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징어 게임3' 황동혁 감독 "우리 사회 많이 각박하고 힘들다 생각"
"캐릭터에 대한 시청자의 실망감과 배신감 충분히 공감"
"지금은 희생과 양보가 필요한 시대라는 메시지 전하고 싶었다"
"미국판 제작은 루머, 연락 못 받아…데이비드 핀처가 만든다면 응원"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전 세계에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넷플릭스 최고 인기 시리즈로 자리 잡은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은 '오징어 게임' 시리즈로 아시아인 최초로 제74회 프라임타임 에미 시상식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가 만든 장대한 서사가 '오징어 게임' 시즌3를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시즌3는 지난달 27일 공개 후 넷플릭스 시리즈 시청 순위 1위를 차지하면서 동시기 영화 부문 1위에 오른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함께 한국문화의 위상을 전 세계에게 알리고 있다.
시즌3에서는 주인공 기훈이 어떻게 인간의 가치와 인간성에 대한 양심을 증명해 내는가의 여정을 담아냈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원작자이자 연출을 맡은 황동혁 감독을 만나 이번 시즌3의 주요 내용이 포함된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오징어 게임' 시즌3까지 시리즈를 마무리한 소감은
시즌1을 다시 꺼내 쓰기 시작한 게 벌써 6년 전이더라고요. 지금까지 거의 6년을 '오징어 게임' 안에서 산 것처럼 지냈던 것 같습니다. 하루도 이 작품을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였고, 제 인생에서 가장 길고 중요한 시간을 함께한 작품이라 이제 보내려니 여러 감정이 교차합니다. 섭섭한 마음도 있고요. 또 이렇게 큰 관심과 사랑을 다시 받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에 약간 두렵기도 하고, 허전한 마음도 들고요.
사실 시즌3는 기대와 응원의 에너지에서 출발했지만, 그만큼 큰 부담을 안고 만든 작품이라 지금 그 짐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한편으론 후련하고 시원한 마음도 있습니다.
Q. 시나리오 작업과 함께 시즌별 비교를 해본다면
사실 처음 쓴 건 2009년이었어요. 한 7개월 정도 작업을 하다가 반응이 별로 안 좋아서 그냥 컴퓨터에 넣어두고 한동안 아무것도 안 했죠. 그러다가 2019년에 다시 꺼냈죠. 그래서 실제로 작업한 기간만 따지고 보면 시즌 2나 3보다 훨씬 길다고 하긴 어렵죠.
시즌1 전체를 쓰는 데 걸린 시간도 한 13개월쯤이었고, 그중 실제 집필은 6개월 정도였어요.
시즌2, 3는 본격적인 준비 들어가기 전에 대본을 한 7개월 정도 썼는데, 촬영하면서도 계속 고쳤습니다. 시즌1 때는 완성된 대본을 갖고 들어갔지만, 시즌2, 3은 촬영하면서 아이디어가 쉴 틈 없이 떠올라 계속 수정했거든요. 체감상으론 시즌1보다 2, 3 두 시즌을 만드는 과정이 훨씬 힘들었어요.
무엇보다도 캐릭터의 변화 때문에 전혀 다른 톤 앤 매너를 가진 작품이 된 것 같아요. 각자의 색깔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서,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다는 다르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Q. 인기 캐릭터들이 시즌3 후반에 활약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시청자 의견도 있다
원래는 2와 3, 두 시즌이 하나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시즌3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초반에 탈락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사실 시즌2에서부터 이어지는 흐름으로 따지면 네 번째나 다섯 번째 게임에서 탈락하는 거예요. 하지만, 시즌3만 딱 놓고 봤을 때는 초반에 퇴장하는 느낌일 수 있죠.
팬분들의 실망감도 이해해요. 시즌2를 통해 어떤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이 쌓였는데, 시즌3에서 예상보다 빠르게, 특히 첫 번째 게임에서 많은 인물이 탈락하니까 약간 배신감 같은 걸 느끼셨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 마음은 충분히 공감합니다.
Q. 두 시즌을 한 번에 공개하는 방식도 가능했을 텐데
지금 내놓으면 사실 한 시즌을 4년 만인데 그런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너무 텀이 길어지는 거죠. 그리고 요즘 트렌드는 긴 시리즈보다는 짧은 콘텐츠를 선호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어요. 점점 숏폼 중심으로 바뀌고 있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호흡 자체가 짧아지다 보니 13개를 한꺼번에 공개한다는 건 저나 넷플릭스 입장에서도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배우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어요. 한 번에 공개됐다면 캐릭터들의 서사가 한 호흡에 따라와 주면서 더 잘 전달되고, 죽음과 사건이 더 설득력 있게 와닿았을 겁니다. 중간에 6개월이라는 텀이 생기다 보니 아무래도 그 흐름이 끊긴 측면이 있죠. 그래서 시청자분들께는 한 번 시즌2부터 다시 정주행해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Q. 게임 참가자 대기실에 적혀 있는 라틴어 문구의 의미는
'호디에 미히, 크라스 티비(Hodie Mihi, Cras Tibi)'라는 라틴어입니다. 로마 시대 묘지에 쓰여 있던 문구로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내가 이 관 속에, 이 묘지에 묻히지만 내일은 그 자리가 너일 수도 있으니, 삶을 더 소중히 하라는 의미로 저는 이해했어요.
시즌1에서는 벽에 게임의 규칙들이 그려져 있었잖아요. 이번 시즌에서는 벽에 무엇을 담아볼까 고민하다가, 결국 시즌2와 3의 이야기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세계 안에서 벌어지는 약자들의 이야기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세상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불안정해질수록, 가장 먼저 피해를 당하고, 가장 먼저 고통을 겪고, 가장 먼저 게임에서 탈락하는 건 언제나 약자들이잖아요.
그래서 마지막에 고공 오징어 게임을 가장 약한 사람을 한 명씩 탈락시키는 구조로 만든 것도 이 세상을 묘사하고 싶어서였어요. 오늘은 누군가가 탈락하지만, 내일은 그게 나일 수도 있잖아요. 다른 약자들이 사라지고 나면, 결국 나도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거죠.
제가 이 문구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결국 우리가 뭔가 같이 연대해서 이 세상을 나아지게 할 어떤 방법이나 안전장치를 보완하지 않으면 우리는 언제든지 가장 약자가 돼서 이 게임에서 탈락해 묘지에 묻힐 수 있다는 것입니다.
Q. 기훈(이정재)과 프론트맨(이병헌)을 인간성에 대한 가치관 차이만 있을 뿐이고 철학적으로는 위버멘쉬적 캐릭터 아크를 가져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나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고 시작한 건 아니고요. 가끔 주객이 전도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처음 구상할 때부터 오징어 게임은 무엇보다 재미를 드리기 위해 만든 거였습니다. 제가 원래 이런 게임물, 서바이벌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내가 만든다면 어떤 게임물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런 설정을 떠올리게 된 거예요. 거기에 사회적인 메시지도 스며들게 되었고요.
그런데 이 작품이 워낙 사회적 이슈나 토론의 소재로 주목을 받다 보니까 오히려 메시지에 대한 기대가 더 커진 느낌도 있어요. 저는 가장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성기훈과 프론트맨에 대해서는 '스타워즈' 제다이를 많이 생각했어요. 마치 다스베이더처럼, 똑같은 수련을 받고 똑같은 일들을 겪었지만, 어느 한순간 자신에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믿음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것이죠. 프론트맨은 전직 경찰이었잖아요. 가장 정의로운 역할을 수행하던 사람이었을 텐데,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한 번의 실수로 인해 평생 정직하게 살아온 삶을 잃게 되죠. 그 일로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결국 어둠의 길로 들어선 인물이에요.
반면, 기훈은 어떻게 보면 '최종 테스트'를 이겨낸 사람입니다. 프론트맨이 마지막에 그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지켜주고, 기훈의 딸에게도 유품을 전달하는 건 기훈에 대한 이지러진 방식의 리스펙트였다고 생각해요.
Q. 사람들을 살리겠다던 기훈의 목적과는 다른 아이러니한 결과가 펼쳐진다
기훈에게 원죄 같은 것을 주고 싶었어요. 자신의 죄책감을 대호(강하늘)에게 전부 투사시켜서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기 의지로 누군가를 죽이게 됨으로써 생기는 어떤 씻을 수 없는 원죄. 그 원죄를 가진 인물이 우리에게 유일하게 남은 아이라는 희망을 지키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용기로 나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죄를 대신해 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Q. 고통받는 성자(聖者) 같은 기훈은 인간성을 지키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많은 시청자는 바보 같은 기훈의 행동보다는 살기 위해 인간성을 버리고 이기적 행동을 하는 악인들이 더 현명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마치 일종의 사회실험을 보는 것 같았는데
저도 조금 놀란 부분입니다. 기훈의 행동에 대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답답해하시더군요.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느냐, 차라리 이러는 게 낫지 않냐는 반응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많이 각박해졌고 사는 게 힘들어졌다고 생각했죠.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어느 정도 삶의 여유가 있어야 누군가를 도울 생각도 하고 관용도 생기잖아요. 하지만, 매년 연말 뉴스를 보면 기부액이 미달이라고 하죠. 가게들은 공실이고, 2030 청년들의 좋은 일자리는 다 사라져 가는 불황의 세상이잖아요. 입시를 시작으로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어려워지고 있죠.
이렇게 힘든 세상에서, 누군가를 위해 바보처럼 산다는 건 마음으로는 그렇게 살고 싶지만, 현실적으로는 잘 와닿지 않죠. 오히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에 자신을 투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실제 반응들을 보면서, 현실을 더 정확히 보여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좀 무거워졌어요. 왜 그런 반응이 나오는지 돌이켜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Q. 마지막 고공 오징어 게임 참가자 중 누가 제일 악인이라고 생각하나
게임을 진행할수록 가장 어둡고, 희망이 없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어요. 인간 본성 중에서도 가장 추악한 면들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에 악한 사람들로 구성했죠.
100억 빚이 있는 100억남 임정대(송영창)가 가장 악하게 보일 수도 있는데, 저는 현실적으로는 명기(임시완)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명기는 처음부터 완전히 나쁜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좀 더 좋은 선택을 했다면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인데, 그 순간순간 갈림길에서 결국 욕심을 이기지 못하죠.
계속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하면서 점점 더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인물이에요. 심지어 마지막에는 자신의 아이를 죽일 생각까지 하죠. '내 아이가 아니야'라는 인지 부조화로 인한 부정까지 합니다. 경쟁 사회에서 계속 살다 보면 진짜 극단적인 상황에서 명기와 같은 심리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명기가 제일 나쁜 사람이죠.
임시완 배우는 참 되게 맑은 얼굴이잖아요. '미생'에서는 사회초년생의 순수함이 있었고, 때로는 소년미가 넘치기도 하고 '비상선언'에서는 끝 모를 악함과 사이코패스 같은 느낌도 있었어요. 두 가지 극단적인 모습이 다 있다고 생각해요. 조금씩 망가지고 꼬여가는 명기의 두 가지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있고, 거기에 안타까움과 충격적인 모습까지 함께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라고 판단해서 캐스팅했어요. 명기는 육체적으로 강해 보이지는 않지만, 머리로 계산하는 게 앞서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Q. 금자(강애심), 용식(양동근) 모자 사이의 사건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제 의도는 연약한 여자와 아이를 죽이려는 아들의 살인을 막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배우와도 그렇게 이야기를 나눴고요. 금자가 용식의 급소를 찔러 죽이는 것이 아니라, 준희(조유리)와 아이를 찌르려는 칼 든 손을 막기 위해 오른쪽 어깨를 찌르는 것이었죠.
결과적으로는 금자의 선택이 용식의 죽음으로 이어지긴 하지만, 엄마가 눈앞에서 끔찍한 일을 벌이려는 아들을 본능적으로 막아섰다는 의미로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노을(박규영)은 이 작품 속에서 어떤 쓰임의 인물인가
노을은 시즌2에서는 병정들의 세계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구상하게 된 인물이었습니다. 준호가 잠입해서 병정들의 세계를 보여줬던 것처럼, 병정들은 어디에서 살고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이름은 그냥 재미삼아 1편 새벽의 반대 의미로 지어봤습니다. 새벽은 희망을 상징하는 인물이죠.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가족을 지키고, 더 나은 삶을 꿈꾸는 캐릭터였어요. 반면에 노을은 희망을 점점 잃어가는 인물입니다. 극 중에서도 자살 시도를 하고, 삶을 포기하려 했던 인물이죠. 그런데 그런 사람이 기훈의 희생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하면서 다시 삶에 대한 의지를 갖고 살아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를 찾으러 가겠다고 말하죠.
그건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모두 그런 한 걸음을 내디딘다면, 세상이 조금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고 싶어서 만든 인물입니다.
Q. 계속 오징어 게임 섬을 찾아 맴돌던 준호(위하준)는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게 좀 사연이 있는데, 원래는 처음 구상할 때는 해피엔딩을 생각했던 적이 있었어요. 밖에서 수색하던 황준호와 팀이 마지막 순간에 게임장에 도착해서, 성기훈과 합세해 무찌른다는 거죠. 그랬는데 나중에 기훈이 안에서 희생하는 이야기로 방향을 바꾸면서 황준호 팀 서사가 갈 곳을 잃게 됐죠. (웃음) 그렇다고 완전히 빼는 건 싫었고, 어떻게든 도착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형과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게 하고 싶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결말 중 하나는 프론트맨 인호(이병헌)가 아이를 준호에게 맡기는 거잖아요. 그 결말을 위해서, 이 게임의 모든 걸 보고 이해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본 인물이 준호였으면 했어요. 그래야 아이의 의미도, 형의 의도도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Q. 엔딩을 바꾸게 된 이유는
처음에는 막연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시 집필을 시작하면서, 문득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게 뭘까? 우리가 힘을 합치면 세상을 뒤엎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가?"라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하게 됐죠.
세상을 돌아보니까,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잖아요. 코로나 이후로 먹고살기 더 힘들어지고, 전쟁의 위기는 점점 커지고, 불평등은 심화되고…그렇다면, 성기훈의 여정을 끝낸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지 어떤 결말이 옳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결국, 이 세상은 더 이상 혁명이나 쿠데타 같은 것으로 바뀔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렸어요. 기훈의 혁명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발전과 성장의 욕망만을 향해 나아가는 이 세상은 결국 우리를 파멸로 몰고 갈 거라는 거죠. 기후 위기든, 세계 전쟁이든 간에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성세대, 가진 사람들, 더 강한 나라들이 양보하고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온 거죠.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지금은 '희생과 양보가 필요한 시대'라는 메시지를 꼭 전하고 싶었어요. 평범한 인물인 기훈이 게임을 거치면서 어떤 깨달음에 이르고, 결국 다음 세대를 위해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희생하는 결말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결말이 이 이야기와 가장 어울리는 선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Q. VIP 배우들의 연기가 아쉽다는 반응이 있다
이 부분은 딜레마가 좀 있어요. 얼굴을 전부 가리고 나오는 역할이다 보니까, 사실 너무 유명하거나 출연료가 높은 배우를 캐스팅하기도 어려워요. 그리고 배우 입장에서도 선뜻 하고 싶지는 않은 역할이죠. 현실적인 선에서 타협을 해야했고, 외국 배우를 캐스팅해야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저도 원어민이 아니다 보니까 영어 대사를 쓰고 그걸 토대로 작업할 때 한계가 있었고요. 시즌1보다는 나아졌다고 개인적으로는 평가하지만, 미국이나 영어권에서 보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Q. 다수결 민주주의의 문제점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민주주의 안에서 다수결 외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잖아요. 1인 1표, 모두가 한 표를 가진다는 시스템이 정착된 이후에는 다수결이 우리가 합의한 가장 민주적인 절차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히틀러의 나치당은 선거를 통해, 다수당이 되면서 집권했잖아요. 그런 역사처럼, 지금의 세상도 점점 사람들이 힘들어지고 각박해지면서 위기에 몰리는데, 가짜 뉴스나 AI까지 판치는 시대에는 아주 쉽게 선동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수결 민주주의에도 언제든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문제의식을 담아보려고 했습니다.
Q. '오징어 게임' 미국판 촬영 이야기가 나왔다. 원작자로서 협의가 있었나
제가 알기로는 루머입니다. 일단, 미국판 버전에 대해서 공식적으로 저한테 전달된 것은 없고요. 있었으면 아마 제게 얘기를 했겠죠. 할리우드에서 나온 소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12월에 촬영 들어간다는 얘기까지 나온 것 같습니다. 만약에 저에게 얘기 안 하고 12월에 진짜 촬영 들어가면 황당할 것 같아요. 진짜 넷플릭스에 전화해서 "이래도 되는 겁니까?"라고 할 것 같습니다. (웃음)
근데 데이비드 핀처 감독을 워낙 제가 좋아해요. 사실 '세븐' 때부터 팬이라 진짜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이 미국판을 만든다면 저는 응원할 겁니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오면 바로 보겠습니다. 그리고 뭔가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도와드릴 생각입니다.
Q. 마지막에 케이트 블란쳇이 등장한다. 앞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출연설도 있었다
처음 구상은 기훈이 딸을 만나러 미국에 가는 결말이었어요. 막연하게 해피엔딩을 떠올렸을 때는 그런 그림이었죠. 심지어는 시즌4, 5까지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기훈의 죽음으로 마무리 짓는 쪽으로 정리했는데, 미국에 프론트맨 인호가 대신 가서 유품을 전달하는 것으로 바꿨죠. 그러면서 여기서 이야기를 끝낼까 했는데 게임이 그렇게 쉽게 끝나지는 않으며, 시스템은 견고하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본주의의 단단함, 쉽게 무너지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려고 미국에서 여전히 게임은 진행 중이라는 엔딩을 넣게 됐습니다. 한국에서는 공유 씨가 그 역할을 했는데, 미국판에서는 굉장히 카리스마 있는 여배우가 맡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실제로는 잠깐 등장하고, 대사도 한두 마디밖에 없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누굴까 고민했고 케이트 블란쳇으로 결정했죠. 저뿐만 아니라 프로듀서들도 모두 동의해서 진행하게 됐습니다. 나중에 케이트 블란쳇을 미국에서 만났을 때 그녀의 아이들이 오징어 게임 팬이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본인이 나오는 건 아이들에게도 비밀로 하기로 하고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디카프리오는 그냥 팬이었던 거죠. 너무 디카프리오만 이야기하셔서 케이트 블란쳇은 약간 섭섭했을 겁니다. (웃음)
Q. 속편에 관한 생각도 있는지 그리고 구상 중인 다른 작품이 있다면
기훈의 퇴장과 함께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다 했습니다. 더 시간이 흐르고, 제가 이 세상의 또 다른 면을 새롭게 보고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또 다른 이야기가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이야기나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어요.
만약 이후에 무언가를 만든다면, 시즌의 연장이 아니라 스핀오프처럼 이를테면 가면 쓴 사람들은 실제 생활에선 어떤 인물들이었을까 같은 가벼운 이야기일 수도 있겠죠. 큰 메시지보다는 호기심이나 팬심으로 만들어볼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한 생각은 해봤습니다.
한 3~4년 전에 구상했던 이야기가 있는데, 요즘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다 보니까 다 달라졌더라고요. 근미래를 상상하며 썼던 건데, 특히 AI가 등장하고 나서는 정말 미래를 예측하기가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아요. 많은 수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 당장 언제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극장 영화를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원래 영화 쪽에서 작업을 했던 사람이니까 다시 극장 영화로 돌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극장 상황이 너무 안 좋잖아요. 올해 상반기 스코어를 보면 정말 처참하다고 할 정도로 안타까운 상황이라 과연 자신 있게 극장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누군가의 투자를 받아서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개봉까지 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기더라고요. 그 이야기는 원래 극장 영화로 생각했던 거라 많이 고민 중입니다.
Q. 끝으로 작품 속 인물과 시청자분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기훈아! (웃음) 성기훈 씨,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제가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기훈 씨를 고생의 구덩이에 몰아넣고, 어쩌면 고문을 한 것처럼 사랑과 미움을 다 겪게 만든 것 같아요.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떠나보내게 되었죠. 그래도 기훈 씨의 희생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서 생각할 거리를 남겼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바보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인물이지만,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한 번쯤은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그 희생은 헛되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시청자분들께도 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 작품을 보면서 느낀 생각들, 고민을 주변 사람들과 나눠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자꾸 뭔가를 같이 나누기보다는 갈라치려는 시대잖아요. 이 작품을 어떻게 보셨는지 각자의 시선으로 이야기 나누시고, 상대방의 의견도 들어보는 기회가 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