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진의 리뷰] '엘리오', 픽사 매직이 반짝이는 성장 영화의 마스터피스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1977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인류의 언어와 음악, 인사말 등을 고스란히 담은 '골든 레코드(Golden Record)'를 보이저 탐사선에 실어 끝없는 우주의 바다로 내보냈다.
이 프로젝트를 이끈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우리는 혼자인가?"라는 근원적인 궁금증이 담긴 이 레코드가 우주 어딘가에 있을 미지의 존재에게 닿기를 바랐다. 그리고 우리가 외롭지 않다는 대답이 되돌아오길 간절히 원했다. 만약, 그가 바란 대로 정말 인류에게 응답하는 우호적인 외계인 집단이 있다면 어떨까? 골든 레코드에 담긴 인류의 외로움과 조응하는 한 아이의 간절한 감정이 우주로 쏘아 올려진다. 그리고 그 연결은 상상조차 못 한 놀라운 우정을 낳는다. 디즈니·픽사의 영화 '엘리오'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가 감정의 복잡성과 성장의 통증을 정서적으로 풀어냈다면 '엘리오'는 우리가 말없이 품어온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을 우주라는 신비로운 공간을 통해 확장한다.
부모를 잃고 친구 한 명 없이 지내는 11살의 외로운 소년 엘리오는 고모 올가와 함께 살지만, 깊은 상실감에 파묻혀 마음을 닫고 있다. 혼자만의 언어를 사용할 정도로 정서적으로 고립된 그의 유일한 희망은 외계로의 탈출이다. 생명체가 있을지 모를 5억개의 행성 중 어딘가에는 반드시 외톨이인 자신을 원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완벽한 마음의 도피처가 되어준다.
하지만, 우주비행사의 꿈도 포기한 채 조카를 위해 인생의 궤도를 바꾼 올가의 가슴에는 엘리오의 철없은 말이 커다란 상처가 되어 가슴에 대못처럼 박힌다. 그러함에도 모자 사이와 다를 바 없는 엘리오를 향한 올가의 내리사랑이 이어지며 가슴 아픈 공감의 감정선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올가에게 짐이 될까 두려워하는 엘리오는 외계 생명체에게 납치되기를 꿈꾸며 우주로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마침내 소원을 이룬 엘리오는 우주인들의 지식과 혁신을 공유하는 범은하조직 커뮤니버스에 소환된다.
그는 우주에서 자신과 마찬가지로 폭군 아버지 그라이곤의 뜻을 따르지 못하는 두려움과 외로움을 간직한 글로든을 만나 진정한 친구가 된다. 엘리오와 글로든의 우정은 영화 속 또 하나의 중요한 감정선을 만들어나간다.
엘리오를 중심으로 올가, 글로든, 그라이곤 그리고 커뮤니버스 멤버들까지 모두가 서로의 외로움을 이해하고 손을 내밀며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간다. 외로움과 두려움을 보듬고, 결핍을 채우며 낯선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가 되어준다. 그렇게 픽사는 칼 세이건의 물음에 대해 명확하고 따뜻한 메시지로 우리는 우주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모두가 기다려온 따뜻한 응답을 들려준다.
이처럼 '엘리오'는 외계와의 조우 속에서 캐릭터 내면의 감정을 되 비추는 픽사 특유의 방식으로,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주제를 세대와 문화를 넘어 감동적으로 풀어낸다. 도미 시, 매들린 샤라피안, 아드리안 몰리나 3명의 공동 감독은 실제 경험을 반영한 섬세한 감성, 유쾌한 상상력 그리고 감동과 공감을 자아내는 감정 설계로 픽사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명작을 탄생시켰다.
이 작품에는 '콘택트', '에이리언', '미지와의 조우', '더 씽', '터미네이터' 등의 작품을 레퍼런스로 한 오마주가 가득하다. 이러한 SF 영화를 향한 러브레터는 '엘리오'의 이야기를 더욱 기발하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펼쳐내는데 큰 도움을 준다.
영화의 OST는 웅장한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우주 감성을 담은 몽환적인 일렉트로닉 뮤직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음악적 질감은 인물들의 감정 공유를 더욱 촉진하고, 스펙터클한 롤러코스터 시퀀스들을 한층 신비롭고 멋지게 만들어준다.
수중 생물 그리고 곰벌레 같은 미시 생명체에서 영감을 얻은 외계인 디자인은 이질적이거나 공포감을 줄 것이라는 예상을 빗나간다. '엘리멘탈'이 그랬듯이 픽사 매직은 이번에도 캐릭터 디자인에서 예상치 못한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커뮤니버스의 아름다운 디자인 또한 시각적 쾌감을 중시하는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디즈니·픽사 특유의 감성과 비주얼, 다층적인 캐릭터와 정서적인 주제의식이 어우러진 '엘리오'는 세대를 불문하고 감정의 깊이에 따라 관객들에게 각기 다른 울림을 전달한다. 또한,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외로움에 관한 감정 탐구를 통해 커다란 감동을 전한다.
성장 영화의 마스터피스인 이 작품은 누군가에게는 외계로 떠나는 상상 가득한 모험극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감정에 관한 고백을 다루는 힐링 드라마가 될 것이다.
제목: 엘리오(Elio)
제작: 디즈니·픽사
수입/배급: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감독: 매들린 샤라피안, 도미 시, 아드리안 몰리나
목소리 출연: 요나스 키브레브, 조 샐다나 외
개봉: 2025년 6월 18일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러닝타임: 98분
평점: 8.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