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정우 감독 "블랙 코미디 영화, 아드레날린 나오고 신나"  

2025-04-14     심우진 기자
▲'로비' 감독 하정우. ⓒ쇼박스

"'로비'에 우디 앨런 감독 영화 등 다양한 작품 참고해"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비공식작전', '1947 보스톤', '하이재킹' 등 극적인 스토리 속에 절실함과 절망의 얼굴을 그려왔던 하정우가 세 번째 연출 작품 '로비'를 통해 주연 배우 겸 감독으로서 극장가에 복귀했다.

영화 '로비'는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이 4조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를 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골프장 내에서 다양한 비즈니스가 오고 가는 것에 착안해 시작된 영화 '로비'는 대한민국 최초로 골프 로비 세계에 대해 영화적 상상력을 접목한 블랙 코미디 영화다.

하정우는 이번 작품에 김의성, 강해림, 이동휘, 박병은, 강말금, 최시원, 차주영, 박해수, 곽선영 등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을 캐스팅해 시각적인 미쟝센보다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감정연기와 재기발랄한 대사가 살아있는 캐릭터 중심의 영화를 완성했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강남구 쇼박스 사옥에서 하정우 감독을 만나 이번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언론 시사회 당일 충수염으로 불참했는데 현재 건강은 어떤가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 급성이 아니라 만성이었어요. 지난 1월 구정 때 장염에 크게 걸렸었거든요. 이후에 나아지나 싶었는데 갑자기 언론 시사회 전날 새벽에 열이 나고 배가 아프더라고요. 하지만, 무시하고 잤죠. 아침에 일어나서 본능적으로 이건 병원에 가야겠다 싶어서 응급실에 갔죠. 제 계획은 응급실에 갔다가 낮 행사만 하고 저녁에 치료받겠다는 거였는데 바로 수술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Q. 골프와 로비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됐나 

2020년 코로나 시기에 쉬면서 골프를 처음 배웠는데 금방 빠지게 됐죠. 근데 지면 화가 나더군요. 다른 스포츠랑 다르게 골프를 잘 치고 못 치고가 저의 인격과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골프 잘 치는 날은 굉장히 기분이 좋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데, 망한 날은 저 자신이 너무 비참해지더군요. 그래서 이게 도대체 뭘까? 하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죠. 

주변을 보면 골프장 밖에서는 굉장히 온순하고 얌전하고 굉장히 엘레강스한 사람도 골프채만 들면 이상하게 변하는 거예요. 겨우 저 정도 인간이었나 하면서 속물처럼 보이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참 아이러니하고 블랙 코미디 같았죠. 

아침에 골프장에 모이면 백이면 백 처음 하는 말이 다 몸이 안 좋대요. (웃음) 컨디션이 너무 안 좋다든지 잠을 못 잤다든지 밑밥을 깔고 시작하죠. 더 재미있는 건 100원짜리 내기에 목숨을 걸어요. 골프가 인간의 그 어딘가를 긁고 찌르는 운동이더라고요. 겉으로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골프장에서 정말 어린애들 자치기 놀이처럼 네다섯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너무 웃겨서 영화 소재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Q. 큰 웃음보다는 툭툭 던지고 주고받는 유머 스타일이 돋보이는 영화다

대본에 이것저것 잡식성 인풋 작업을 했어요. 예를 들면 최시원 배우가 연기한 마태수의 모델은 최민수 선배죠. 최민수 선배님이 그동안 출연한 영화와 인터뷰에서 썼던 말과 어록을 전부 정리했어요. '호랑이의 울분을 가진 사슴일 뿐'이라는 대사도 실제 최민수 선배님이 한 대사죠. 이런 식으로 인물별로 나눠서 얘기할 만한 대사들을 넣었습니다. 

제가 우디 앨런 감독 영화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영화 대사들을 참고하기도 하고 '대부'를 워낙 좋아해서 그 대사도 참고해 변형하기도 했죠. 여기저기서 찾아보고 인물들이 처한 상황에 직접 연기도 해보기도 했고요. 리딩할 때는 마음껏 그냥 애드리브를 다 하셔도 좋고 평상시 말 쓰라고 했어요. 거기서 뭐 하나 얻어걸리면 기록해 놨다가 시나리오에 녹였죠. 

'무비 43'이라는 옴니버스 영화가 있는데 첫 장면에서 턱 밑에 고환이 달린 휴 잭맨이 케이트 윈슬렛이랑 레스토랑에서 만나거든요. 중요한 건 휴 잭맨이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한다는 거죠. 그 장면을 배우들에게 보여주면서 남자에게 뭐가 달려 있든 절대 의식하지 말고 저런 톤으로 연기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하정우. ⓒ쇼박스

Q. 이번 작품은 캐릭터 구성이 다양하다

영화에 어떤 인물들이 들어오면 재미있을까 생각했었죠. 저를 아는 분들이 골프 초대하면 꼭 절 모르는 사람 한두 명이 꼭 껴 있어요. 1시간쯤 지나면 사진 찍자 하고 선을 조금씩 넘어요. 결국에는 말 놓고 지내자고 하면서 관계가 좀 이상해지는데 그게 좋았던 경우도 있었지만, 불편하게 헤어진 적도 있어요. 그래서 여기에 연예인이 한 명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고등학교 동창 중에 공무원이 한 명 있는데 골프가방에 자기 아들 이름을 해놨어요. 자기는 공무원이라 로비를 절대 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래서 이렇게까지 조심할 필요가 있냐 너만 깨끗하면 되는 거 아니냐 했더니 애초에 그런 오해를 만들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영화에서는 최실장과 조장관을 접대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요. 옛날 얘기라는데 예를 들어 국토부다 그러면 전에 일하다 옷 벗고 민간인으로 있는 사람을 접대한다더군요. 전관예우로 이제 줄을 놔주는 건데 만약에 이게 밖으로 흘러나갔을 때 언론사 데스크급이 껴서 막아주고 검사나 판사나 경찰 고위 간부를 한 명 낀다고 하더군요. 무용담처럼 이야기해주는데 너무 재미있었죠. 평상시에는 만나지 않을 것 같고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캐릭터들이 광활하지만 은밀하고 프라이빗한 골프장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구성해보면 재밌겠다 싶었죠.

Q. 김의성, 박해수, 강해림 배우의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김의성 배우는 좋은 의미에서 눈치 있고 감각이 있어요. 그래서 막힌 캐릭터를 더 잘 표현할 거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해서 역할을 제안했습니다. 남자들은 애 같은 부분이 있어요. 어디 가든 수컷 기질과 우두머리 기질을 잃지 않으려 하죠. 저보다 10살 많은 형들도 20대 30대가 함께 자리하면 아직도 낭만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있어요. 아버지뻘인데 자기가 되게 로맨틱하고 나이스하다는 걸 어필하려는데 너무 웃기죠. 최실장이 그런 인물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골프장 대표 역할을 맡은 박해수 배우는 제일 마지막에 캐스팅됐어요. 박해수 배우는 '로비'에서 어떤 역할을 주더라도 함께 하고 싶었어요. '수리남'때 좋은 인상을 받았고 너무 훌륭한 배우라고 생각했거든요. 스케줄 때문에 안될 뻔했는데 그 작품이 연기되면서 출연 승낙을 받아냈죠.

진프로 역을 연기할 배우는 진짜 골프 선수를 캐스팅했나 싶을 정도의 일반인 느낌이 나길 바랐어요. 그래서 강해림 배우를 제일 먼저 캐스팅을 했죠. 여러 후보가 있었는데 너무 능수능란한 느낌이 들었죠. 낯설고 일반인에 가까운 배우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어요. 골프 폼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서 훈련을 소화할 수 있어야 했고요. 강해림 배우에게는 연기 부담을 주지 않았어요. 그냥 골프를 열심히 해서 프로폼만 만들어 달라고 했죠.

Q. 진프로의 골프 영상을 폰으로 보는 최실장의 눈이 커지는데 CG로 만든 장면인가

그 장면은 실제 돋보기안경을 쓴 겁니다. '좋은 친구들'이라는 영화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비슷한 돋보기를 써서 눈이 크게 나오는 장면이 있어요. 그걸 오마주 했습니다.

Q. 엄하늘 배우의 말투 연기가 인상적이다.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엄하늘 배우는 조감독의 추천으로 만났어요. 이동휘 배우와 단편 영화를 같이 찍었던 배우죠. 배우에게는 가지고 태어난 음색과 자기만의 말맛 리듬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기 색깔을 잘 전달하기 위해 훈련이 필요한데 엄하늘 배우를 딱 보고 깜짝 놀랐어요. 예상하지도 못했던 화술을 하고 있더군요. 거기다 감독도 하고 글도 쓰고 배우도 하면서 여러 가지 것들을 많이 시도하고 도전하고 있더군요. 흥미로운 인물이라 본능적으로 이 영화에 너무나 잘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원래 장례식장 한 장면만 나오는 거였는데 이 친구의 라인을 더 만들었어요. 

Q. NBA 경기와 르브론 제임스를 좋아하는 어머니 설정도 재밌다

그건 제가 개인적으로 르브론 제임스를 좋아해서 넣었어요. 사실 어머니께서는 LA다저스의 클레이튼 커쇼의 엄청난 팬이라 그것 때문에 경기 보러 미국을 가세요. 제가 농구를 좋아하니까 창욱의 어머니는 마지막에 돌아가실 때 르브론 제임스 유니폼을 입는 걸 생각해봤어요.

▲하정우. ⓒ쇼박스

Q. 골프장이라는 공간에서 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촬영에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

특별히 그러지는 않았어요. '롤러코스터'도 비행기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더 선택의 여지가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애초에 인물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던 부분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것까지는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이 인물들을 잘 담을 수 있을까만 생각했어요.

Q. 주로 블랙 코미디 장르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제가 이런 부류의 영화를 보게 되면 아드레날린이 나오고 신나는 것 같습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범죄 스릴러로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저는 블랙 코미디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쓰리 빌보드'를 봐도 너무 웃겨요. 인물들이 무표정하게 그냥 툭툭 템포감 있게 뱉는 대사들의 무심함이 웃기게 느껴지죠. 우디 해럴슨의 사연에 대한 내레이션이 웃프면서도 따뜻했어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다 담겨 있는데 그런 것을 좋아합니다.  

제 연기에 대해 표현을 조금 더 정확하고 친절하게 해달라고 요구를 하시는 감독님들이 많이 계세요. 그냥 제 스타일이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신나고 가슴 뛰는 이런 블랙 코미디 영화들에 관심을 두게 되더군요. 정확히 규정짓지는 못하겠지만, 그냥 무심함 속에서 툭툭 뱉는 걸 좋아해서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Q. 다음 작품은 어떤 장르의 영화인가

네 번째로 아직 가제이긴 하지만 '윗집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이미 찍었어요. '로비'가 세상에 나오는데 오랜 기간이 걸린 이유를 돌이켜보면, 제가 감독으로서의 어떤 노선을 정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로비'와 관련해 '롤러코스터' 언급을 많이 해주시는데, 저는 그냥 이런 색깔의 영화를 앞으로도 만들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윗집 사람들'도 같은 스타일로 만들었어요. '로비'보다는 인물이 덜 나오기 때문에 좀 더 밀도있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