
평점: 7.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