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계시록' 연상호 감독 "원하는 것만 보려는 사회가 잉태한 작품"

2025-04-08     심우진 기자
▲'계시록'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류준열, 기도 자문받아 리얼한 연기 구현해 감탄"

"영화 만드는 것 외 아무런 취미 없어…영화가 놀이이자 일"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한국 장편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제65회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은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 인간의 양면성과 선악의 경계를 꼬집는 '사이비', 지옥행 고지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삶과 죽음, 죄와 벌, 정의 등 보편적인 주제를 깊이 있게 그려낸 '지옥' 등을 통해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온 연상호 감독. 

그가 이번 작품 '계시록'에서는 비현실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현실에 있을 법한 사건과 인간 내면의 환상과 트라우마를 주된 소재로 사용해 이야기를 펼친다. 특히 이번 작품은 멕시코 거장 알폰소 쿠아론이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로 참여해 더욱 화제가 됐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영등포구 한 호텔에서 연상호 감독을 만나 영화 '계시록'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계시록'은 자기 관점에서 보는 신념에 대한 영화다

제가 살면서 느끼는 것들을 작품의 원동력으로 많이 쓰려고 하는 편이에요.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강요하는 세상 같은 느낌들을 좀 봤던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채널이 몇 개 없으니까 TV를 그냥 켜 놨죠. 그런데 요즘에는 자기가 찾아서 유튜브를 보죠. 어떻게 보면 사회가 고도화되면 고도화될수록 자기가 원하는 것만 보려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어요. 그래서 자기 관점 외에는 못 보는 사회가 점점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시록'을 기획을 하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이 '계시록'이라는 작품은 사실 이 사회가 잉태한 작품이죠.

Q. '계시록' 영화 작업 과정에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된 부분이 화제다.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계시록' 만화 작업에 참여했고 자연스럽게 영화화를 시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님과 얘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넷플릭스와 이어져 현재의 결과물로 나왔어요.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는 미국에서는 익숙한 직책인데 한국에서는 정확히 대체할 단어가 없어요. 그래서 한글로 표기하는 것으로 합의가 됐죠. 제일 비슷한 개념이라면 총괄 프로듀서 같은 느낌이죠. 기획단계에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를 맡고 저와 처음 얘기했던 비전과 맞닿아 있는가 그리고 그게 영화가 오픈되는 마케팅 방식 과정까지도 맞닿아 있는가를 챙겨주셨죠. 제가 이 작품을 어떠한 관점으로 연출하고 싶고 또 어떠한 관점의 스토리텔링을 가진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했던 것에 대해서 재미있게 생각을 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처음 인연은 지금 준비 중인 영어 영화를 같이 할 미국 제작사들과 미팅을 하고 있었던 차에 알폰소 쿠아론 감독님이 한국어 영화에 같이 참여하고 싶다는 말을 해 주셨어요. 장르 영화의 외피를 가졌지만 조금 실험적인 면이 있어요. 주제 의식을 형상화한 스토리텔링이 되어야 하고 한국 문화를 긴밀하게 대변하고 있는 영화라 글로벌 관객층에 잘 전달하기 위한 팁을 들으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명확히 궁금하게 여긴 것은 이 영화의 최종적인 모습이 어떤 형태가 됐으면 좋겠는지와 어떤 영화적 비전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였어요. 최종적으로는 넷플릭스와 작업하게 됐지만, 그전 단계에서는 해외 자본 등을 통해 극장 개봉도 염두에 두고 있었죠. 그런 부분에 대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해 주셨어요.

Q. 착시 현상인 '파레이돌리아'를 종교적으로 결합해 영화의 소재로 삼고 있다

처음에는 자기가 욕망하고자 하는 방향에서 보이는 효과에 관심이 있었어요. 병리학적으로는 아포페니아가 있고 세부적으로는 파레이돌리아가 있죠. 뇌의 자연스러운 작용인데 인간이 발명하거나 욕망을 갖거나 목적성을 갖는 이유는 이 추론력 때문이고요. 인간 뇌 특성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게 되는 건데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걸 장르물로 만들다 보니 지금의 결과물이 나온 것 같고 이 이야기가 해결되거나 엔딩까지 가는 방식 역시 인식의 전환을 일으켜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외눈박이 괴물이 둥근 창을 상징한다는 암시는 영화 내내 나와요. 이연희 형사 동생 연주가 살던 집에 사진에도 계속 나오고 종반부 그림 일기장을 보는 장면에서도 너무 티 날 정도로 계속 심어주죠. 하지만, 시청자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었어요.

앞서 일어난 성민찬 목사의 사건들이 워낙 강렬하니까 너무 뻔히 보이는데도 보지 못하는 착시 효과를 영화에서 주고 싶었죠. 그것이 발견되고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에 앞서 보이지만 보지 못했던 것들을 알아차리길 바랐죠. 파레이돌리아나 혹은 인식의 전환 같은 형식의 스릴러로 만들고 싶다는 게 애초 이 영화의 기획 목적이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만드는 방식에서는 메시지를 중요시하는 편이고 말하고 싶은 것을 납득시키는 방식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Q. 성민찬 목사 역에 류준열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목사 부부의 차 안 회개 장면이 인상 깊다

류준열 배우가 그 나이대 배우 중에 굉장히 연기를 잘합니다. 그리고 독실한 신자라서 그 부분을 잘 알아요. 신자의 관점에서 굉장히 분석을 오랫동안 해왔어요. 기도 연기가 진짜 목사님들의 톤이라서 놀랐어요. 목사님들이 약간 연기하는 느낌으로 일종의 쇼맨십같이 말투를 흘리는 게 있는데 진짜 교회 안 다닌 사람은 그 미묘한 말투를 잘못하거든요. 굉장히 리얼하게 연기해서 감탄했어요. 목사님들에게 기도 자문도 받고 녹음도 해달라고 해서 구현 노력을 진짜 많이 한 것 같더군요.

원작에서는 성민찬이 아내에게 불륜 증거 사진을 내밀면서 회개하라고 강요하는 장면이 있어요. 믿음의 광기를 더 잘 표현할 방법이 무엇일까 얘기를 많이 했죠. 증거를 내밀기보다는 일종의 자백을 하게 하는 과정이면 어떨까 하는 관점에서 류준열 배우, 아내 역의 문주연 배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Q. 범죄자 권양래 역에 신민재 배우를 캐스팅한 이유는

저와 작품들을 꽤 많이 해왔었는데 '기생수 그레이'에서 구교환 배우 연기 톤이 되게 변칙적이라 상대 배우가 좀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신민재 배우가 그런 면에서 기세 있게 연기를 잘하는 배우죠. 권양래는 중요한 역할이긴 하지만 낯선 인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류준열 배우와 신현빈 배우 사이에서 존재감을 보일 수 있는 기세를 가지고 있는 배우라서 캐스팅하게 된 거죠.

Q. 알폰소 쿠아론 감독에게서 영감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

원신 원커트 롱테이크 대가이시다 보니까 제 나이 또래 감독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신 게 아닌가 싶어요. 감독님의 롱테이크는 관객에게 사건이 실제 시간대로 일어나고 있다는 감흥을 주거든요. 생동감이 있다는 거죠. 그런 것들이 감독님의 롱테이크 미학인데 제 작품도 영향을 많이 받았죠. '디스클레이머' 1화 롱테이크도 대단하더라고요.

Q. 성민찬 목사 캐릭터가 강렬한 만큼 그에 못지않게 신현빈 배우가 연기한 이연희 형사 캐릭터도 그려내야 했을 텐데 둘의 대립각을 어떻게 설계해 나갔나     

둘의 대결을 그린 영화는 아닙니다. 두 사람은 보는 지점이 다르죠. 성민찬과 이연희가 대결할 이유는 전혀 없어요. 이연희에게 성민찬 만큼이나 절실한 믿음은 복수심이죠. 죄책감에 짓눌려서 바스러질 것 같은 인물이라는 점이 중요했습니다. 

영화의 주제는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는 것이고, 성민찬의 광기에 압도되면서 아영이를 구할 수 있는 단서인 외눈박이의 정체가 보이지 않게 되거든요. 종반부에 이연희가 인식의 전환 때문에 단서를 보게 되면서 관객도 함께 그걸 보게 되는 거죠.

이연희는 죄책감을 머금은 채 천천히 따라갑니다. 남과 있을 때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그 뒤에서는 엄청난 고통을 감추고 있죠. 아주 고요하게 있다가 터트려내는 연기를 신현빈 배우가 굉장히 잘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신현빈 배우는 얼굴 자체에 스토리텔링이 있어요. 가만히 있어도 뭔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죠.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예민하지 않으면서도 대본에 메모도 많이 해서 준비를 엄청 철저하게 해오는 배우입니다. 현장에서 주변 사람을 독려하는 에너지가 좋은 배우죠. 전에 같이 작업한 김현주 배우도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Q.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아이디어와 체력의 원천은 무엇인지

저도 보통 사람입니다. (웃음) 계시록을 촬영하다 보니까 너무 힘들고 상업적으로 해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힘들어서 쉬고 싶고 힐링할 시간이 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얼굴'을 만들면서 쉬었습니다. 지금까지 일하지 않았던 독립 영화 방식으로 했더니 에너지가 좀 생기더군요. 제작부 2명 연출부 2명으로 정말 작게 찍었어요. 엄청 재미있었고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일만 죽어라 하다가 간만에 휴가 간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일본 넷플릭스 시리즈 '가스인간'도 곧 나올 텐데 미묘하게 힐링이 되는 게 있었어요. 제가 쓴 대본을 일본 배우들이 연기하고 일본 감독님이 연출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얻더군요. 그렇게 생긴 에너지를 가지고 간신히 다음 영화를 또 찍을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잘 나가기 위해 뭔가 계속 터트려야겠다는 관점으로 영화를 하면 사실 얼마 못합니다. 항상 영화 작업에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합니다. 저는 너무 불행하게도 영화 만드는 것 외에는 아무런 취미가 없어요. 저에게는 영화가 놀이이자 직장의 일이죠. 

Q. 전지현, 고수, 지창욱 배우 등을 캐스팅한 '군체'를 2026년 개봉 예정으로 작업 중이다

전지현, 고수, 지창욱 배우는 진짜 톱스타잖아요. 열정과 에너지에 정말 감탄을 하고 있어요. 너무 잘하시고 프로페셔널하고 매번 여유가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집중력이 좋아요. 전지현 배우도 그렇게 에너지가 강한 분인지는 몰랐고 지창욱 배우도 몰입도가 남다르다는 걸 느껴요. 고수 배우는 사람이 굉장히 유연한데 그분들한테 저도 에너지를 많이 받는 편인 것 같습니다.

Q. 앞으로 애니메이션 작품을 직접 연출하지 않는다고 해도 기획이나 각본 작업을 할 계획이 있는지 그리고 목표가 있다면

늘 계획을 하고 있어요. 독립 애니메이션을 한 3편 정도 만들었고 그 이후에도 제가 제작을 한 애니메이션들을 다 독립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많이 만들었어요. 만약에 이번에 한다면 상업 애니메이션을 해보고 싶습니다. 뭐가 있을까 고민을 늘 하고 있죠. 아직은 명확한 기회나 답을 못 찾았어요. 

개인적으로는 건강을 챙기는 게 목표고 영화적으로는 알폰스 쿠아론 감독과의 작업 같은 남들이 얻기 힘든 기회나 경험을 귀하게 사용하면서 창작적 외연을 넓혀가고 싶어요. 제가 영화의 영혼을 바꾸기 위해서는 영화의 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의 몸이라고 한다면 프로덕션이겠죠. 예를 들면 인디 방식일 수도 있고 다른 나라의 언어일 수도 있어요. 영화의 질감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기회를 앞으로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