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연매출 2조 목표 유한양행, 리스크 관리가 '먼저'다
[SRT(에스알 타임스) 방석현 기자] 좀처럼 리스크가 없는 유한양행이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앱에 올라온 글로 곤욕을 치뤘다. 오는 3월 15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결의안에 회장·부회장직 신설이라는 조항이 추가됐는데 이를 두고 글쓴이는 '현 이사장이 회사를 집어삼키려 한다'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유한양행은 회장·부회장 직제 신설에 대한 공식 입장으로 “회사의 목표인 글로벌 50대 제약회사로 나아가기 위해 선제적으로 직급 유연화 조치를 한 것”이라며 “일부 거론되고 있는 특정인의 회장 선임 가능성에 대해서는 본인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와 같이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상황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기자는 유한양행 직원으로 추정되는 글쓴이가 블라인드에 왜 글을 올렸는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블라인드가 익명성을 바탕으로 하는 만큼 회사생활에서 오는 어려움을 토로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가정한다면 유한양행에서 내부 잡음이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유한양행 대표가 성과관리에 치중한 나머지 직원들의 상황은 잘 살피고 있지 않느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유한양행은 올해 창립 100주년인 2026년에 글로벌 50대 제약사로 도약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올해 매출도 2조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다만 어느 부문에서 매출 증대를 이뤄낼지는 미지수다. 주력 품목의 특허 만료와 주춤한 자회사 실적 때문이다.
이 회사의 2023년 매출은 전년비 4.7% 증가한 1조8,600억원이며, 영업이익도 전년비 57.6% 늘어난 56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매출은 1조4,218억원으로 전문의약품(ETC) 매출 비중이 1조원을 넘는 것으로 나오는데 지난해 3분기 동안 직전년인 2022년 실적을 뛰어넘은 품목은 582억원을 기록한 고지혈증 치료제 ‘로수바미브’가 유일하다. 당뇨병 치료제 트라젠타, B형 간염 치료제 비리어드 등은 이미 특허가 만료된 제품으로 시장의 경쟁자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연결 법인들도 주춤하고 있다. 자회사 퍼먼텍은 2022년 매출이 125억원인 반면 18억원의 영업손실과 1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으며,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인 자회사 유한건강생활의 경우 지난 5년간(2019~2022년) 누적 순손실만 622억원에 달한다. 매출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동안 실속은 챙기지 못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몇 해 전 한 방송에서 나온 “모르는데 어떻게 가요?”라는 말이 ‘밈’처럼 번진 적이 있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지 않아도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할 수 있겠나’라는 답답함이 내포돼 있음을 알 수 있는 말이다. 유한양행 직원의 블라인드 글도 비슷한 심정으로 작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유한양행 직원들은 분사한 유한건강생활 임원들의 나이가 대부분 젊어 상대적 박탈감도 느끼는 상황이라고 한다. 유한양행의 회장·부회장직 신설보다 중요한 것은 직원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유한양행 대표의 혜안이 아닐까 한다. 성과관리 밖에 모르는 경영이 회사를 망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