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법 시행 2년…조선사 안전관리비 늘었지만
중대재해 사고 잇달아…정진우 교수 “형사처벌만 피하자는 식 안돼”
[SRT(에스알 타임스) 윤서연 기자] 최근 조선소 내 중대재해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2일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선박 방향타 제작공장에서 그라인더(연마) 작업 중이던 협력업체 소속 20대 노동자가 원인불명의 가스폭발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어 지난 18일에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하청업체 소속 60대 노동자가 계단에 떨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 숨졌다.
이런 가운데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이 2022년 1월 27일 시행된 지 곧 2년을 맞는다. 중대재해법 시행 후 발생한 사망사고는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각각 1건이다. 한화오션은 대우조선해양 시절 4건이었으며 최근 발생한 가스폭발 사망사고를 포함해 총 5건이다.
노동계에서는 여전히 조선사 내 안전관리 시스템이 부실하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해가 발생해도 신속한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대책 마련이 부족하다는 게 그 이유다. 지난 16일 전국금속노동조합과 민주노총 경남지역본부,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경남본부는 최근 한화오션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 안전 조직이 개편됐음에도 현장 인원이 부족해 안전보건에 대한 대응 능력이 붕괴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조선 3사(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는 중대재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특별안전교육을 실시하며 전사적 안전관리에 나서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중대재해법 시행 3달만인 2022년 4월 폭발로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HD현대중공업은 고위험작업 안전관리 체계 고도화, 작업자 중심 현장 위험성평가 활성화 등 전사적 안전관리 시스템을 추진하며 지난해에는 중대재해가 1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HD현대중공업은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매일 작업 시작 전 관리감독자와 작업자가 TBM(Tool Box Meeting)이라는 현장 위험성평가를 통해 위험요인을 인지하고 공유한다. 사내 협력사 안전관리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등 자율적으로 안전관리 역량도 높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안전관리 부문에 2022년 약 2,074억원을 투자했다. 이듬해에는 3,085억원으로 증액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투자액을 늘릴 방침이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안전 최우선’이라는 확고한 방침이 있었고 전 임원과 부서장이 생산 현장의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를 찾아 개선하는 현장 안전예방 활동과 직원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안전 관련 행사를 통해 직원들의 안전의식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은 매 분기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열어 사업장 내 안전 예방 강화에 힘쓰고 있다.
먼저 삼성중공업은 작업장 내 위험요소의 식별 등 안전 관련 지식 습득을 위해 안전체험관을 운영하며 작업 인력들의 안전의식 제고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중공업 작업자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작업 전, 중식 전, 월·주·분기 단위로 안전교육 및 위험요소를 파악하고 있다.
또 삼성중공업은 재해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보건관리비를 매년 증액하고 있다. 2021년 2,400억원에서 2022년 2,600억원으로, 지난해는 3,700억원으로 늘렸다. 삼성중공업은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시설‧장비의 구비에 필요한 비용을 점차적으로 늘려 위험요인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오션은 한화그룹에 인수된 후 처음으로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해 5월 출범한 한화오션은 안전보건 분야 투자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고 했다. 대우조선해양 시절(2022년) 2,629억원이었던 안전보건 관련 투자금액은 이듬해 3,212억원으로 늘어났으며 올해는 약 3,500억원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일부 현장 생산직 안전요원의 경우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상황에 따라 다소 증감이 있고, 정년퇴임 등 인원 변동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전체 생산량 및 현장의 안전관리 상황에 따라 인력을 증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화오션의 안전보건환경 관리 인력은 2022년 277명에서 지난해 말 300명으로 늘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특성상 안전관리에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사고를 완전히 예방하는 것은 어렵다”며 “최근 조선업계에서도 스마트 야드를 구축하는 등 디지털 전환을 통한 산업안전 확보에 나서고 있는 만큼 중대재해 발생률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조선사들이 현장 맞춤형 안전활동에 더 힘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안전공학과)는 “중대재해법 시행 후 조선사에서 형사처벌만 피하자는 식으로 '보여주기식 대책'을 내놓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보여주기식 대책'의 하나로 현장 구성원간의 의견 교류보다 톱다운 방식의 안전지침 방식 강조와 안전 교육을 진행했다는 확인 문서로 끝내버리는 조선소 안전 관리 절차를 꼽았다.
이어 정 교수는 “스마트 야드 구축도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겠으나 안전 부서를 늘리고 현장에 맞는 실효성 있는 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정 교수는 “현재 조선사들이 예전에 비해 안전 관리 역량에 투자하는 금액은 늘어난 것이 사실”이라며 “다만 추진하는 안전 관리 활동은 형식에 그칠 뿐이고 조선소 구성원들이 참여해 실질적인 안전 활동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