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9일 입법예고됐다. 지난해 3월 국회 통과 이후 1년2개월 만이다. 이에 따르면 공직자나 언론인·사립학교 교원 등이 직무 관련인에게 3만원 이상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또 선물은 5만원, 경조사비는 10만원이 상한선이다. 외부 강연 사례금은 공무원 행동강령을 기초로 장관급은 시간당 50만원, 차관급은 40만원 등으로 정했다.
 
이런 정도의 소략한 내용을 담기 위해 국회에서 법이 통과된 이후 14개월을 기다렸나 생각하니 허탈감마저 든다. 시행령은 나왔지만 법 조항의 모호성이나 기준의 적정성, 구체적 실효성 등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기에 더욱 그렇다.
 
부정부패를 뿌리뽑겠다는 김영란법의 근본 취지에 이의를 제기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뒷말이 끊이지 않는 것은 분명 간과할 수 없는 결함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민의 일상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식사나 선물 같은 문제의 경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금액의 상한선만을 올리는 게 능사가 아니다. 소박하게 생각해 3만원이 넘는 음식이나 5만원이 넘는 선물은 일단 부정한 ‘뇌물’로 간주된다면 이는 우리의 일상을 옥죄는 ‘정신적 굴레’로 밖에 볼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그야말로 ‘뇌물공화국’에서 살아왔다는 얘기 아닌가.
 
내수 위축 등 국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따지기 전에 우리 스스로 도덕적 후진 국민임을 자인하는 셈이니 속이 편할 리 없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도입한 법인 만큼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김영란법은 사립학교·언론사 등 민간 영역까지 적용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와 관련, 헌법소원까지 청구되어 있는 상황이다. 헌법재판소는 법 시행까지 5개월도 채 남지 않았음에도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이유가 뭔가.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시행령은 물론 모법까지 뜯어 고쳐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음을 정녕 모른단 말인가. 하루 빨리 결정하라.
 
특권계급의 상징이 되다시피한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들의 경우엔 광범위한 예외조항을 두어 면죄부를 준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갑중 갑’인 국회의원의 정부 상대 ‘민원전달 행위’가 왜 부정 청탁 유형에서 제외되어야 하는지 많은 국민은 아직도 의아해 한다.
 
김영란법이 ‘갑’의 지위를 누리는 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이에 대한 전향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국회의원의 경우도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아니면 그것을 고쳐서라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 대상으로 삼지 않는 한 김영란법은 국민의 온전한 지지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뉴욕타임스는 김영란법 시행과 관련, “한국의 풍토를 바꿀 이례적 사건”이라고 했다. 부끄럽기 짝이 없는 아픈 지적이다. 김영란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다듬고 또 다듬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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