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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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T(에스알 타임스) 김경종 기자]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

지금으로부터 약 1년여 전인 2020년 5월 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와 무노조 경영 등 불법행위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법과 윤리를 엄격하게 준수하지 못했다. 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데에도 부족함이 있었다"고 사과하며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 선언했다.

국내 재계 서열 1위인 삼성의 총수가 언급한 경영권 승계 포기 발언은 그 저의가 무엇이든 재계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 기업의 1순위 목표가 무엇일까. 돈을 버는 것은 모든 기업의 존재 의의이니 말할 것도 없다. 영업활동 이외에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꼽으라면 '승계' 문제다. 기업이란 곧 '가업(家業)'이며, 기업은 경영하는 것이 아닌 '소유(所有)'하는 것이며, '소유주'는 곧 총수 1인으로 귀결된다. 언론이 전문경영인보다 오너에 더 주목하는 이유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수십, 수백개에 달하는 계열사를 지배하기 위해 순환출자를 적극 이용해 왔다. A기업이 B기업에 출자하고, B기업이 C기업에, 다시 C기업이 A기업에 출자하는 식의 고리형태의 지배구조 체제를 이뤄온 것이다.

순환출자 방식은 적은 자본으로도 그룹 지배력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순환 출자 고리로 엮인 어느 한 계열사의 부실이 생기면 그룹 전체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그룹들이 쓰러졌고,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계열사 출자를 확대하면서 순환출자 고리가 크게 늘었다.

이에 정부는 2014년 새로운 고리는 금지하고 기존 고리는 자발적으로 해소하도록 유도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시행하는 동시에, 지배구조 투명화를 위해 재벌들의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유도했다.

가장 먼저 LG가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했고, 현재는 SK, 두산, CJ 등 그룹들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지주회사 전환은 오너 일가에게도 장점이 뚜렷했다. 보통 지주회사는 회사를 인적분할해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나누고, 이후 주식교환 과정을 거쳐 오너가→지주사→사업회사로 구조를 단순화하는 순서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오너家의 지주회사에 대한 지배력이 높아지면서, 그룹 장악력이 크게 상승하게 된다. 시장에서는 보통 지주회사 전환은 승계를 염두에 두고 진행된 것이 일반적이라고 평가한다.

대기업들이 지주회사로 전환했음에도 여전히 지주회사 체제 밖에서 법망을 피해 총수들의 이익을 채우는 회사가 존재한다는 점은 문제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의 ‘2020년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현황 분석 결과’를 보면 총수있는 전환집단 22곳에 소속된 계열사 996개 중 203개 계열사가 지주회사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총수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계열사는 161개인데, 공정거래법상 사익편취 규제를 받는 계열사가 80개이며, 총수일가 지분율 20% 이상인 회사가 50% 초과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사익편취 규제 사각지대로 판단되는 계열사가 34개다. 

정부 정책에 따라 지주회사로 전환하더라도,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는 지주회사 밖으로 유지하면서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특히, 총수일가 지분이 높은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의 비중은 지난 2016년 27%에서 2020년 50%로 꾸준히 증가해 왔다.

재벌들은 책임을 보여라. 투명한 지배구조를 만든다는 시늉만 하지 말고, 공정한 기업 형태를 만들라.

다행히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안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에 따르면 대기업집단의 사익편취 규제대상으로 현행 상장회사 30%·비상장회사 20%에서 모두 20%로 통일되며, 이들 기업이 50%를 넘게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도 대상이다.

또한, 새로 설립되거나 전환되는 지주회사에 한해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 요건이 상장사 20%·비상장사 40%에서 상장사 30%·비상장사 50%로 상향되며, 신규 지정된 기업집단이 보유한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 의결권도 제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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