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커진 PEF, 재계 큰손 부상…투자 성과 희비

2024-09-06     유수환 기자
▲유수환 기자] 한때 기업사냥꾼이라는 오명을 바던 사모펀드(PEF)가 이제는 대기업을 쥐고 흔들만큼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 픽사베이

[SRT(에스알 타임스) 유수환 기자] 한때 기업사냥꾼이라는 오명을 바던 사모펀드(PEF)가 이제는 대기업을 쥐고 흔들만큼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PEF는 지난 몇 년 간 괄목한 성장을 이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기관전용 PEF의 출자 약정액은 136조4,000억원으로 2017년(62조6,000억원)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PEF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변화도 이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특히 최근 정부가 주식시장에서 주주가치 제고를 골자로 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으로 PEF의 영향력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PEF 투자 성과는 기업과 업종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사례도 있다. 동아시아 최대 PEF MBK파트너스도 홈플러스 등 일부 투자 기업 엑시트에 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 대기업도 한수 접는 PEF…출자 약정 커지면서 영향력↑

PEF 투자 약정금액이 커지면서 재계 상위권 기업의 큰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 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최근 태영그룹과 SK 그룹 리밸런싱에서 주요 투자자로 시장에 주목을 받았다. 

KKR은 지난달 태영그룹 자회사인 ‘에코비트’를 같은 사모펀드 IMM컨소시엄에 2조700억원에 매각했다. 사모펀드가 사모펀드에 매각 매물을 파는 ‘세컨더리 딜’을 성공시킨 것이다. 앞서 KKR은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돌입하자 태영그룹 지주사 TY홀딩스에 회사채를 발행해 4,0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바 있다.

KKR은 SK그룹 계열사 합병 과정에서 주요주주로서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이익을 관철시켰다. 최근 SK이노베이션과 합병한 SK E&S가 KKR과 맺은 3조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의 보장수익률을 종전보다 최대 2.4%포인트(p) 상향 조정했다. RCPS는 말 그대로 상환과 전환이 모두 가능한 우선주다. 투자금을 채권처럼 원금+이자를 붙여 돌려받을 수 있고, 보통주로 전환이 가능하다. 이로인해 SK E&S가 지난 2021년과 2023년 발행한 RCPS의 보장수익률은 9.9%로 변경됐다.

또다른 글로벌 PEF 맥쿼리자산운용(맥쿼리PE)도 LG그룹의 계열사 LG CNS에 1조원의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각종 수익 보장과 IPO(기업공개) 약속이라는 계약(풋옵션)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맥쿼리PE 입장에서는 투자수익 보장과 함께 IPO가 무산되더라도 계약 당시 맺던 풋옵션으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유리한 입장에 놓인 것이다.

◆ PEF 투자 성과, 업종·시장 상황 따라 희비

PEF라고 해서 무조건 수익을 내느 것은 아니다. PEF가 인수하거나 지분 투자한 기업이라도 업황 분위기, 시장 상황에 따라 투자 수익은 희비가 갈릴 수 있다. 예를들어 비상장 기업들이 PEF를 비롯한 재무적투자자(FI)에게 약속했던 기업공개(IPO)가 기한을 넘어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고, 당초 투자했던 기업이 업황 부진으로 주가가 크게 하락하는 사례도 있다. 

동아시아 최대 PEF로 불리는 MBK파트너스도 투자한 비상장 기업이 엑시트(투자 후 자금회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지난 2015년 총 7조2,000억원을 투자해 인수한 홈플러스도 엑시트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홈플러스는 MBK로 인수된 지 9년째 접어들었으나 실적과 재무상황 모두 개선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오히려 지난해 홈플러스의 매출은 6조9,314억원으로 2015년(7조525억원) 대비 감소했다. 서민호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지속된 점포 매각과 제한적인 설비투자로 대형마트 시장 내 동사 경쟁력은 과거 대비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MBK파트너스는 지난 2019년 컨소시엄(우리은행)을 구성해 인수한 롯데카드 매각에도 난항을 겪고 있다. MBK파트너스와 우리은행은 컨소시엄을 통해 지난 2019년 5월 롯데카드 지분 79.83%를 확보해 인수했고 몇해 전부터 매각을 준비하고 있다.

다만 롯데카드의 매각은 구체적인 윤곽이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 롯데카드의 순이익은 628억 원으로 전년동기(3067억 원) 대비 79.5% 감소했다. 반면 롯데카드를 제외한 7개 카드사의 실적은 지난해 같은 동기 대비 늘어났다. 또한 기존 카드사 대비 큰 부동산PF 대출도 매각에 발목을 잡는 요인 중 하나다. 노효선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부동산PF의 건당 실행금액이 일반 카드자산 대비 커 1건의 부실 발생시 건전성지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MBK파트너스는 현재 롯데카드의 리파이낸싱을 추진하고 있다. 인수 당시 일으켰던 6400억원 인수금융이 오는 10월 만기를 앞두고 있어 이를 차환하기 위함이다.

국내 3대 PEF IMM 프라이빗에쿼티(PE)가 운용하는 로즈골드 4호도 일부 기업의 주가 하락으로 고전하고 있다. IMM로즈골드4호는 블라인드 펀드(투자자가 구체적인 투자처를 모른 채 언제든 투자 대상이 발견되면 자금을 출자하는 펀드)다. 현재 기관투자자 가운데 국민연금이 가장 많은 출자금을 투자했다. 

IMM PE는 이 펀드를 통해 ▲1조3,000억원에 에어퍼스트(옛 린데코리아) 경영권 인수했고 ▲신한금융지주 유상증자에도 참여 ▲하나투어 유상증자를 통해 최대주주 등극 ▲한샘 경영권 인수 등 다양한 기업에 투자했다. 

기업마다 투자 성과는 엇갈렸다. IMM PE가 지난 2019년 투자한 에어퍼스트는 성공적인 엑시트 사례다. 에어퍼스트는 IMM PE가 인수 당시 2,000억원대 초중반 수준이던 연간 매출이 지난해 말 6000억원을 웃돌았다. 이후 IMM PE는 에어퍼스트의 기업가치 상승으로 지난해 8월말 에어퍼스트 지분 30%를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BlackRock(블랙록)에 매각하고 1조500억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반면 2배나 되는 웃돈을 주면서 인수한 한샘은 주가 하락으로 부진하고 있다. IMM PE는 지난 2021년 10월 조창걸 전 한샘 회장과 특수관계인 지분 27.7%를 총 1조4,513억원에 인수했다. 주당 인수가는 약 22만1,000원이다. 이는 한샘 주가(계약일 기준, 11만6,500원)에 약 2배에 달한다. 하지만 한샘 주가는 부동산 시장 위축으로 크게 하락했다. 한샘 주가는 이달 5일 종가기준 5만5,400원으로 인수 당시 주가(22만1,000원) 대비 74.93% 떨어졌다.

국내 성장 기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했던 홍콩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앵커PE의 상황은 더욱 불안하다. 앵커PE는 ▲컬리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라인게임즈 ▲카카오픽코마 ▲큐텐·큐익스프레스에 투자했고 금액만 약 1조원이 넘는다. 

하지만 주요 투자처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최근 모회사 카카오의 창업자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SM엔터 주식 시세조종을 한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되면서 상장이 불투명해졌다. 게다가 큐텐에 속한 티몬과 위메프가 영업활동이 중단되면서 자금회수는 더욱 어려워진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