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폭싹 속았수다' 박해준 "시청자 너무 많이 울게 만들어 죄송"

"박보검 배우에게 감사…깔아준 판에 발만 얹었을 뿐"

"제 인생 캐릭터는 이것만으로 끝나진 않을 것"

[SRT(에스알 타임스) 심우진 기자]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독전',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서울의 봄'을 비롯해 드라마 '부부의 세계', '아라문의 검', 넷플릭스 시리즈 'The 8 Show' 등 장르를 불문하고 선과 악을 오가는 다면적 캐릭터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존재감을 보여준 박해준. 

그가 이번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에서 팔불출 가장 관식으로 변신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 작품에서 박해준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우직함과 단단함을 가진 관식을 따뜻하고 진정성 있게 그려내면서 마지막 4장까지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인생 캐릭터를 완성했다. 

SR타임스는 최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박해준 배우를 만나 이번 작품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작품 전체가 공개됐다. 소감을 밝힌다면

'폭싹 속았수다'가 좋은 작품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사실 보고서 놀랄 정도였고 다른 배우분들도 너무 잘해 주셨죠. 김원석 감독님과 임상춘 작가님이 의도한 대로 준비를 아주 정성스럽게 해주셨죠. 그런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해준 작품입니다. 이렇게 감동적인 작품에 출연하게 된 것도 너무 영광스럽고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어르신들부터 젊은 세대까지 칭찬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근데 그게 좀 남다른 칭찬을 해주세요. 저에게 감사하다는 표현들을 너무 많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왜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냐고 밉다는 사람들도 있었죠. 저도 작품의 여운이 너무 세서 먹먹하게 보냈던 것 같아요.

Q. 양관식을 연기하면서 가장 슬펐던 장면이 있었다면

보면서 너무 힘들다 할 정도로 엉엉 울지는 않았는데요. 사람들이 애순을 위해서 따뜻한 마음을 보이는 장면들에서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오프닝에서 손을 올려 막아주는 장면을 보면 짠해요, 끝까지 살아나가라는 그런 마음들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울타리를 쳐주는 사람들에게 감동하였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고 혼자가 아니고 살면 살아진다는 그런 얘기도 되게 감동이었죠. 내레이션도 너무 기가 막혀서 자막 틀어 놓고 글만 봐도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Q. 작품을 본 아이들 반응은 어땠는지 그리고 아이들 사춘기가 걱정되지는 않는지

초등학교 6학년, 2학년인 아들들이 제 작품을 잘 안 보는 편인데 아내가 보여줬나 봐요. 갑자기 첫째에게서 전화가 오더군요. 그리고 10분 있다가 둘째 전화가 왔어요. 빨리 들어오라고 30분에 한 번씩 전화가 와서 신기했죠. 제가 안 아픈지도 확인하더군요. 

아이들이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길 바라는데 요새 애들이 그런 건지 맨날 환경 오염이나 지구가 언젠가 멸망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있어요. (웃음) 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치나 봐요. 중요한 교육이긴 한데 그냥 사고 안 치면서 건강하게 잘 살아줬으면 해요. 

Q. 관식 캐릭터 캐스팅과 관련한 뒷이야기가 있다면

촬영 중이었는데 김원석 감독님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무슨 작품인지도 모르는데 대본 보내준다고 하시길래 기다렸죠. 대본을 봤는데 이 역할을 저에게 준다는 게 믿을 수 없으면서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는 문소리 선배님이 캐스팅이 안 됐을 때인데 상대 배우가 어떠냐에 따라서 제가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노년까지 해야 하는 역할이라 약간 숨죽이고 있었죠. 무조건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작품은 한다는 마음이었어요. 너무 좋은 작품을 만나게 됐어요. '나의 아저씨' 때 실제로 머리를 빡빡 밀었는데 감독님이 너무 미안해하셨죠. 그 뒤로 좋은 작품들에 많이 캐스팅 해주셨어요. 이제는 은혜를 갚아야 할 때인데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Q. 장준환 감독의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로 배우 인지도를 높였다. 이번에는 장준환 감독의 아내인 문소리 배우와 작품을 함께 했다. 현실과 작품에서 서로 돕는 인연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때 문소리 선배님이 현장에 한 번 오신 적이 있는데 진짜 연예인이셨죠. 사실 극단 무대에서 같이 작업하지는 못했지만, 선배님이 공연 올라가실 때 밑에서 일을 도와드렸던 경험이 있긴 했어요. 그런 선배님과 같이 호흡을 맞추니까 너무 영광스러웠어요. 제가 이렇게 잘해 왔습니다 하고 인정받는 느낌도 들었죠.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알았던 것 자체가 작품에 도움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이 작품 속에서 한 50년 같이 지낸 부부인 것처럼 선배님도 제 어릴 때 모습을 알고 계시고 한 집단에 있었다는 것 자체에서 동질감이 있어서 작업하면서 편했어요. 서로 자식과 부모님 얘기하면서 이 작품과 연관된 대화를 많이 했죠.

Q. 아이유 배우와 기억에 남는 연기 호흡이 있었다면 

뭐 하나 던지면 그 리액션을 너무나 잘해 주는 배우죠. '나의 아저씨'도 너무 훌륭하게 잘 해냈지만, 이 작품은 버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준비 과정에서 문소리 선배님이 먼저 리딩 하자고 하는데 너무 잘하는 거예요. 이렇게 잘한다고? 하고 깜짝 놀랐어요. 그냥 잘했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나의 아저씨'는 기본적인 톤이 있기 때문에 아이유 배우가 아주 잘하는 부분이 확 드러난다면, 이 작품은 애순과 금명을 왔다 갔다 해야 했죠. 근데 너무 잘하더군요.

사실 어떤 면에서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책임지는 역할이잖아요. 그걸 해내는 것 자체가 너무나 대견했어요. 사실 너무 힘든 스케줄이라서 현장에서 좀 지쳐 있기는 했었는데 제가 앞에서 많이 까불거렸죠. 힘 좀 내라고요. 부끄럽네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웃음) 저는 진짜 딸처럼 만만하게 대했어요. 그런데 만만하게 대할 친구가 아니더군요. 지금 생각하니 부끄럽지만, 진짜 좋았습니다.

Q. 투병하는 장면에서 체중 감량은 어떻게 했나

권투나 격투하시는 분들 체중 조절을 참고했어요. 그 장면 촬영일을 디데이로 두고 4일 전부터 반신욕하고 땀 빼면서 7kg을 감량했죠. 몸에서 물을 짜내듯 하는 건데 사실 위험한 거라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또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 게 일단 외형도 그렇지만 눈이 달라져 있더군요. 진짜 힘이 하나도 없었어요. 분장 버스 계단 올라가는 것도 힘들 정도였으니까요. 

Q. 박보검 배우와는 서로의 연기를 통해 슬픔을 배가시켰다

그 연기도 사실은 박보검 배우가 깔아준 판에 진짜 발만 얹었던 겁니다. 그래서 진짜 정말 고맙죠. 그렇게 앞을 잘 열어 줄지는 몰랐어요. 근데 이렇게 말하면 기대를 안 했다는 얘기처럼 들릴 거 같은데 말이라는 게 진짜…(웃음). 아무튼 박보검 배우가 잘 해줘서 너무 고마워하면서 초반 1, 2막을 봤죠. 박보검 배우의 미래 모습으로 제가 잠깐씩 등장할 때마다 박보검의 잔상이 남아 있으니까 너무 다행이었죠. 박보검 씨는 데이터도 없이 연기한 거고 저는 사실 그 연기를 참조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었죠. 지금 기억났는데 박보검 배우가 자기는 이거 연기할 건데 녹음해서 보내줄 수 없냐고 요청했었어요. 정말 고마웠네요. (웃음)

Q. 관식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아픈 곳이 생기는 모습은 본인의 연기 몫이었다

훌륭한 스태프분들이 다 시제를 주시고 말씀도 해주신 덕분인거죠. 근데 이러면 제가 한 건 도대체 뭘까요? (웃음) 정말 좋은 작업을 하게 되면 이런 행운이 오는 것 같아요. 그것에 보답하기 위해서 제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고, 그런 과정들이 같이 어우러져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Q.크로스백을 메고 다니는 것도 대본에 나오는 설정인가

그거 하나는 제가 했죠 (웃음). 의상팀에 내가 이거 메고 다닐 거야 말했었어요. 버스정류장 신에서 가져온 크로스백인데 쭉 메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관식이에게는 소중한 사진 같은 게 들어있다고 상상했죠.

Q. 관식을 현실적인 인물이라 생각하나

저는 촬영하면서 이런 사람이 어디 있냐면서 판타지 인물이라고 생각을 하고 연기했는데 동네 모임이나 학부모 모임 가면 여러분들이 자기 아빠가 생각난다고 하더군요. 그건 아마도 현실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공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부부끼리 투덕거리며 살고 있지만, 사실은 관식 같은 남편도 많지 않을까요? 남편들을 잘 한번 들여다보세요. 관식 같은 면이 있을 거고 다 관식처럼 살고 싶어 해요 (웃음). 아내도 저에게 관식 같은 면이 많다고 얘기를 해요. 진짜 들었고 거짓말 아닙니다. (웃음) 

Q. 이번 작품으로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는 평을 얻고 있는데 체감하고 있는지

제 인생 캐릭터가 이것만으로 끝나진 않을 것 같아요 (웃음). 이런 자신감은 보여주고 살아야죠. 맨날 겸손할 수는 없잖아요 (웃음). 지난해만 해도 '서울의 봄'으로 많이 이야기해주셨어요. 저는 계속 다른 작품을 찾고 있어요. 반응이 많건 적건 간에 요즘은 지금의 제 일이 너무 좋습니다.

Q. 끝으로 시청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일단 죄송합니다. 작품 보시면서 너무 많이 우시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은 통증이 좀 있습니다. 나름대로 후유증도 있고요. 근데 좋은 선물을 해드렸다는 생각도 듭니다.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기 때문에 이 작품과 넷플릭스가 잘 만났다고 생각합니다. 세대별로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5년 후 그리고 10년 후에 보면 또 다른 감정일 겁니다. 힘들 때 한 편씩 꺼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런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