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곳간지기에 미래 맡긴 기업들…혁신 시험대 서다
[SRT(에스알 타임스) 윤서연 기자] IT 업계 내 '재무통' 출신 인사들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실적 부진과 시장 경쟁 심화라는 도전에 직면하면서 재무 안정성을 강화하고 효율화를 추진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올해 내내 쇄신 경영 과제가 요구됐던 삼성전자와 카카오가 이 전략을 택했다. SK하이닉스, 네이버 등 경쟁사에서는 기술력을 앞세워 시장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어 핵심 인사들의 전면 재배치가 거론됐지만, 삼성전자와 카카오 양사는 수뇌부에 재무통 인사를 배치하거나 기존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2인자' 정현호 부회장을 비롯해 핵심 수뇌부가 모두 유임됐으며, 카카오는 신종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그룹 컨트롤 타워인 CA협의체 재무 총괄 대표로 선임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고대역폭메모리(HBM), 파운드리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미래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최근 증권가에서는 연일 삼성전자의 영업이익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며 내년도 쉽지 않을 것을 예고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전자의 현재 밸류에이션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을 정도로 할인돼 있다"고 평가했다.
카카오는 사상 초유의 총수 부재 리스크에 이어 카카오톡, 카카오모빌리티 등 계열사 전반에 걸쳐 과징금 폭탄 세례를 맞았다. 삼성전자의 주가는 27일 기준 올해 최고가 대비 39.3%, 카카오는 37.5% 하락하며 투자자들의 심리도 위축된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변동성이 심한 최근 상황에서 재무 안정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곳간지기 역할이 커진다고 해도 결국 미래 성장은 본업 기술력이 좌우한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술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 만큼 재무 중심의 의사결정이 기술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양사는 기술력 강화를 위해 투자를 지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삼성전자는 2026년 착공 예정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2052년까지 360조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2030년 첫 번째 팹 가동을 목표로 글로벌 1위를 달성하겠다는 시스템반도체 전략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카카오도 AI 중심 플랫폼 혁신과 콘텐츠 강화에 나서며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카카오가 올해 AI 기술과 서비스 개발을 위해 투자한 금액만 1,500억원에 달한다. 계열사 지분 정리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미래 성장동력에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기술 혁신을 주도하기 위한 꾸준한 투자도 중요하지만 결국 사업 관리·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건 수뇌부다. 기술이 급변하는 현재, 안정화 전략에 머물기보다 도전과 혁신이 요구되고 있다. 불확실한 대내외 환경 속에서도 ‘기술이 미래다’라는 명제를 되새기며, 책임을 맡은 리더들이 과감한 결정과 전략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