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서 일하다 부신암 걸린 40대, 첫 산재 인정

2024-10-29     윤서연 기자
ⓒ 픽사베이

반올림 "이제라도 기업과 정부 노동자 건강보호대책 제대로 마련해야"

[SRT(에스알 타임스) 윤서연 기자]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부신암에 걸린 노동자(40대)가 산업재해 인정을 받았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윤성진 판사는 지난 23일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 불승인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A씨는 2000년 11월부터 하이닉스 청주공장(현 키파운드리) 디퓨전 공정과 증착 공정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A씨는 반도체 웨이퍼 제조 세부공정 중 하나인 증착(박막) 공정 장비 유지·보수를 맡았다. 그는 해당 공정 장비·설비에 유해물질인 액체가스를 투입하거나 직접 냄새를 맡아 가스 누출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각종 유해 물질에 노출됐고, 지난 2020년 3월 부신암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이듬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했지만 공단은 업무와 질병 간 인과성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부신암이 A씨가 취급한 유해 물질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이 의학적, 과학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지만 A씨가 취급한 유해 물질의 종류가 매우 많고 유해물질이 노출되는 환경에서 장기간 근무한 후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빠른 시기에 부신암에 걸리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다른 원인이 될 만한 유전자 변이나 가족력도 없는 데다 부신암과 유해 물질이 무관하다는 점 역시 명확하게 증명된 것이 아니라면 부신암과 유해 물질 간 상당인과관계를 쉽사리 부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인권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는 "희귀암의 일종인 부신암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것은 반도체노동자로서 첫 사례"라며 "이제라도 해당 기업과 정부는 유해위험한 반도체 산업 노동자들의 건강보호대책을 제대로 마련하라"고 전했다.

A씨는 반올림을 통해 "공단이 진작 제대로 판정했으면 소송에까지 힘들게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반도체 현장의 유해성이 큰데 공단 판정위원들은 반도체 유해성 문제를 잘 모르는 의사들이 판단하는 문제가 있다. 공단은 장벽을 낮춰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