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및 해운업계의 구조조정이 초미의 관심사다. 벼랑 끝에 선 대형 조선사의 구조조정 문제를 놓고 우리는 또 늘 들어와 한편으론 공허하기까지 한 ‘해법 아닌 해법’을 되풀이하고 있다. 단순화의 오류를 무릅쓰고 말하면 논의의 갈래는 두 가지다. 국가 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수도 있는 큰 기업을 망하게 내버려둘 수 없으니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라도 살려야 한다는 것이 그 하나요, 도대체 언제까지 ‘국민 혈세’로 부실 기업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느냐 하는 분노의 목소리가 또 다른 하나다.
 
부실기업 지원에 쌍심지를 켜고 반대하는 이들도 조선 산업의 흥망이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을 몰라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대우조선은 1990년대말 이른바 ‘대우사태’가 발생하면서 전신인 대우중공업이 워크아웃에 돌입, 2000년부터 산업은행을 포함한 채권단의 막대한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나 결과는 어떤가. 거만(巨萬)의 정부 지원금을 챙겨왔음에도 자생력 회복은커녕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부실덩어리 애물단지 신세가 되지 않았나. 그러니 국민이 다락같은 공분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한진해운의 운명 또한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한진해운 채권단은 4일 회의를 열고 한진해운의 조건부 자율협약을 개시하기로 뜻을 모았다. 자율협약은 채권은행들이 기업 회생을 위해 원리금 상환을 유예하는 대신 강도 높은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와 달리 법적 구속력은 없다. 많은 국민은 바로 이 대목에 주목한다.
 
‘재벌 갑질의 대명사’처럼 되어버린 한진해운에 진정한 의미의 기업가 정신, 산업보국의 마인드를 기대할 수 있을까.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현 유수홀딩스 회장) 일가는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 사실이 알려지기 직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처분하면서 수억원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최 회장은 한진해운이 조 단위의 손실을 내는 상황에서도 보수와 퇴직금 명복으로 100억원 가까운 돈을 챙겨 국민의 분노를 산 터이다. 그런 저열한 도덕 수준의 기업인, ‘좀비형’ 기업에 어떻게 자율협약의 빈틈없는 이행을 바라고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회생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중요한 것은 만성적 불황에 허덕이는 조선업계 구조조정을 여하히 해내느냐 하는 것이다. 감원과 감축의 다른 이름인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 될 일이 아니다. 기업부실화에 대한 대주주와 경영자의 명백한 책임 추궁과 도덕적 각성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갓 냉소의 대상에 그칠 뿐이다. 급기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직을 내놓았다. 한진해운 등 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경제든 인간이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그것은 곧 무너진 도덕과 정의를 일으켜 세우는 것이다. 대기업 오너 쯤 되어서 평상시는 물론 비상시에도 이익금이나 챙기고 국가 경제는 나몰라라 내팽개친다면 이보다 더 허접스런 일도 달리 없다. 그런 나라에 미래는 없다. 비상한 때에는 비상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 공적 자금이 아니라 그야말로 재벌 총수의 ‘내탕금(內帑金), 호주머니 돈이라도 탈탈 털어 기업을 살리겠다는 특단의 조치가 병행되지 않는 한 목청만 높은 ‘위기 경영’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갑질을 일삼아온
 
     재벌기업에 대한 국민의 정서는 얼음장보다 차갑다. 돌부처처럼 돌아앉은 국민의 멍든 마음을 풀어줘야 한다. ‘경영의 실패’를 인정하고 ‘자기 것’을 먼저 다 내려놓겠다는 최소한의 희생적 자세부터 보여주길 바란다. 
<논설주간 ·김종면 前 서울신문 수석논설위원  jmkjm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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