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영화사진진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영화사진진

- 노동자들의 현실적 모습 담아낸 영화

[SR(에스알)타임스 심우진 기자] ‘정은’(유다인)은 7년 동안 다닌 회사에서 하청업체 현장 사무실로 발령 받는다. ‘인사팀장’(원태희)은 1년 후 본사로 복귀시켜 주겠노라 약속했지만 사실상 정리해고와 다름없는 인사발령이다. 내근직 사무원인 그녀가 고압선 송전탑을 타야 하는 현장에서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현장 직원들은 그녀의 등장이 달갑지 않다. ‘소장’(김상규)은 정장을 차려 입고 나타난 정은이 내미는 명함을 대놓고 집어 던진다. 그가 “당신 자리 여기 없습니다”라고 딱 잘라 말하며 설득해 보지만 정은은 완고하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영화사진진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영화사진진

쾨쾨한 현장 사무실 한구석에 우두커니 앉은 정은. 그녀는 본사 복도 자리로 내몰려 직원들에게 조롱 당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숙소 창문에 자신이 참고 견디어야 할 인내의 365일을 빨갛게 적어 내려간다.

현장일을 배우려는 정은에게 직원들은 냉랭하기만 하다. 소장은 예산 부족으로 인한 작업 인원 감축 원인을 눈엣가시 같은 그녀에게 돌린다.

현장 직원 중 유일하게 정은을 살갑게 대하는 ‘막내’(오정세)는 딸들을 부양하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대리운전 일을 병행하고 있다. 정은은 막내의 도움으로 현장 업무를 차근차근 배워 나가려고 노력하지만, 특정 대상물에 대해 공포 장애까지 겪는 그녀가 송전탑 위로 오르는 일은 쉽지 않다.

한편 본사는 노노 갈등을 계속 부추긴다. 소장에게는 정은을 빨리 쫓아낼 것을 종용하는 원청의 압박이 점점 거세진다. 현장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 정은은 본사에서 실시하는 하청 업체 현장 평가에서 수모를 겪으며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영화사진진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영화사진진

◆ 노노 갈등을 다룬 우리 모두의 이야기

정은은 영화 속에서 본사 우수사원으로 누구보다 성실하게 회사를 위해 일했다고 자부하며 자신을 변호한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아무도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한 외로운 투쟁은 성공할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그런 정은에게 매몰찬 소장은 그녀와 대립하는 노노 갈등의 중심인물이다. 하지만 그 역시 현장에서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노동자일 뿐이다. 

정은 때문에 덩달아 해고 경고를 받는 막내.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내는 정은을 돕는다. 그의 도움을 통해 정은은 현장 직원들의 틈바구니에서 서서히 현장 업무에 적응해 나간다. 그리고 또다른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과 직업의식에 눈뜨기 시작한다.

영화의 서사를 이끄는 주인공 정은이 생경한 노동 현장으로 향하는 모습은 니키 카로 감독의 ‘노스 컨츄리’(2005)에서 광산 노동자로 등장하는 ‘조시’(샤를리즈 테론)의 모습과 닮아 있다. 또한 정은이 미로 같은 철탑 위로 한 발 한 발 오르는 모습에는 우리 모두의 현실이 투영돼 있다.

▲오정세, 이태겸 감독, 유다인(사진 왼쪽부터). ⓒ영화사진진
▲오정세, 이태겸 감독, 유다인(사진 왼쪽부터). ⓒ영화사진진

영화의 연출을 맡은 이태겸 감독은 “첫 영화를 만들고 나아지지 않는 환경을 접했는데 ‘사무직 중년 여성이 지방 현장직으로 부당 파견이 되었는데 그곳에서 굉장한 치욕을 겪었음에도 결국 버텨냈다’는 기사를 보고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는 “송전탑의 복잡함, 거대함, 차가운 질감 등이 정은이 처한 상황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가 처한 녹록지 않은 삶과도 연결되는 상징물로 봤다. 누군가는 송전탑에 오르고 그런 모습이 위안과 의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야기 소재의 선정이유를 밝혔다.

정은 역의 유다인은 인물 연기와 관련해 “KTX 승무원 복직 다큐멘터리를 접한 시기라 시나리오가 그냥 영화로 느껴지지 않았다. 정은은 여자라는 이유로 정당하지 않게 권고사직 위기를 겪고 있고 사방이 벽 같은 상황에 놓였다고 느꼈다”며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감정과 심리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막내 역의 오정세는 “막내와 같은 인물들이 주변에 있었다. 성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데 대우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을 때 막내라는 인물을 만났고, 작품을 하면서 그들에게 작은 응원의 손길 혹은 관심이 주어진다면 의미 있는 영화가 아닐까 했다”며 작품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영화사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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