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은행, 대출 손실액 ‘50%’ 증가…“역대 최대 증가율”
사실상 회수포기 ‘채권’…경기 한파, 취약기업 폭증
고금리 속 연체율 ‘고공행진’
국민은행, 작년 대출 손실액 1,801억원 '108%' 폭증…우리은행, '88.7%' 증가
[SRT(에스알 타임스) 전근홍 기자] 4대 시중은행이 대출을 내주고 회수를 포기한 채권이 1년 새 50%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기업대출을 통한 부실화가 급격히 진행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기업 10곳 중 4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충당하지 못하는 ‘취약기업’ 상태에 놓인 것으로 조사됐다.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경기 부진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이 맞물리면서 은행이 기업에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일각에선 은행들이 선제적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충당금 적립을 늘리기 위해 보수적으로 여신 분류에 나선 것으로도 평가했다. 회수가 어려운 채권에 대해선 충당금을 더 높게 쌓을 수 있다. 은행들의 경영 전략 일환인 것이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이 내준 대출에서 발생한 추정손실액은 6,541억원으로 전년 동기(4,335억원) 보다 50.8%(2,206억원)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은행별 증가율을 보면 국민은행의 증가폭이 가장 컸다. 국민은행은 지난 2022년 865억원에서 지난해 1,801억원으로 108%(936억원)나 폭증했다. 이어 같은 기간 우리은행이 890억원에서 1,680억원으로 88.7% 증가했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40.5%, 2% 늘었다.
금융회사의 자산 건전성 분류제도는 지난 1999년 이후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운영된다. 중간 단계인 고정은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인 여신이다. 통상 ‘고정 이하 여신’을 부실채권(NPL)으로 분류한다. 건전성이 가장 낮은 단계인 추정손실은 채무상환능력의 악화로 회수불능이 확실해 손실처리가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되는 채권이다. 은행이 사실상 돌려받기를 포기한 빚의 규모로 볼 수 있다.
금융그룹 단위로 범위를 확대하면 부실규모는 더 크다. 은행들의 상위사인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금융그룹)의 지난해 말 기준 추정손실은 총 1조9,66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1조3,212억원)에서 대비 48.8%(6,448억원) 급증한 것으로 역대 최대치다.
세부적으로 KB금융의 추정손실 규모는 2,123억원에서 3,926억원으로 84.9% 늘었다. 4대 금융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같은 기간 신한금융의 추정손실 규모는 5,759억원에서 7,514억원으로 30.5% 불었다. 하나금융은 2,350억원에서 3,430억원으로 46.0% 증가했고, 우리금융은 2,980억원에서 4,790억원으로 60.7% 늘었다.
◆ 충당금 적립 목적에 보수적 여신 분류
지난해 연간 추정손실이 가파르게 상승한 배경은 국내외 경기 둔화와 더불어 고금리 장기화에 따른 연체율 상승이다. 특히 국내 주요 부동산PF 사업장의 부실 가능성이 치솟으면서 충당금 적립을 위해 보수적으로 여신을 재분류한 것도 이유로 볼 수 있다. 회계원칙상 여신의 건전성을 ‘추정손실’로 잡아야 충당금을 더 쌓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한 전략적 행보라는 것이다.
문제는 기업부실화에 따른 향후 ‘부실리스크’ 전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보면 작년 4분기 말 기업신용 규모는 총 2,780조1,000억원으로 3분기 2,734조7,000억원 대비 1.7% 증가했다. 명목 GDP 대비 기업신용 비율은 124.3%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한 해 동안 생산되는 모든 부가가치를 더해도 기업의 빚을 갚을 수 없다는 의미다. 이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갚지 못하는 이자보상배율(영업이익/이자비용) 1 미만 취약기업 비중은 작년 3분기 말 기준 44%에 달했다. 2022년 말 37%에 비해 7%포인트 뛰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자 감면 등의 정부 대책이 잇따르고 있지만 경기 상황과 기업 경영 개선세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며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연체율이나 부실채권 비율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은행 부실채권이 늘어나면 거시 건전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상당한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일차적으로 대손충당금을 많이 확보해 부실채권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