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진의 리뷰]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사랑은 노래처럼 되살아난다

2025-05-20     심우진 기자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풍경소리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미키 타카히로 감독은 아사노 이니오 작가의 섬세한 감정을 잘 살려 영상화한 데뷔작 '소라닌'을 시작으로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사랑하고 사랑받고 차고 차이고' 등 흥행작을 연이어 내놓으며 청춘 감성 로맨스의 장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2022년 개봉한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한국에서 121만 관객을 동원하며 '러브레터'에 이어 역대 일본 실사 영화 흥행 2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이번 작품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영화 '러브 앳'의 리메이크작으로, 평행세계라는 판타지적 설정 위에 정통 멜로 드라마를 녹여낸 미키 타카히로 감독 특유의 감수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가 다루는 로맨스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시간과 기억, 선택의 무게와 같은 철학적인 주제를 청춘물의 감성으로 녹여낸다는 점에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잡아왔다. 

이번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 추억과 망각, 사랑과 상실이라는 대비적 개념들이 서로 엇갈리며 만들어내는 정서적 파동을 통해 관객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풍경소리

영화의 중심에는 판타지 소설 작가를 꿈꾸는 리쿠와 포크록 싱어송라이터를 지망하는 미나미가 있다. 어느날 리쿠는 학교 대강당에서 몰래 노래를 부르고 있던 미나미의 모습을 목격한다. 그 순간부터 리쿠는 미나미의 첫 번째 팬이 되고, 미나미 역시 리쿠의 판타지 소설 '청룡전기' 첫 번째 독자가 된다.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서로의 세계에 스며든 두 사람은 꿈과 열정을 함께 끌어안고 사랑을 나누며 깊은 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리쿠가 작가로서의 길을 천천히 다져갈 동안, 미나미는  음악에 대한 꿈을 접고 그의 곁에서 조용히 응원을 택한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풍경소리

8년 후, 리쿠는 '청룡전기'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탈고를 앞둔 어느 날, 낯선 세계에서 눈을 뜨고 만다. 그 세계에서의 미나미는 리쿠를 전혀 기억하지 못한 채, 인기 가수로서 화려한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비현실적인 상황은 리쿠를 혼란에 빠뜨리지만, 미나미에 대한 진심어린 감정을 다시 꺼내 들고 그녀에게 다시 다가서려 노력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재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기억이 없다는 설정은 사랑의 본질이 과연 기억에 의존하는가에 대한 질문도 함께 던진다.

리쿠가 미나미의 마음을 되돌리려는 여정에는 자기반성과 성찰의 과정이 동반된다. 이 작품은 판타지 로맨스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사랑을 통해 인간이 성장해가는 보편적 서사를 지향한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풍경소리

미나미 역을 맡은 싱어송라이터 미레이는 첫 연기 도전임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착용한 순수한 대학생 시절과 스타일리시한 스타 가수로의 극명한 이미지 전환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냈다. 특히 눈빛과 말투, 노래를 부를 때의 표정까지 섬세하게 다르게 표현하며 1인 2역 같은 입체적인 연기를 펼친다. 

'청년경찰'의 리메이크 드라마 '미만경찰 미드나잇 러너'에서 주연을 맡았던 아이돌 출신 배우 나카지마 켄토는 복잡한 상황에 놓인 리쿠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주연으로서 극의 안정적인 중심축이 되어준다. 이러한 둘의 케미스트리는 풋풋하고 발랄한 로맨스로만 소비되지 않고, 서로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두 인물의 간극을 감정으로 연결해내며 깊이를 더하는 관전 포인트가 되어준다. 

영화는 다양한 관계의 변주를 통해 사랑의 여러 얼굴을 그려내기도 한다. 학창시절 풋풋한 캠퍼스 커플, 권태기에 놓인 부부 그리고 기억이 지워진 평행세계의 스타 가수와 기억을 또렷하게 간직한 무명 에디터라는 각기 다른 관계가 설정된다. 그 변화 과정에서 사랑이 어떤 형태로 변화해 가는지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러한 서사는 아름다운 미장센과 촬영을 통해 더욱 풍성해진다. 따뜻한 파스텔 톤의 색보정, 화보처럼 정돈된 구도, 자연광과 조명의 활용 등은 영화 전반에 감성을 입히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를 통해 미키 감독은 이들의 로맨스를 단지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느끼게 하는 연출로 승화시킨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풍경소리

첫 만남의 설렘, 익숙해져 빛바랜 사랑의 안타까움, 뒤늦은 후회, 로맨틱 코미디 요소 등이 기승전결의 각 지점에서 확실하게 웃음과 눈물의 감정 버튼으로 작동한다.

특히 미키 감독의 전작인 '소라닌'에서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키리타니 켄타는 이 작품에서 리쿠와 미나미의 학교 선배 카지 역을 맡아 능청스러우면서도 속 깊은 개그 캐릭터 신스틸러로서 극의 재미를 한단계 높여준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풍경소리

아쉬운 지점도 물론 있는 작품이다. 평행세계 설정과 관련된 부분은 대부분 영화적 허용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일부 캐릭터는 완성도가 부족하다든지 일부 장면에서는 서정성이 끊기는 장면도 있다.  '운명 같은 사랑'이라는 테마에 얽매인 두 사람의 구도는 다소 전형적이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풍경소리

그러함에도 이 영화는 결국 진심과 감성의 힘으로 관객을 설득해낸다. 평행세계라는 낯선 장치를 거쳐 도달한 감정은 세상이 달라져도 진정한 사랑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미레이가 참여한 OST의 아름다운 감성 또한 이 영화의 모든 단점을 날려 보낸다. '네가 있어서 내가 있다'라는 가사를 담은 주제가 'I still'은 극 중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해낸다. 사랑의 색감을 예쁘게 입힌 이 영화 안에는 세상과 기억이 모두 사라진다 해도 사랑이 노래처럼 되살아날 듯한 산뜻한 청춘의 힐링 에너지가 가득하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가 만족스러운 데이트 영화인 이유다.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풍경소리

제목: 나를 모르는 그녀의 세계에서

원제: My Beloved Stranger (知らないカノジョ)

감독: 미키 타카히로 

출연: 나카지마 켄토, 미레이 외

수입: 풍경소리

배급: 와이드릴리즈

제공: 월드시네마

제공/공동배급: 키다리스튜디오

공동제공: 도호 엔터테인먼트

러닝타임: 122분

관람등급: 12세이상관람가

개봉: 2025년 5월 22일

평점: 7.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